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하의 '그런데'] 돈 들여 사람 잡겠네
밝은 곳에서 갑자기 어두운 쪽으로 향할 때 일시적으로 눈앞이 보이지 않는 플리커 현상.
특히 고속으로 질주하는 차량의 경우엔 터널에 진입하거나 빠져나올 때 밝기 차이로 대형 사고가 나거나 아찔한 위험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때문에 터널에 주황색 나트륨램프를 쓰고 입구 쪽엔 더 많은 등을 달아 눈부심을 줄이는 거죠.
그런데 이렇게 조심 또 조심해야 하는 터널에서 빠져나가자마자 갑자기 진출로가 나타난다면 어떨까요. 그것도 가장 고속으로 주행해야 하는 맨 왼쪽 1차로 쪽으로 말이죠.
실제로 이런 도로가 광주광역시 지산IC에 만들어졌습니다.
주변 교통난을 해소하겠다며 만든 이 IC는 애초 다른 곳처럼 맨 오른쪽 하위차선으로 빠져나가게 설계됐었습니다.
하지만 소음·분진 피해가 있을 거라는 민원에 중간에 바꾼 겁니다.
3년간 77억 원을 들여 2021년 11월에 공사를 마쳤지만 아직 개통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는데 앞으로도 못 쓸 것 같습니다.
왜냐구요? 5개월간 진행한 교통사고 예측 및 위험도 평가 결과 사고위험이 일반 진출로보다 무려 14.3배가 높은 걸로 나타났거든요. 시뮬레이션을 해보니 진출 실패율은 무려 40%에 달했습니다. 여길 다니는 차량의 거의 절반이 길을 찾지 못하고 그냥 지나친다는 얘깁니다.
광주시가 이걸 모르고 만들었을까요. 아닙니다. 국토교통부는 이미 터널 진출 시 최소한 675m의 거리를 두고 진출로를 만들 것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긴 70m에 불과하죠. 제한속도가 90km의 이르는 고속화 도로에서 차들이 제 길을 찾지 못해 허둥대거나 갑자기 속도를 줄인다면 대형참사의 위험이 클 건 뻔합니다.
광주시는 지산IC 개통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다른 활용 방안을 찾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도로를 지어서 차량 통행에 쓰지 않으면 여기에 농사지은 고추·참깨라도 말리겠다는 걸까요.
광주시는 이제 감사에 나선다고 합니다. 그러면 여기서 어떻게 저렇게 말도 안 되는 설계가 나왔는지 밝혀질까요. 글쎄요.
세금 대주는 국민은 또 복장이 터집니다.
김주하의 그런데 오늘은 '돈 들여 사람 잡겠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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