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소현 감독이 참사를 기록하는 방식···무대 위의 연대 담긴 '장기자랑'
이소현 감독이 다큐멘터리 '장기자랑'과 함께 극장가에 찾아왔다.
지난 3월 31일 오후 서울시 종로구 삼청동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장기자랑' 이소현 감독과의 인터뷰가 진행됐다.
'장기자랑'(감독 이소현)은 세월호 참사 이후 슬픔에 잠겨 있던 엄마들이 '4.16 가족극단 노란리본'을 중심으로 모여 변화했던 과정을 조명하는 다큐멘터리다.
세월호 참사 유족인 엄마들이 만든 극단 '4.16 가족극단 노란리본'을 카메라에 담고자 했던 이소현 감독은 자신이 처음 엄마들을 만났던 순간을 떠올렸다. 그는 "전공이 영화 사운드 쪽이었다. NHK에서 다큐멘터리를 찍었는데 그 당시 동시 녹음팀을 하면서 세월호 유족분들을 만나게 됐다. 그중 한 엄마가 연극을 하고 있었고 공연에 초대했다. 그렇게 엄마들을 만나게 됐다"고 회상했다.
이후 엄마들과 유대 관계를 쌓던 이소현 감독은 연극 홍보 영상을 찍어주겠다고 약속하게 됐다. 그렇게 맞이하게 된 홍보 영상 촬영 날, 예상치 못한 에피소드로부터 '장기자랑'이 시작됐다.
"홍보 영상 촬영을 하기 위해 집을 방문한 날이 마침 연극 캐스팅 발표 날이었다. 질문이 두 개밖에 없었고 짧은 영상이었는데도 나를 붙잡고 두,세 시간 동안 캐스팅이 잘못됐다고 토로하시더라.(웃음) 이것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으시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 세월호 참사 유족들의 괴로워하는 모습을 찍는 분위기였다면, 나의 경우 반대로 마음을 터놓고 하는 이야기들을 찍으며 이 참사에 대해 자연스럽게 기록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소현 감독은 엄마들이 연극을 연습하는 과정부터 그들이 사는 일상까지 모든 것을 기록했다. 그는 촬영과 편집 비하인드에 대해 "처음부터 무언가에 집중해서 계획해 찍은 것은 아니었다. '일단 가는 것이지'의 느낌으로 다 찍고 난 후에서야 이 영화는 무조건 해피 엔딩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진실 규명이 되는 순간이 엔딩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후 정권이 바뀌었고 그런 상황은 점점 멀어졌다. 사람들은 슬픈 것에서부터 멀어지고 싶어 한다. 그 마음도 이해가 간다. 그러기에 아직 안 밝혀졌다는 이야기를 안부를 전하듯이 친근하게 전하는 영화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장기자랑'에서 엄마들은 마치 여고생들처럼 주인공 자리를 두고 티격태격 싸우기도, 서로에게 투정을 부리기도 한다. 이소현 감독은 세월호 참사의 유족으로서 괴로워하는 모습을 담는 것 대신 그들의 유년 시절을 떠올리게 만드는 풋풋한 모습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는 "영화에 들어가지 않았지만 공연을 올리기 전에 서로 '밤새워서 연습했지?'. '난 피곤해서 그냥 잤어', '뭐야, 그래놓고 혼자 제일 잘할 거잖아'라고, 마치 고등학생이 시험 보기 전 나누는 대화를 나눴다"며 마치 소녀가 된 것 같은 엄마들의 귀여운 모습을 떠올렸다.
그런 엄마들에게 연극이란 무슨 의미였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이소현 감독은 "엄마들에게 연극은 무대에서 발화하고 관객들을 만나 온전히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한다. 한 명이라도 빠지면 공연은 절대 올릴 수 없는 것이다. 가끔 미울 때도 있지만 서로의 존재가 온전히 필요하며 함께 공연을 올렸을 때 그 의미가 더 크게 다가온다고 생각한다. 또한 연극은 나를 가장 잘 이해하는 존재와 삶을 계속 살아가고 싶은 마음같기도 하다"고 정의했다.
'장기자랑'은 세월호 참사라는 비극으로부터 살아남은 엄마들이 함께 무대에 오르는 연대의 힘이 빛나는 작품이다. '4.16 가족극단 노란리본'의 무대에는 희생자 엄마와 생존자 엄마가 함께 오른다. 이에 대해 희생자 엄마가 "생존자도 희생자고, 유가족도 희생자다"라고 언급하며 생존자 엄마를 "세상과의 연결고리"라고 표현한 인터뷰는 그들의 연대를 빛냄과 동시에 편견을 바꾸는 장면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이소현 감독은 생존자 엄마의 존재를 '장기자랑'에서 다뤘던 과정을 언급했다. 그는 "이 작품에 본인이 부각되는 것을 꺼리기도 했고 실제로 극단 내에서 그림자처럼 봉사하고 싶어 하는 마음을 지니셨었다. 하지만 생존자 엄마의 존재는 '4.16 가족극단 노란리본'에서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생존 학생은 살아 돌아왔으니까 괜찮다'고 생각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생존자 엄마를 전면부에 내세우진 않았지만 중반부에 올림으로 인해 공동체의 의미가 완성되면서 함께 하는 것의 의미를 주고 싶었다. 다함께 공연을 성공적으로 올린 후 생존자 어머니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사람들의 인식에서 세월호 참사는 점차 더 먼 기억이 되어가고 있다. 엄마들의 연극을 찾아오는 기자들도 줄었고, 미디어에서의 언급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 그러기에 더욱 이소현 감독은 '장기자랑'을 응원해 준 사람들의 힘을 잊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배우 유지태의 방문은 감동적인 기억으로 남았다. 이소현 감독은 유지태 배우가 엄마들을 보러 왔던 당시를 떠올렸다. 그는 "인사하고 싶다고 오셨다. 이전에 만나 뵙지도 못했는데 갑자기 오셔서 인사하시고 두꺼운 봉투들을 주시더라. 엄마들이랑 감독들이 같이 쓰시라고 넣은 상품권이 편지와 함께 들어있었다"며 회상했다.
더불어 같은 날인 4월 5일 개봉을 앞둔 '리바운드'의 감독인 장항준을 향한 감사한 마음도 내비쳤다.
"장항준 감독님이 유가족 협의회 오셔서 봉사활동도 하시고 토크쇼 같은 것도 하셨었다. 장항준 감독님도 이번에 '장기자랑' 시사회에 초대하자고 했는데 개봉일이 똑같아서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장항준 감독님의 '리바운드'도 잘 되셨으면 좋겠고 응원을 보내고 싶다. 정말 감사한 분이라고 생각한다."
한편, 이소현 감독의 다큐멘터리 '장기자랑'은 극장 상영 중이다.
정지은 기자 jean@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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