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형의 여담] 학문에 대한 열정은 얼마나 중요한가?
[김민형의 여담]
김민형 | 영국 에든버러 국제수리과학연구소장
최근 들어 자주 동료 교수들로부터 ‘요새 학생'들의 열정 결핍에 관한 불평을 듣는다. 한편으로는 별 심각성 없이 지나가는 의견으로 간주할 수 있다. 그러나 교육을 개정하는 복잡한 과정에서 지나가는 의견이 여론이 되고 여론은 어떤 식으로 든 정책에 반영될 가능성이 작지 않다. 그래서 별수 없이 잡담에 관한 생각도 다소 심각해질 때가 있다.
교육에 관한 담론에 참여할 때마다 강하게 느끼는 것은 정확한 실태 파악이 어렵다는 것이다. 가령 ‘수포자'가 많다는 의견이 있으면 그것이 무슨 뜻인지 어떤 상황에서 얼마나 조심스럽게 조사해서 근거를 찾아낸 것인지 알아내기 어렵다. 물론 나 자신도 학생들의 열정을 실제로 조사할 능력은 없다. 따라서 그 주제로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약간만 이야기하려고 한다.
내가 미국에서 영국으로 이직한 때가 2007년이니, 약 17년 미국에서 가르친 뒤 13년을 영국, 구체적으로 런던대학과 옥스퍼드대학에서 가르쳤다. 런던대학에서 일하기 시작했을 때 새로운 사회를 체험하면서 수학과 학생들의 문화가 미국과 다른 점들이 자연히 눈에 띄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열정의 차이였다. 미국 대학들에서는 수학을 전공하는 학생이라면 대체로 수학에 대한 ‘꿈'을 마음속 어딘가에 품고 있었다. 수학 그 자체를 어떤 식으로든 멋지다고 생각하면서 다분히 낭만적인 시각으로 공부에 임하는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뚜렷한 현실성 없이도 수학자가 되겠다는 꿈을 가진 학생들이 적지 않았다. 꿈이 컸던 만큼 좌절이 큰 모습도 당연히 많이 보았다.
하지만 내가 경험한 한도 안에서, 런던대학과 옥스퍼드에서는 수학을 장기간 공부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학생 수 자체가 소수다. 대부분 학생은 자신이 수학에 어느 정도 소질이 있다는 직관과 수학 학위가 취직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이 더해져 전공을 선택한다. 실제로 전국적으로 수학은 지속적으로 취직률이 높은 학과다. 수학과에서 반가워하는 통계지만, 그 때문에 수학에 큰 관심이 없는 학생들도 다수 지원한다.
옥스퍼드에서 특히 자주 관찰한 현상 하나는 3학년 즈음 필수 과목이 없어지면서 성적이 잘 나온다는 소문이 있고 내용이 상대적으로 쉬운 과목을 찾는 학생이 많다는 점이었다. 즉, 수학에 대한 열정을 학생들 사이에서 찾기 힘들다. 이런 문화 차이는 사실 수학과에 국한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미국 대학에서는 입학사정 때부터 자기소개서에 나타나는 열정을 중시한다. 그러나 영국대학에서는 상당히 뛰어난 학생도 자기소개서를 형식적으로 쓰는 편이고, 지원서를 읽는 교수도 소개서를 중요하게 보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근본적인 질문은, 학생들로부터 열정을 어느 정도 기대하는 것이 좋은가이다. 수학을 연구하는 교수 처지에서는 자연히 학생들에게 자기와 비슷한 수준의 열정을 바라지만, 학생들이 생각하는 진로는 각양각색일 것이다. 그러면 수학자가 되고 싶은 학생은 온 인생을 수학에 바쳐야 하는가. 나로서는 이에 관해 자신 있는 답을 내기 힘들다. 어찌 보면 이 질문은 ‘열정'과 ‘즐거움' 사이의 미묘한 관계를 추궁한다. 이것이 상호보완적일 수도, 상충관계일 수도 있다는 것이 핵심적인 어려움이다. 여러 종류의 창조적인 작업에서 열정이 즐거움과 같이 갈 수도 있지만, 인간과 인생의 경험은 그보다 훨씬 다양하다. 즉, 정열적인 헌신이 지속적으로, 또 직업적으로 일상적인 즐거움 속에서 일하는 것을 방해할 수도 있다.
지금의 나는 영국 학생들의 문화를 대체로 선호한다. 내가 아는 전형적인 영국 수학과 학생들의 동기를 들여다보면 ‘실용성'과 ‘즐거움'의 적당한 배합이라는 느낌이다. 재미있는 한도 안에서 한번 해보는 수준으로 수학전공을 택한 것이다. 물론 수학에 완전히 빠져서 계속 열심히 하는 학생들도 있다. 그러면서 수학 공부를 바탕으로 다른 일을 하는 사람이 다수이고 적당한 수준에서 직업적으로 일하는 수학자도 많은 것이 건전한 문화라는 주장을 이해하게 됐다. 미국과 유럽의 차이를 표현하는 ‘복지국가' 틀 안에서는 큰 열정에 의존하지 않고도 원활하게 운영되는 사회체제가 중시된다. 이런 복지원리가 학문과 교육에서도 나타나는 것이 자연스럽다.
물론 이런 관점이 질문의 끝일 수는 없다. 현재 파리 거리를 뒤덮은 시위처럼 유럽 미디어에 자주 나타나는 ‘복지국가의 위기'를 목격할 때면 마음이 흔들리며 나 역시 학생들에게서 정열을 기대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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