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미의 파란만장 인생사, 80세에 신곡도 냈는데 돌연사 [TEN스타필드]
우빈 2023. 4. 5. 20:13
현미, 4월 4일 자택에서 돌연사
빈소는 아직, 두 아들 입국 후 차려질 예정
'밤안개' '몽땅 내 사랑' '두 사람' 별' 히트곡 내놔
'한국형 팝' 시대를 연 가수로 평가
≪우빈의 연중일기≫
우빈 텐아시아 기자가 연예계의 기록을 다시 씁니다. 화제가 되는 가요·방송계 이슈를 분석해 어제의 이야기를 오늘의 기록으로 남깁니다.
짧은 파마머리, 언더라인까지 칠한 눈화장, 붉은 입술, 화려한 드레스. 가수 현미를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생각나는 이미지다.
여든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마이크를 잡았고 무대에 섰다. 중저음의 매력적인 보컬도 폭발적 성량도 좋았으나, 식지 않는 열정이 오랜 팬들의 행복이었다. 나이를 잊고 멋을 남겼던 현미.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인물이 저물었다.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현미는 지난 4일 오전 9시37분께 서울 용산구 이촌동 자택에서 쓰러진 채 발견됐다. 팬클럽 회장이 발견해 곧장 병원으로 이송했으나 사망 판정을 받았다. 경찰은 사망 원인을 조사 중이다.
준비되지 않은 이별은 허무했다. 현미는 작고 전날까지 홀로 KTX를 타고 대구 노래 교실을 다녀왔고, 평소처럼 일상을 보냈다. 미국에 있는 두 아들도 한국에 있는 조카들도 사랑하는 어머니와 이모가 돌연사할 거라 예상하지 않았다.
현미의 두 아들은 현재 미국 LA에 거주 중. 아직 유가족이 도착하지 않아 현미의 빈소를 차려지지 않았다. 아들은 6일 입국해 어머니와 마지막 인사를 하고 조문객을 받을 예정이다.
◆'한국형 팝' 시대의 시작점
미8군 무대에서 칼춤 무용수로 아르바이트를 하던 현미는 1957년 무대를 펑크낸 가수의 대타로 노래를 부른 것이 계기가 돼 연예인이 됐다. 김정애, 현주와 함께 '현 시스터즈'라는 그룹을 결성해 활동하다 작곡가 故 이봉조의 눈에 발탁됐다.
이때부터 이봉조와 현미는 '짝'이었다. 현미는 1962년 냇 킹 콜의 'It’s A Lonesome Old Town'를 번안·편곡(이봉조)해 발표한 '밤안개'가 히트하며 단번에 스타덤에 올랐다. 세련된 멜로디와 마음을 울리는 재즈풍 보컬은 신선한 충격을 줬다.
신성일·엄앵란 주연의 영화 '떠날 때는 말없이'의 주제곡도 대박이 났고, '떠날 때는 말없이' '몽땅 내 사랑' '두 사람' '애인' '별'까지 현미가 내놓은 모든 노래가 성공했다. 언론은 현미를 두고 '다이내믹 싱어' '폭탄 같은 가수'라는 수식어를 썼고, 1960년대를 대표하는 가수가 됐다.
1981년엔 미국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취임식에 초청돼 축가를 불렀다. 2007년에는 국내 가수 최초로 '데뷔 50주년 기념 콘서트'를 열었다. 현미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때까지 노래하겠다고 약속했다.
◆파란만장 인생사
현미는 음악적 파트너였던 작곡가 겸 영화음악 감독 이봉조와 가정을 꾸렸다. 두 사람 사이에 아들이 있지만 '혼인 관계'는 아니었다. 이봉조는 현미를 만나기 전 이미 딸이 있는 유부남이었다. 현미는 그 사실을 모른 채 결혼식을 올렸다며 "첫째 아이를 임신했을 때 유부남인 걸 알았다"고 주장했다.
이봉조는 본처와 이혼하지 않고 두집 살림을 이어갔다. 현미 역시 이봉조의 여자로 살며 아들 2명을 낳았다. 두 사람은 1976년 이별했다. 현미는 "내가 그분(이봉조) 덕분에 스타가 돼서 잘 산다. 그분이 나의 은인이오 스승이오 애인이오 남편이라고 생각한다"고 회상했다.
현미는 '노래'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향했다. 현미의 노래교실을 열어 노래를 가르쳤다. 현미는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게 노래 밖에 없다면서 "바쁘게 다니는 게 건강 비결"이라며 노래가 곧 행복이자 에너지의 원천이라고 강조했다.
나이가 들면서 청력이 저하된 현미는 보청기를 착용했다. 소리는 잘 들리지 않아도 열정은 그대로였다. 현미는 80세였던 2017년 80세에 신곡 '내 걱정은 하지마'를 발표했다. '나는 끄떡없어'라는 가사는 현미의 가수 인생이었고, 그만의 철학이었다.
대중에게 현미는 여러 면모가 있는 사람이다. 어떤 이는 현미를 '디바'라 여기고 또 다른 이는 이봉조의 여자로 기억하기도 한다. 변하지 않는 사실은 현미가 힘들었던 시절 노래로 위로했고 건강한 에너지로 우리를 응원했다는 것. 훌쩍 떠난 현미의 안식을 기원한다.
