[세상읽기] 64대 69와 윤석열표 노사정위원회 가능성
윤석열 정부 노동 개혁이 시작부터 엉키고 있다. 그렇다고 개혁의 방향이 이전 정부와 크게 다른 것도 아니다. 수식어를 제거하면 노무현, 문재인 정부 때와 마찬가지로 핵심은 유연한 노동이다. 이 정부의 용어로는 선택권의 확대다. 선택권을 확대하려면 유연해야 한다. 선택권 확대는 삶의 질 제고라는 논리와 제법 어울린다. 지난달 6일 발표한 ‘근로시간제도 개편 방향’의 목표로 제시된 것이 바로 근로자의 삶의 질 제고다. 이 개편 방향이 뭇매를 맞고 있는 것이다. 비판하는 쪽은 주69시간 일하라니 죽으란 말이냐 하면서 날을 세우고, 추진하는 쪽은 설명이 쉽지 않다.
대통령실의 대응도 큰 실효성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여론도 좋지 않다. 사실 정부로서는 억울할지 모른다. 우리나라 역대 정부도 노동시간 유연화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오지 않았는가.
과거에는 그 중심에 탄력근로제가 있었다. 탄력근로제는 평균 주 40시간인 법정근로시간을 단위기간 내에 탄력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자연히 어떤 특정 주의 근로시간이 늘어난다. 여기에 주 12시간까지 가능한 시간외근무를 추가하면 주64시간까지 일을 시킬 수 있다. 단위기간이 길어지면 64시간 일하는 주도 늘어난다. 이 탄력근로제는 김영삼 정부에서 처음 도입되었다. 당시 단위기간은 1개월이었다. 노무현 정부에서 단위기간은 3개월로 확대됐다. 이론적으로는 이때부터 주64시간의 노동이 가능해졌다. 문재인 정부는 ILO 핵심협약을 법제화하면서 단위기간을 6개월까지 확대했다. 다음 근로일 개시 전까지 연속해서 11시간 이상 휴식을 제공해야 한다는 조항도 이때 신설됐다. 장시간 노동의 기간이 길어지는 부작용을 염두에 둔 입법이다.
진보적이라고 알려진 정부 시절에 벌어진 일이라는 공통점은 다소 의외다. 다만 당시 야당이었던 보수정당에서는 일체의 반대가 없었다는 점은 지금과 큰 차이다. 물론 노동계와 시민단체의 반대는 피할 수 없었다. 김영삼 정부 때는 40일 가까운 총파업이 있었고 날치기로 통과된 법을 물리는 일까지 있었다. 노무현 문재인 정부 때도 그 강도가 지금처럼 높지는 않았으나 노동계의 반대를 피하지 못했다.
이런 반대에도 불구하고 입법이 가능했던 것에는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사회적 대화를 중요하게 꼽을 수 있다. 김영삼 정부는 1996년 초 ‘노사관계개혁위원회(노개위)’를 발족했다. 노개위는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모두 참여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사회적 대화 기구였다. 노개위에서의 합의가 실패하면서 날치기 통과와 반대투쟁이라는 진통이 있었지만 국회에서의 합의를 거쳐 최종 통과되었다.
김대중 정부는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노사정위원회를 발족했다. 주40시간제가 합의된 것은 노사정위원회에서였다. 당시 노동계가 거세게 반대했던 정리해고제 역시 노사정위원회의 논의를 거쳐 입법이 됐다. 이후 노무현 정부도 문재인 정부도 노사정위원회와 그 뒤를 이은 경사노위에서의 대화 과정을 거쳤다. 이번 제도개혁에는 이 과정이 생략되었다. 정부가 곤경에 처한 것은 이것이 원인일 가능성이 크다. 대화의 과정을 거쳤다면 내용도, 반발의 정도도 지금과는 달랐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 근로시간 제도개혁에 사회적 대화가 필요한 것에는 중요한 이유가 하나 더 있다. 그것은 개혁의 방식이 이전 정부와 전혀 다르다는 것에 기인한다. 언급한 바처럼 이전까지는 법정근로시간인 주 40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영하는 방식의 유연화였다. 그런데 이번에 발표된 내용은 주당 12시간까지 가능한 시간외근무를 탄력적으로 운영하는 방식이다. 이런 점에서, 정부의 개혁에 대해 69시간만 강조하는 비판은 본질을 흐리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 때 이미 64시간이 가능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새로운 방식에 어떤 긍정적인 점과 부정적인 점이 있는지 아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69시간만 부각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모두 사회적 대화의 부재가 원인이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이미 늦은 것이 아니라면, 지금 필요한 것은 당·정·대의 소통이 아니라 사회적 대화의 복원이다. 대통령은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문제점에 대해 몇 차례 강조한 바 있다. 차제에 이를 반영한 윤석열표 노사정위원회를 구성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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