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째 루게릭병 코치의 투혼... 샌디에이고주립大 기적 일궜다

이영빈 기자 2023. 4. 5.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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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대학농구 NCAA 준우승

2011년, 4년째 미국 샌디에이고주립대 남자 농구부에서 아버지이자 감독(Head Coach) 스티브 피셔를 도와 코치(Assistant Coach)로 일하던 마크 피셔(당시 32세). 어느 날 팔과 다리가 삐걱거리는 것을 느꼈다. 움직이려 해도 힘이 잘 들어가지 않는 느낌이었다. 나아지겠거니 했지만, 점점 증상이 악화해 병원을 찾았다. 그리고 근위축성 측색 경화증(루게릭병)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10만명 중 1명에게 찾아오는 원인도 모르고 치료법도 모르는 희소병이다. 전신 근육이 점점 경직돼 발병 후 5년 이내에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루게릭병 투병 중인 마크 피셔 코치가 휠체어에 앉아 NCAA 토너먼트 결승전을 지켜보는 모습을 올린 ESPN 페이스북

그로부터 12년이 지났다. 마크 피셔(44)는 여전히 살아 있다. 어눌하지만 대화도 가능하다. 그뿐 아니라 여전히 샌디에이고주립대에서 코치(비상근)로 일한다. 샌디에이고주립대는 지난 4일 ‘3월의 광란(March Madness)’이라 불리는 올해 NCAA(미국대학스포츠협회) 남자 농구 토너먼트 결승에 올랐다. 전문가들이 이 팀이 결승에 오를 확률은 1~2%, 후하게 쳐도 4%밖에 안 된다고 한 분석을 뒤집은 이변이었다. 비록 결승에서 코네티컷대에 무릎을 꿇고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충분히 박수받을 만한 분투였다. 마크 역시 휠체어에 몸을 싣고 나와 작전에 힘을 보탰다.

샌디에이고주립대 선수들이 지난 2일 플로리다 애틀랜틱대를 72대71로 꺾고 NCAA 남자 농구 토너먼트 결승 진출을 확정지은 뒤 얼싸안고 기뻐하는 모습. 샌디에이고주립대는 이번 대회에서 강호들을 연달아 꺾고 사상 처음 대회 결승전에 올라 준우승했다. /로이터 연합뉴스

샌디에이고주립대는 대학농구계 전통의 강호가 아니다 보니 유망 고교 선수 선발에서도 상대적으로 어려움이 많다. 지금까지 NCAA 토너먼트에서 16강에 오른 게 최고 성적. 그런 샌디에이고주립대가 올 시즌 준우승을 차지한 건 기적에 가까운 일이란 평가다. 그 기적보다 더 기적적인 건 마크가 여전히 팀 약진에 기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병 판정을 받자 먼저 여자 친구 질에게 청혼했다. “걸을 수 없게 되기 전 사랑하는 사람과 ‘버진 로드(Virgin Road·신랑 신부가 결혼식장에서 함께 걷는 길)’를걸어가고 싶었다”고 말했다 한다. 그리고 묵묵히 코치직을 수행했다. 걸을 수 없게 된 2013년부터는 비디오 분석관으로 임무를 변경했다. 온몸은 날이 갈수록 굳어 갔지만 불굴의 의지와 영민함은 굳지 않았다.

2017년엔 아버지 스티브가 지휘봉을 내려놓고 아들을 도왔다. 스티브는 “아들을 위해서 관둔 게 아니다. 코치 마크 피셔를 돕는 게 팀에 더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스티브는 홈경기 땐 아들을 차에 태워 경기장까지 동행하고, 원정 경기에선 데이브 벨라스케즈(37) 수석 코치에게 전화로 마크의 의견을 전달한다. 벨라스케즈는 “감독님(브라이언 더처)이 하프타임 때마다 하는 말이 있다. ‘마크는 뭐라 하던가요?’”라고 전했다.

실제로 샌디에이고주립대는 이번 대회 8강전에서 강호 크레이턴대를 만나 전반전에 28-33으로 끌려가고 있었다. 마크는 ‘하프라인부터 압박하는 강도 높은 수비를 더 과감하게 해야 한다’는 의견을 전달했고, 더처 감독은 이를 따랐다. 결과는 57대56 극적인 역전승. 역사상 첫 8강 진출에 이어 4강까지 돌파할 수 있었다.

샌디에이고주립대 코치진 중 하나인 맷 소리아는 “마크는 병이 그의 삶에 영향을 미치게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의 의지는 선수단에 힘을 불어넣는다”고 말했다. 팀에서 포워드를 맡는 아구엑 에롭(24)은 “우리는 그가 무엇과 싸우고 있는지 안다. 그는 결코 불평하지 않는다. 항상 우리를 이끌고 지도한다. 그런 그를 보는 건 감동적(beautiful)이다”라고 했다.

미국의 루게릭병협회(The ALS Association)는 발병 뒤 10년 넘게 생존하면서 육성으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는 건 기적에 가깝다고 보고 있다. 2018년 세상을 떠난 천체 물리학자인 스티븐 호킹도 스무살에 루게릭병을 진단받아 56년을 살았지만, 음성 대신 기계로 의사소통을 했다. USA투데이는 “피셔는 앞으로도 죽지 않을 것이다. 그의 투혼은 농구부에 대대로 물려질 것”이라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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