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과도시]비움과 채움···녹색 걷어낸 회색 혁신

변수연 기자 2023. 4. 5.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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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제2사옥 '1784']
1784는 지번이자 산업혁명 상징성
초록 기업이미지 대신 무채색 입혀
내부기둥 없애 간결한 공간 구현
로봇이 업무 보조부터 승강기 호출
세계 최초 사람·로봇공존형 건물
작년 건축문화대상 대상 수상도
[서울경제]
네이버 제2사옥인 '네이버 1784' 전경. 제1사옥(초록색 건물)과의 조화를 고려해 설계됐다.사진 제공=삼우종합건축사사무소디자인 예감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오피스의 개념은 새롭게 정립됐다. 재택·원격근무가 일상화되면서 오피스는 기존의 전통적인 일하는 곳 이상의 의미를 지녀야만 했다. 임직원들의 생산성을 끌어올리기 위한 기업들의 오피스 실험이 이어졌는데 지난해 4월 경기도 판교에 준공된 네이버 제2사옥 ‘1784’는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2022 한국건축문화대상 건축물 민간 부문 대상(대통령상)을 수상한 이 건물의 이름은 주소지인 ‘정자동 178-4번지’에서 따왔다. 1차 산업혁명이 시작된 시기가 1784년이라는 점도 1784의 정체성을 강조한다.

1784는 세계 최초의 로봇 친화형 빌딩이자 네이버가 개발하는 첨단 기술의 집약체이자 테스트베드로 불린다. 이를 구현하기 위해 5000억 원의 공사비와 함께 6년의 공사 기간이 소요됐다. 이보다 앞서 시작된 설계는 건물이 지어지는 중간에도 계속 바뀌며 총 7년이 걸렸다.

고기능으로 꽉꽉 채운 건물이지만 겉과 속은 오히려 무채색의 얌전한 모습이다. 이전의 사옥이 외관에서부터 기업의 이미지를 맹렬히 담아내는 데 주력했던 것과 비교된다. 바로 왼편에 위치한 제1사옥(그린팩토리·2010년 준공)이 네이버의 브랜드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 초록색으로 설정한 것과 달리 회색빛의 건물로 세워졌다.

네이버 1784 저층부 전경. 사용자가 원하는 대로 덮개를 열고 닫을 수 있다. 이를 통해 메시지도 전달 가능하다.사진 제공=삼우종합건축사사무소디자인 예감

1784는 그린팩토리의 보다 나은 버전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 네이버 1784의 설계는 그린팩토리를 설계한 삼우종합건축사사무소가 맡았고 시공은 삼성물산이 함께 원팀으로 움직였다. 설계팀은 기존 그린팩토리와의 조화뿐 아니라 1784의 브랜딩에 초점을 맞추고 다양한 덩어리의 배치를 고민했다. 그 결과 기존 사옥과 닮되 약간 형태를 달리한 3개의 직육면체로 구성된 플랫폼을 결정했다. 세계 최초의 로봇 친화형 빌딩이라는 기능이 담겨 있다고는 믿기 어려운 간결한 형태다. 이는 설계자의 의도가 담겨 있다. 다양한 정보기술(IT) 인재들의 집합소로서 서비스나 조직의 변화, 그리고 사용자의 다양성을 고려해 공간을 규정짓지 않고 오히려 간결하고 비워진 형태의 공간 플랫폼을 만들기 위한 것이다.

네이버 1784는 세계 최초의 로봇 친화형 빌딩으로 설계됐다. 로봇이 원활히 주행할 수 있도록 문턱 등을 없앴다.사진 제공=삼우종합건축사사무소디자인 예감

1784는 공간을 만드는 소재의 가공을 최소화하고 자재의 물성 그대로를 드러낸다. 기술 융합이라는 1784만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잘 드러낼 수 있도록 주변과의 관계를 받아들이기 위한 설계 의도다. 시공 흔적인 줄눈을 최소화한 노출콘크리트, 스테인리스·알루미늄·스틸·유리의 조합으로 만든 무채색의 공간은 물성 그대로를 보여주며 주인공인 임직원이 돋보일 수 있도록 한다.

