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동직불제 재도입 고려할만…전략작물·채소로 확대하는 역발상을” [‘양곡관리법’ 거부…대안은①]

홍경진 2023. 4. 5.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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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양곡관리법’ 거부…대안은]
①김명환 GS&J인스티튜트 시니어 이코노미스트

윤석열 대통령이 4일 국무회의에서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한 재의요구권’을 의결했다. 국회로 돌려보낸 개정안은 사실상 폐기되고 2021년 쌀 수확기부터 점화된 양곡관리법 논란이 결국 ‘빈손’으로 끝나버릴 우려가 가능성이 높아졌다.

정부는 ‘전략작물직불제’로 쌀 수급 균형을 맞추고 비상 상황에는 시장격리를 하겠다는 대책을 제시하고 있지만 벌써 큰폭의 쌀소득 감소를 경험한 농민 입장에선 잘 와닿지 않는 얘기다. 2020년 변동직불제(쌀 목표가격제) 폐지로 쌀값 완충장치를 잃어버린 쌀 생산농가들은 소득 안정을 위한 대안이 추가로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농민신문>은 우리 주곡이자 농정의 중심에 있는 ‘쌀’에 어떤 정책이 필요한지 전문가 인터뷰를 통해 ‘양곡관리법 거부권 이후’의 대안을 모색한다. 김명환 GS&J인스티튜트 시니어 이코노미스트의 의견을 들어봤다.

쌀 수요진작이 핵심⋯전략작물 기대소득이 쌀소득보다 크다는 확신 줘야

Q1. 양곡관리법 논란의 핵심은 ‘수요초과 쌀 관리방식’에 있었다. 바람직한 초과 쌀 관리방식은.

▶실질가격으로 보면, 30년 전인 1992년에 비해 쌀값은 24% 하락했고, 경영비는 117% 상승했다. 이 기간 면적당 소득은 47% 하락했고, 쌀 농가가 규모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가구당 소득은 12% 하락했다. 이같은 현상은 동기간 연평균 쌀 소비량 감소율이 1.8%인데 비해 생산량 감소율은 1.5%에 그친 공급과잉 구조에 기인한다.

수요초과 쌀 관리를 위한 첫째 요건은 수요 진작이다. 현 농정당국이 추구하는 가루쌀 수요 확대와 가공적성 품종 개발 조성이 중요할 것이다. 단기적인 저가 보조지원은 지양하고 장기적 시장조성 정책을 꾸준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흉년 들면 없어지는 정책은 없느니만 못하다.

둘째, 쌀 감산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단기적인 전략작물 보조금 지급보다는, 장기적으로 전략작물의 기대소득이 쌀 소득보다 크다는 확신을 농가들에게 줘야 한다. 그러자면 쌀과 같은 소득보장장치와 논에 배수시설을 갖추는 등 논 범용화에 대한 투자 지원이 상시적인 정책프로그램으로 자리잡아야 할 것이다.

이같은 두 가지 정책을 장기적으로 꾸준히 추진하는 동시에, 대풍이 들어 일시적으로 쌀값이 급락할 경우의 시장격리는 긴급장치로서 필요하다. 양곡관리법 개정안과 같이 3% 예상공급과잉이나 5% 가격하락에 의무적으로 대응한다면 정책 개입이 너무 잦아질 뿐더러, 통계 오차에 의한 정책실패로 시장기능을 왜곡시키는 부작용이 크다. 

시장격리의 원칙에서 물량 기준은 폐지하고, 가격 하락에 대응하는 게 바람직할 것으로 보인다. 개입이 필요한 하락률을 얼마로 볼지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필요할 것이나, 5~10% 범위 내에서 결정하는 게 타당할 것으로 보인다.

타작물 재배지원, 정책비용 매년 늘지만 벼 감산효과 제한적  

Q2. 정부는 쌀 수급안정 대안으로 전략작물직불제 등 타작물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쌀 농가의 작목전환 유인이 크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2000년 이후 세차례 타작물 재배지원사업의 누적 면적이 19만8000㏊에 이르나 재배면적 감소 효과는 이의 14.6%인 4만3000㏊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된다. 농가 스스로 필요에 의해 논을 밭으로 전환한 순면적 29만㏊에 비하면 타작물 재배지원 정책의 효과는 매우 제한적이었다.

