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의 나팔수’ 된 군사 블로거들…왜?

선명수 기자 2023. 4. 5.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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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우크라 침공 이후 정부에 비판적인 언론은 모조리 해산
국영언론이나 블로거 통해 ‘크렘린 입맛’에 맞게 전황 보도
폭사한 타타르스키, 와그너 그룹 후원 받으며 애국심 선전
법원에 출두한 카페 폭탄테러 용의자 러시아 유명 군사 블로거인 블라드랜 타타르스키 살해 용의자로 체포된 다리야 트레포바가 4일(현지시간) 심리를 위해 모스크바 한 법원에 출두해 있다. AP연합뉴스

구독자 56만명을 보유한 러시아의 유명 ‘군사 블로거’가 지난 2일(현지시간) 반러시아 세력의 표적 공격으로 추정되는 폭탄 테러 공격으로 사망하면서, 전쟁 상황을 중계하는 블로거들이 상대 진영의 표적이 될 정도로 영향력이 커진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자국의 비판적인 언론을 모조리 해산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블로거들을 전쟁의 ‘선전 부대’로 활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4일 CNN은 ‘전쟁 특파원’이라고도 불리는 러시아의 군사 블로거들이 푸틴 대통령의 언론 탄압으로 발생한 러시아 내 ‘정보 공백’을 대체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 당국은 지난해 3월 러시아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독립언론 메디아조나를 강제 해산하는 등 우크라이나 침공 전후로 정권에 비판적인 언론들에 차례로 재갈을 물려왔다. 이에 따라 언론인들은 탄압을 피해 해외로 근거지를 옮겨 활동하거나 수감된 상태다.

결국 러시아 시민들이 전쟁에 대한 정보를 얻는 방법은 철저히 크렘린의 시각대로 보도하는 국영 언론이나 ‘군사 블로거’들이 운영하는 텔레그램 채널뿐이다. 캔디스 론도 신아메리카재단 연구원은 “군사 블로거들은 (전쟁에 대해) 매우 불투명한 정보를 제공하지만 어쨌든 그들은 뉴스를 제공하고 있다”면서 “최전선에서 발생하는 일에 접근할 수 있는 러시아 내 유일한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특히 군사 블로거들은 민간군사기업(PMC) 와그너 그룹과 우크라이나 돈바스 지역의 친러 분리주의자 그룹 등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어 구체적이고 민감한 군사 정보에 접근하고 있다. 지난 2일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폭사한 군사 블로거 블라드랜 타타르스키(40·본명 막심 포민) 역시 와그너 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의 후원을 받는 등 상당히 밀접한 관계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론도는 “와그너 그룹을 대중화시킨 것도 이들 군사 블로거”라고 말했다.

지난 2일(현지시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한 카페에서 폭탄 테러로 숨진 러시아의 유명 전쟁 블로거 블라드랜 타타르스키를 추모하는 꽃이 사고가 발생한 카페 밖에 놓여 있다. 타스연합뉴스

문제는 이들이 전하는 전쟁 관련 소식이 편향적이며 크렘린의 전쟁을 옹호하는 나팔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러시아의 ‘종군기자’ 노릇을 하고 있지만, 때로는 시리아·아프가니스탄 등지에서 벌어지는 와그너 그룹의 군사작전이나 돈바스 전쟁 등에 직접 전투원으로 참전하며 보도에 관한 윤리적인 선을 넘어서고 있다고 CNN은 전했다.

타타르스키 역시 전선에서 무기를 들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노출하며 ‘애국심’을 선전했다. 우크라이나 도네츠크주 출신인 그는 2011년 무장한 채 은행을 털다가 붙잡혔지만 탈옥한 후 친러주의 반군인 돈바스민병대에서 활동하며 범죄 전력을 ‘세탁’했다.

미 싱크탱크 전쟁연구소의 카테리나 스테파넨코는 “군사 블로거들의 영향력이 커진 것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군사적 실패를 경험하기 시작한 지난해 4~5월 무렵”이라고 말했다. 당시 국영 언론과는 달리 이들은 군 고위층의 전략 실패를 강도 높게 비판하며 더 높은 수준의 공세를 주문했다. 이는 이들이 푸틴의 침략 전쟁을 강하게 옹호하는 극우·초국가주의적 노선을 견지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미 싱크탱크 아틀랜틱카운실 디지털포렌식연구소의 루슬란 트라드는 “군사 블로거의 텔레그램 구독자들은 대부분 극우 민족주의자”라면서 “이들의 채널 중 다수는 초국가주의 운동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이 운동은 텔레그램을 통해 더 널리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BBC는 “군사 블로거들이 러시아 독자들에게 인기가 있는 이유는 러시아의 ‘특수 군사 작전’의 필요성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으면서 (군에 대한) 좀 더 비판적인 관점을 제공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크렘린도 이들의 ‘강경 노선’을 치켜세우고 있다. 마리아 자카로바 외무부 대변인은 타타르스키를 비롯한 군사 블로거들 덕분에 “세계가 진실된 영상을 보고 우크라이나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에 대한 정보를 얻는다”고 말했다. 반면 러시아 당국은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군이 저지른 잔학 행위를 보도하는 독립 언론은 철저히 탄압하고 있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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