우빈 텐아시아 기자 bin0604@tenasia.co.kr
빈소는 아직, 두 아들 입국 후 차려질 예정
'밤안개' '몽땅 내 사랑' '두 사람' 별' 히트곡 내놔
'한국형 팝' 시대를 연 가수로 평가
[텐아시아=우빈 기자]
≪우빈의 연중일기≫
우빈 텐아시아 기자가 연예계의 기록을 다시 씁니다. 화제가 되는 가요·방송계 이슈를 분석해 어제의 이야기를 오늘의 기록으로 남깁니다.
짧은 파마머리, 언더라인까지 칠한 눈화장, 붉은 입술, 화려한 드레스. 가수 현미를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생각나는 이미지다.
여든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마이크를 잡았고 무대에 섰다. 중저음의 매력적인 보컬도 폭발적 성량도 좋았으나, 식지 않는 열정이 오랜 팬들의 행복이었다. 나이를 잊고 멋을 남겼던 현미.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인물이 저물었다.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현미는 지난 4일 오전 9시37분께 서울 용산구 이촌동 자택에서 쓰러진 채 발견됐다. 팬클럽 회장이 발견해 곧장 병원으로 이송했으나 사망 판정을 받았다. 경찰은 사망 원인을 조사 중이다.
준비되지 않은 이별은 허무했다. 현미는 작고 전날까지 홀로 KTX를 타고 대구 노래 교실을 다녀왔고, 평소처럼 일상을 보냈다. 미국에 있는 두 아들도 한국에 있는 조카들도 사랑하는 어머니와 이모가 돌연사할 거라 예상하지 않았다.
현미의 두 아들은 현재 미국 LA에 거주 중. 아직 유가족이 도착하지 않아 현미의 빈소를 차려지지 않았다. 아들은 6일 입국해 어머니와 마지막 인사를 하고 조문객을 받을 예정이다.
◆'한국형 팝' 시대의 시작점
미8군 무대에서 칼춤 무용수로 아르바이트를 하던 현미는 1957년 무대를 펑크낸 가수의 대타로 노래를 부른 것이 계기가 돼 연예인이 됐다. 김정애, 현주와 함께 '현 시스터즈'라는 그룹을 결성해 활동하다 작곡가 故 이봉조의 눈에 발탁됐다.
이때부터 이봉조와 현미는 '짝'이었다. 현미는 1962년 냇 킹 콜의 'It’s A Lonesome Old Town'를 번안·편곡(이봉조)해 발표한 '밤안개'가 히트하며 단번에 스타덤에 올랐다. 세련된 멜로디와 마음을 울리는 재즈풍 보컬은 신선한 충격을 줬다.
신성일·엄앵란 주연의 영화 '떠날 때는 말없이'의 주제곡도 대박이 났고, '떠날 때는 말없이' '몽땅 내 사랑' '두 사람' '애인' '별'까지 현미가 내놓은 모든 노래가 성공했다. 언론은 현미를 두고 '다이내믹 싱어' '폭탄 같은 가수'라는 수식어를 썼고, 1960년대를 대표하는 가수가 됐다.
1981년엔 미국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취임식에 초청돼 축가를 불렀다. 2007년에는 국내 가수 최초로 '데뷔 50주년 기념 콘서트'를 열었다. 현미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때까지 노래하겠다고 약속했다.
◆파란만장 인생사
현미는 음악적 파트너였던 작곡가 겸 영화음악 감독 이봉조와 가정을 꾸렸다. 두 사람 사이에 아들이 있지만 '혼인 관계'는 아니었다. 이봉조는 현미를 만나기 전 이미 딸이 있는 유부남이었다. 현미는 그 사실을 모른 채 결혼식을 올렸다며 "첫째 아이를 임신했을 때 유부남인 걸 알았다"고 주장했다.
이봉조는 본처와 이혼하지 않고 두집 살림을 이어갔다. 현미 역시 이봉조의 여자로 살며 아들 2명을 낳았다. 두 사람은 1976년 이별했다. 현미는 "내가 그분(이봉조) 덕분에 스타가 돼서 잘 산다. 그분이 나의 은인이오 스승이오 애인이오 남편이라고 생각한다"고 회상했다.
현미는 '노래'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향했다. 현미의 노래교실을 열어 노래를 가르쳤다. 현미는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게 노래 밖에 없다면서 "바쁘게 다니는 게 건강 비결"이라며 노래가 곧 행복이자 에너지의 원천이라고 강조했다.
나이가 들면서 청력이 저하된 현미는 보청기를 착용했다. 소리는 잘 들리지 않아도 열정은 그대로였다. 현미는 80세였던 2017년 80세에 신곡 '내 걱정은 하지마'를 발표했다. '나는 끄떡없어'라는 가사는 현미의 가수 인생이었고, 그만의 철학이었다.
대중에게 현미는 여러 면모가 있는 사람이다. 어떤 이는 현미를 '디바'라 여기고 또 다른 이는 이봉조의 여자로 기억하기도 한다. 변하지 않는 사실은 현미가 힘들었던 시절 노래로 위로했고 건강한 에너지로 우리를 응원했다는 것. 훌쩍 떠난 현미의 안식을 기원한다.
우빈 텐아시아 기자 bin0604@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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