1784는 새로운 종류의 업무 환경을 모두 담아내는 그릇과 같은 역할을 한다. IT 서비스 산업을 위한 새로운 업무 플랫폼으로 설계됐는데 실시설계 이후로 네이버 핵심 조직들의 입주가 결정되면서 건축 인프라 설계도 계속 바뀌었다. 이 과정에서 네이버 디자인팀과 설계팀이 함께 협력해 세계 최초로 로봇 공존형 건물을 만들게 됐다. 1784에는 ‘루키’라고 불리는 브레인리스 로봇이 근무하는데 로봇은 사내 우편물 배송, 도시락 및 카페 음료 배달 등 다양한 일을 돕는다. 로봇이 원활히 다닐 수 있도록 바닥의 단차를 모두 없앴다. 36대의 승강기 모두 로봇 시스템과 연계돼 로봇이 승강기를 호출할 수 있다. ‘로보포트’라고 불리는 세계 최초의 로봇 전용 엘리베이터도 함께 설치됐다.

1784는 그린팩토리와 같은 층수로 지어졌지만 총면적은 1.5배에 달한다. 내부 기둥을 생략해 죽은 공간을 없애는 등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보통 사무 공간이 외주부 기둥이 실내에 노출돼 있어 워크스테이션을 구성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면 1784의 기준층에서는 외주부 기둥을 내부 커튼월 라인과 일치시킴으로써 ‘죽은 공간’을 최소화했다. 내부 회의실은 니즈에 맞게 언제든지 바꿀 수 있도록 가변형 회의실을 채택했다. 스프링클러, 각종 센서, 자연환기, 소음 차단 등을 맞춰 제어할 수도 있다.

1784는 그린팩토리보다 훨씬 더 큰 규모임을 고려해 건물 내에서도 자연을 향유할 수 있는 세 개의 아트리움을 계획했다. 이 아트리움들은 1784의 내부를 연결하고 분리하는 역할을 하며 외부 일조량을 건물 내부로 깊숙이 들어오게 해준다.

내외부 모두 디자인이 최소한으로 직선화·간결화된 1784이지만 스카이홀만큼은 유일하게 디자인 요소로 사선 이미지가 적용됐다. 기준층의 높이가 3.2m였다면 이곳은 7m 이상의 높은 층고로 계획돼 사용자들에게 특별한 공간 경험을 제공한다.

1784는 기술 융합을 콘셉트로 설계됐는데 다양한 제어 방식으로 자연에너지를 활용하고 인공에너지 사용을 최대한 절감했다. 특히 타워부에는 그린팩토리와 비슷한 외관을 구현하면서도 적은 에너지로 외부의 빛과 온도를 효율적으로 제어하는 ‘트리플 스킨 파사드’ 시스템이 적용됐다. 그린팩토리가 외부 단열 유리와 내부 전동 수직 루버로 이뤄졌다면 1784는 내부 단열 유리, 중간 전동 수직 루버, 외부 저반사 안전 유리로 구성됐다. 인근 건물에 대한 빛반사를 최소화하기 위해 백화점 쇼윈도에 쓰이는 2%대의 저반사율을 가진 유리가 사용됐다. 이 파사드는 내부 발열률이 높은 오피스의 냉방 에너지 저감을 위해 수평 차양 역할을 한다. 또 전동 수직 루버는 태양 궤적의 변화에 반응하는데 패널마다 향과 위치에 따른 타공률을 조정해 외부 조망이 가능하면서도 실내에서의 눈부심을 최소화했다. 햇빛을 들이면서도 사용자들의 생산성을 끌어올리기 위한 의도다. 이 패널들은 사용자의 니즈에 따라 개폐가 가능하며 패널 조작을 통해 메시지도 전달이 가능하다.

네이버에 따르면 1784는 지난해 4월 개방한 후 반년 만에 2500여 명이 공식 방문하며 주목을 끌고 있다. 삼우종합건축사사무소 관계자는 “최근 사옥 설계를 의뢰하는 기업에서도 1784를 모델로 삼아 설계를 부탁하고 있다”며 “앞으로 사옥 설계는 1784처럼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담되 사용자 중심이 트렌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변수연 기자 dive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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