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절 옷이 공존하는 봄 [삶과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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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까지 추웠던 것 같은데 '벌써'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빠르게 봄이 왔다.
그런 날씨에 당황스러운 것은 다름 아닌 옷 때문이다.
봄에는 이렇게 사람들의 옷차림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그 때문인지 밝은색 옷을 입은 사람을 보면 뭔가 기운이 나고 나도 밝아지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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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까지 추웠던 것 같은데 '벌써'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빠르게 봄이 왔다. 이미 여름이 반쯤 문을 열고 들어온 시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3월에는 중순 넘어서까지도 지금이 겨울인지 봄인지 헷갈리는 날씨를 경험했다. 그런 날씨에 당황스러운 것은 다름 아닌 옷 때문이다. 3월인데 롱패딩을 입고 나가도 괜찮을지, 하지만 코트만 입기에는 봄 감기에 걸릴 것 같다. 이미 3월 중순이면 겨울옷을 정리한 바지런한 사람들도 있을 텐데 다행히 나는 전혀 그런 사람이 아니다. 라디오를 듣다가 얻은 정보에 따르면 4월 5일이 겨울옷을 정리하기 적당한 날이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사계절 옷들은 공존하고 있다.
낮에 더울 것을 감안해서 얇은 검정색 코트를 골랐다. 물론 골랐다는 말이 썩 어울리진 않는다. 나는 코트가 하나뿐이다. 코트를 걸쳐보니 뭔가 이상했다. 펑퍼짐하고 두툼한 검정색 플리스 바지와 흰색 스웨트 셔츠에 검정색 코트. 뭐가 문제지. 역시 얼굴이 문제인가, 나는 이 생에선 완성될 수 없는 것인가, 하는 생각들을 뒤로하고 코트 지퍼를 올려봤다. 오, 이거다. 흰색 셔츠가 살짝 보일 만큼만 지퍼를 올리니 꽤 괜찮아졌다. 지퍼를 끝까지 올리니 더 괜찮아졌다. 하지만 둔해 보였다. 결국 지퍼를 살짝 내린 채 출근을 했다.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면서 사람들의 옷차림을 찬찬히 관찰했다. 역시 봄이 오긴 왔는지 밝은색의 옷을 입은 사람도 많았고 개나리 색이나 신호등 색깔의 옷을 입은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고 아직 검정색 패딩을 입거나 무채색 계열의 옷을 입은 사람도 있었다. 봄에는 이렇게 사람들의 옷차림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겨우내 움츠리고 있다가 '팝' 하며 새싹이 나는 걸 보는 기분이랄까? 세상엔 옷차림만큼 참 다양한 사람들이 산다. 좋아하는 색도 다르고 조합도 다르며 선호하는 옷 두께도 다른 사람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세상을 밝게 또 긍정적으로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소중한가.
최근 몇 년간 에세이 출판 시장에서는 자기 고백류의 글들이 많았다. 처음에는 우울증이나 자신의 아픈 부분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글들이 공감을 얻었으나 현재는 오래도록 뭔가를 꾸준히 한 사람이라든지, 세상에 온기를 불어넣는 사람이라든지, 희망을 주는 글을 쓰는 사람의 책이 인기가 있다.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며 이런 감정에 끌리는 건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나 역시도 공감은 되지만 좀 처지는 글보다는 재미있거나 열심히 사는 사람의 글을 읽는 게 더 동기 부여가 되었다.
검정색 바지와 검정색 코트를 입은 사람에게서 살짝 보이는 흰색 셔츠는 약간의 희망을 보는 듯하다. 사실 온통 밝고 무지개 색 같은 옷을 맞춰 입는 건 정말 어렵다. 마찬가지로 한없이 긍정적이기는 쉽지 않다. 내가 패션을 모르긴 하지만, 내 기준에 무채색으로 맞춰 입는 것이 훨씬 편하고 쉽다. 그 때문인지 밝은색 옷을 입은 사람을 보면 뭔가 기운이 나고 나도 밝아지는 기분이다.
이런 사람도 있으면 저런 사람도 있는 법. 중요한 건 나와는 다른 사람에게서 얻는 긍정의 기운이 있다는 거다. 그건 나이, 성별, 학력 등으로 구분되는 에너지가 아니다. 그냥 그 사람의 일상 자체에서 느끼는 거다. 세상 모든 사람에게서 배울 점이 있다는 말과 통하는 말일까? 오늘도 무채색의 나는 유채색의 사람들을 존경하며 기운을 받아 간다. 이게 더불어 사는 세상이지 뭐.
박훌륭 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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