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해원의 말글 탐험] [191] 새봄을 보내며
진달래 만나 반갑던 산행이 엊그제 같은데…. 한번 봄바람 탄 계절이 부리나케 달린다. 인적도 새소리도 드문 숲이 이다지 수선스러웠던가. 용써가며 밀어낸 새싹 봐 달라 서로들 아우성이다. 과연 멀리서 바라본 산은 온통 푸릇푸릇 새 단장! 더는 ‘새봄’이라 못 하겠네.
‘있던 것이 아니라 처음 마련하거나 다시 생겨난.’ 이 관형사(冠形詞) ‘새’는 어째서 봄하고만 어울릴까. 새여름, 새가을, 새겨울? 말하지도 쓰지도 않는다. 아마도 봄만이 지닌 산뜻함, 생생함이 ‘새’와 맞아떨어지기 때문이겠지. 사계절처럼 시간의 뭉텅이여도 ‘날’ ‘달’ ‘해’는 모두 ‘새’와 결합해 한 낱말이 됐으니 흥미롭다(새날, 새달, 새해).
‘새’가 이루는 합성어(실질 형태소 둘 이상이 합친 낱말)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 가장 많다. 새댁, 새색시, 새아기, 새신랑, 새언니, 새아버지, 새어머니…. 한데 ‘새신부’는 표준국어대사전에 없다. ‘새며느리’ 역시 한 단어로 인정받지 못해 ‘새 며느리’라 띄어 써야 하니, 갈피 잡기 어렵다.
‘새장가’로 미뤄보면 ‘새시집’도 있을 법하지만, 머릿속에서나 가능할 뿐. 여자의 재혼을 금기시했던 남성 가부장제 사회의 영향이리라. 구시대적 언어라고들 하는 ‘시집’마저 언젠가는 듣거나 볼 일 없을지도 모르겠다.
‘새’의 반대편에 있는 말은 어떤가. 같은 관형사는 아니어도 ‘오래되거나 많이 써서 낡다’는 뜻인 ‘헐다’의 관형사형 ‘헌’과 짝지은 말은 드물다. ‘헌것’ ‘헌쇠’ ‘헌신짝’ 등등 한 손으로 꼽을 정도. ‘헌책’이 있으니 ‘새책’도 있지 싶은데, 아니올시다. 동요 ‘두껍아 두껍아’에서 주려는 집은 ‘헌 집’이요 달라는 집은 ‘새집’이다. 아리송아리송….
‘새 옷’ ‘헌 옷’ 확인하다 중학생 때 사진이 떠올랐다. 교복 바지에 체육복 윗도리 입고 산에 오른…. 무슨 청승이냐 싶다가, 지난해 이사 때 얼마 안 입은 옷 여러 벌 내놓은 생각이 났다. 결핍보다 풍요가, 헌것보다 새것이 부끄러울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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