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더 일했으니 퇴직금 못 준다?…체불보증 허점에 두번 우는 이주노동자

조성신 매경닷컴 기자(robgud@mk.co.kr) 2023. 4. 5.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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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 [사진 = 연합뉴스]
퇴직금을 못 받은 이주노동자가 정해진 근로계약 기간보다 단 하루 더 일했다는 이유로 정부가 정한 임금체불 보증보험으로부터 보상을 거부당한 사례가 확인됐다.

5일 SBS 보도에 따르면, 경남 산청의 한 딸기농장에서 3년 동안 일한 캄보디아인 A씨는 퇴직금 852만원 중 329만원을 받지 못했다.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는 사업주는 의무적으로 출국만기보험과 임금체불 보증보험에 가입해야 한다.

농장주는 미지급금을 임금체불 보증보험에서 받으라고 했다.

하지만, 보증보험사는 지급을 거부했다. A씨가 근로계약 기간보다 하루 더 일했다는 게 이유였는데, 임금체불 발생 시점이 보증보험이 책임지는 기간을 넘겼다는 것이다.

이와는 별개로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임금체불 보증보험과 관련해 유사한 불이익을 받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 국내 고용주들이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근로 기간 연장을 요구하고도 정작 보증보험 기간은 연장해주지 않는 것이 대표적이다.

8년 전 캄보디아에서 온 B씨는 경기도 여주의 한 농장에서 3년 10개월간 일했다. 하지만 임금과 퇴직금 3300만원을 받지 못했다. 당시 23살이었다.

B씨는 캄보디아 이주 노동자들을 지원하는 ‘지구인의 정류장’의 도움을 받아 노동청에 농장주를 신고했다. 노동청도 체불임금을 인정했고, 민·형사 재판 모두 B씨가 승소했다. 하지만 B씨는 3000만원을 포기하고 캄보디아로 돌아갔다. 소송이 진행되는 사이 비자가 만료됐기 때문이다.

작년 11월 기준 임금이 떼여 노동청에 신고한 이주 노동자는 1만4000명에 달한다. 신고 방법이나 도움을 구할 줄 모르는 이주 노동자가 많은 점을 고려하면 실제 피해자 규모는 더 클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이들 중 상당수는 밀린 임금을 포기하고 고국으로 돌아가거나, 임금을 줄 때까지 버티는 대신 미등록 체류자가 될지 선택 기로에 놓이게 된다. 이처럼 극단적인 선택지가 주어진 배경엔 비자 문제가 있다.

사업주들은 임금을 주지 않는 이유는 ‘솜방망이’ 처벌 때문이다. 밀린 임금 대신 벌금이 터무니 없이 낮게 책정되다 보니 이주노동자의 비자가 만료될 때까지 버티기를 선택하는 사업주가 늘고 있는 것이다.

임금 체불이 발생했을 경우에 대비한 보호책도 있지만 효과가 제한적이다. 앞서 말한 고용노동부가 이주노동자를 고용하려는 사업장에 가입을 의무화한 ‘임금체불 보증보험’가 그것이다.

임금체불 사고가 발생했을 때 이주노동자에게 보상액을 지급하는 제도다. 2021년 인상이 되긴 했지만, 최대 보상액이 400만원에 불과하다.

임금체불보험의 보상액을 ‘대지급금’만큼 늘려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대지급금은 고용노동부 장관이 사업주를 대신해 체불임금을 지급하는 제도로, 최대 보상액이 1000만원이다.

지난해 정부는 올해 고용허가제(E-9 비자)로 들어올 이주 노동자 규모를 11만명으로 정했다. 작년보다 4만1000명이 늘어난 역대 최대 규모다. 수천만원을 포기하거나, 불법 체류자가 되거나. 잔인한 선택지만 남겨둔 상황에서 11만명의 이주 노동자들이 한국으로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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