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댓글 “양곡법 강행 의원들 월급은 쌀로” [만물상]
초등학교 시절, 담임선생님이 매일 도시락 검사를 했는데 보리 섞인 밥이 아니라 쌀밥 위에 깨를 뿌린 ‘가짜 혼식’ 도시락을 내놨다가 혼이 났다. 1970년대 정부가 대대적인 혼·분식 장려정책을 펼 때였다. 일제강점기, 6·25전쟁을 거치면서 반찬 없어도 쌀밥 한 그릇이면 진수성찬이라는 게 할머니 소원이었다. 그래서 우리 집은 흰 쌀밥만 먹었다. 그 대가로 학교에서 혼·분식 단골 위반자가 돼야만 했다.
▶쌀은 반만년 넘게 한국인의 주식이라고 하지만 실제 우리가 쌀밥을 풍족하게 먹게 된 건 40~50년밖에 안 된다. 1960년대부터 쌀 생산이 크게 늘었지만 보리밥 대신 쌀밥을 마음껏 먹겠다는 국민들 수요가 급증하면서 여전히 쌀 부족에 시달렸다. 쌀을 덜 먹게 하려고 정부가 온갖 조치를 내놨다. 작은 크기의 밥공기를 보급해 고봉밥 대신 ‘공기밥’ 시대가 열렸다. 정부가 식당들 조리법까지 관여했다. 탕반류에 쌀 함량을 반으로 줄이고, 잡곡 4분의 1, 국수 4분의 1을 내도록 했다. 설렁탕에 소면 넣어 먹는 식습관도 이때 생겼다. 1969년엔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 쌀로 만든 음식을 팔지 못하는 무미일(無米日)까지 등장했다.
▶다른 먹거리가 풍성해지면서 한국인의 열렬한 쌀밥 사랑도 빠르게 식어갔다. 지난해 쌀 생산은 376만t. 1977년의 600만t에 비하면 3분의 2도 안 되는데도 쌀이 남아돌아 걱정이다. 1인당 쌀 소비량이 계속 줄어 30년 전에 비하면 절반도 안 먹기 때문이다. 쌀 소비량이 하루 평균 한 공기 반꼴이다.
▶남아도는 쌀을 국민 세금으로 몽땅 사들여야 한다는 거대 야당의 입법에 대통령이 취임 후 첫 거부권을 행사했다. 쌀 수급 관리 및 농업 발전에 도움 안 되는 생색내기용 포퓰리즘 입법이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양곡관리법’ 개정안 기사 밑에, 한 시민이 이런 촌철살인의 댓글을 달았다. “그 의원들한테는 세비를 쌀로 지급하자.” 조선 시대에는 국민들이 세금을 쌀로 내기도 했다.
▶작년 기준 국회의원 세비(월급)가 월 1285만원이다. 최근 여야 청년 정치인들이 “받는 돈은 세계 최고 수준인데 일도 그만큼 하느냐”고 반성했다. 그러지 말고 남아도는 쌀로 세비를 받아가는 건 어떻겠나. 마트에서 10㎏들이 쌀 한 포대가 3만원 안팎이니 매달 428포대이다. 그렇게 농민을 위한다니 국민 세금 퍼주기에 앞서 농민 사랑을 직접 실천해보라는 것이다. 실현 불가능하겠지만 무책임한 선심 입법을 보며 이에 동의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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