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치킨 값 좀 잡아주면 안되나요?”… 고물가에 등장한 가격 통제 목소리 [이슈+]
시민들, 치솟는 물가에 대책 마련 요구
MB정부 때 치킨 가격 인상 발표한 대형 치킨 프랜차이즈
세무조사·공정위 조사 압박에 인상 철회
코로나19 확산 땐 마스크 가격 통제도
‘주택 임대료를 통제하는 것은 폭격 외의 수단으로 도시를 파괴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스웨덴 경제학자 아사르 린드벡은 가격 통제 정책으로 인해 시장에서 거래되는 제품 품질이 악화할 수도 있다는 의미로 이처럼 말했다. 정부가 물가를 잡기 위해 직접 물가에 칼을 들이대는 가격 통제 정책이 기업활동을 위축시켜 최악의 상황을 만들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장 3만원에 육박하는 치킨값 등 외식 및 가공식품 가격과 전기와 가스요금 인상 등 고물가시대에 시름하는 서민은 정부가 가격 통제 등 적극적인 대책으로 물가를 잡아주길 기대한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수요와 공급 등 다양한 원인으로 결정된 시장 가격을 정부가 인위적으로 통제하는 가격 통제 정책은 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기도 한다. 과연 정부 주도의 가격 통제는 어디까지 허용돼야 할까.
“월급은 그대론데 치킨값부터 햄버거, 소줏값 등 안 오르는 게 없네요. 정부가 좀 나서면 안 되나요?”
30대 대기업 직장인인 이모씨, 세후 400만원이 넘는 월급을 받고 있지만 최근 늘어난 물가에 고민이 깊다. 홀벌이인 그는 “전세자금 대출 이자와 중고차 할부금을 내고 나면 한 달에 250만원이 안 되는 돈으로 세 식구가 먹고사는 것”이라며 “최근엔 서민 음식이라고 말하던 치킨값도 오르는 것 같아 일주일에 한 번 치킨 시켜먹는 것도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40대 주부인 박지호씨는 최근 8살된 딸의 영어학원을 끊고 집에서 직접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그는 “지금 물가도 물가인데 향후 계속 오르지 않겠느냐”며 “치킨 프랜차이즈들이 한해 수백억에서 수천억 원의 수익을 낸다는데 왜 정부가 치킨값을 잡지 못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처럼 많은 시민이 정부의 적극적인 물가안정 정책을 주문하는 가장 큰 이유는 팍팍해진 삶과 언제 안정될지 모르는 물가 때문이다. 전날 통계청이 발표한 ‘3월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10.56(2020년=100)으로 1년 전보다 4.2% 올랐다. 지난해 3월(4.1%) 이후 1년 만에 최소 상승 폭이다. 하지만 물가 상승세가 둔화한 것은 전년 동기 물가가 고공비행한 데 따른 기저효과 탓이 크다. 여기에다 물가의 기조적 흐름을 보여주는 근원물가(농산물·석유류 제외)는 4.8% 상승했다. 여기에 전기·가스·수도 등 공공요금은 28.4% 폭등했다. 2010년 이후 13년 만의 최고 상승률이다.
최근 교촌치킨이 치킨값을 인상하면서 불만을 토로하는 시민들이 많다. 원자재가격 상승을 이유로 교촌이 일부 치킨 가격을 최대 3000원 인상하면서 서민들의 부담이 늘어난 탓이다.
서민들의 기대와 달리 윤석열 정부는 이런 치킨 가격 인상에 별다른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다. 하지만 치킨 가격에 칼을 들이댄 정부가 있었다. 바로 이명박 정부다.
당시 한 치킨 프렌차이즈는 대한민국을 강타한 조류인플루엔자를 핑계로 치킨 가격 인상에 나섰다. 하지만 발표 직후 MB정부는 세무조사에서부터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까지 각종 카드로 압박했고, 이 업체는 결국 꼬리를 내리고 가격 인상을 철회했다. 정부가 직접 가격 상한선을 정하진 않았지만, 정부가 가격 인상에 나선 기업을 막아선 것이다.
물가안정을 위해 정부가 직접 나선 사례는 많다. 2022년 2월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3000원에 판매되던 자가진단 키트가 온라인 쇼핑몰에서 10만원에 판매되자 정부는 1인당 구매 수량을 한정하고, 가격을 6000원으로 제한했다. 미허가 키트의 판매를 방지하고 키트가 안정적인 가격 수준에서 판매되는 것을 목적으로 한 가격 통제 정책이었다.
하지만 선의가 반드시 좋은 결과를 담보하진 않는다.
안정적인 아파트 분양을 위해 도입한 분양가 상한제도는 재개발 조합원들의 재산권을 침해한다는 논란에서부터 도시정비사업을 위축시킨다는 비판까지 다양한 불만의 목소리가 나왔다. 분양가 상한제 실시로 민간 건설업체가 이윤이 낮아 분양을 기피하면서 아파트 공급량이 위축되기 시작해 집값을 잡는 데 실패했다는 분석도 있다.
이런 정부의 가격 통제 실패 사례는 해외에서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자원 부국이었던 베네수엘라는 정부가 물가 상승을 막겠다고 가격 통제에 나서면서 생활필수품들이 상점에서 모두 사라졌다.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에 정부 베네수엘라 정부는 중앙정부 차원에서 식료품은 물론 화장품, 휴지, 청소용품 등 50여개의 품목에 가격 상한선을 정했다. 그 결과 2013년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 취임 전보다 민간기업은 20%가량 줄어들었다.
그렇다면 ‘자유시장경제’를 표방한 윤석열 정부는 어떨까. 지금까지 정부의 개입보다 시장의 자유를 강조해온 윤석열 정부지만, 최근 지나친 물가 상승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시장에 개입해야 하는 난처한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최근 기획재정부와 국세청은 소주 가격이 6000원까지 뛰어오를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자 실태 조사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은행 금리’의 경우 더욱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13일 “은행 고금리로 국민 고통이 크다”며 “‘은행의 돈 잔치’로 인해 국민의 위화감이 생기지 않도록 금융위원회는 관련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김건호 기자 scoop3126@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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