2003∼2005년에는 생산조정사업으로 3년간 7만6000㏊, 2011∼2012년에는 논이용다양화사업으로 2년간 4만5000㏊, 2017~2019년에는 타작물 재배지원사업으로 3년간 7만7000㏊가 지원됐다.

타작물 재배지원사업의 효과가 낮은 것은 첫째, 이 사업이 없었더라도 타작물을 재배할 예정지가 사업 대상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 보조금을 받는 동안에는 타작물을 재배하지만, 보조금이 중단되면 다시 수익성이 높은 벼 재배로 회귀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원 누적 면적은 증가하지만 타작물 면적은 증가하지 않는 현상이 나타난다. 타작물 면적을 늘리려면 지원면적을 계속 늘려야만 한다. 이는 미국·유럽·일본 등이 오랫동안 시행하다 결국 실패하여 포기한 대표적인 정책으로, 우리나라가 이를 단기적으로나 항구적으로 운영할 경우 정책비용은 매년 증가하나 감산효과는 매우 작은 정책이 될 수밖에 없다.

변동직불제 효과 이미 입증⋯기준가격은 시장가격 참고해 결정

Q3. 쌀 수급이 안정된다 해도 쌀값이나 쌀소득은 떨어질 수 있다. 쌀농가의 소득안정을 위해 고려해 볼 방안이 있다면.  

▶정부가 2005년 도입해 2020년에 폐기한 바 있는 변동직불제의 재도입을 고려할 수 있다. 변동직불제의 재배면적 증대효과는 매우 미미한 반면 소득안정효과는 매우 큰 것으로 추정된다. 변동직불금의 재배면적 탄성치는 0.0006으로 매우 작아 지급액이 100% 증가(두 배로 증가)해도 재배면적은 0.06% 증가하는 데 그친 것으로 추정된다.

1992~2004년의 실질가격 변동률이 3.51%였으나 2005~20년에는 10.15%로 2.63배 증가해 가격변동성이 대폭 증폭됐으나, 변동직불금을 가산한 수취액 변동률은 4.65%로 변동성이 2분의 1 수준으로 축소됐다. 가격 변동성이 컸던 시기에 경영안정 효과가 컸던 셈이다.

2020년 정부가 쌀 변동직불제를 폐지한 것은 기준가격이 정치적으로 결정돼 재정소요가 계속 커지고 직불금이 쌀에만 쏠려 쌀은 과잉되고 쌀 이외의 농업을 위한 재원이 줄어드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따라서, 변동직불제를 쌀이 아닌 콩 등의 전략작물, 나아가 소득이 쌀보다 더욱 불안정한 주요 채소류까지도 확대하여 농가들이 쌀에만 매달리는 구조를 농업 전체로 펼치는 역발상이 필요하다.

이럴 경우, 많은 수의 작물들의 기준가격을 정하는 문제, 그것이 정치적으로 물의를 일으킬 소지가 있다. 기본적으로 기준가격은 평년 산지가격, 평년 도매가격으로 하고, 물가상승률 등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농업계가 작목끼리 타협하고 헤쳐나가야 할 과제이다.

현재의 시장격리제는 가격안정을 위한 시장개입을 해서는 안 된다는 세계무역기구(WTO) 원칙에 저촉되는 측면이 있어 재정상 한계가 있다. 그에 비해 변동직불제는 재정 상한이 커진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품목별 재정이 소요될 때마다 예산 당국의 허락을 받지 말고, 농림축산식품부 예산 틀 안에서 쓰도록 변동직불제 발동이 자동적으로 이뤄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쌀 농정에서 벗어나 모든 품목에 똑같은 우산(논 범용화, 변동직불제)을 씌워주는 농정으로 가야한다. 그래서 농가들이 가격불안 때문에 해마다 품목을 전환하는 악순환을 끊고, 품목별로 생산성이 높은 지역들이 각각의 주산지로 발전하고, 생산이 규모화되고 품질이 균일화되어 판로와 판매가격이 안정되고, ‘계약 없이 생산 없는’ 선진농업 조직으로 발전하는 게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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