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미 다이먼 “은행 위기 안 끝났다”…높아지는 경기 침체 우려
"현재 위기 언제끝날지 모르지만 2008년과는 달라"
"연준, 금리급등 상황에 대한 스트레스테스트 안해"
[홍콩=이데일리 김겨레 기자] 세계 최대 은행 JP모건체이스의 최고경영자(CEO) 제이미 다이먼 회장이 최근 실리콘밸리은행(SVB)과 크레디트스위스(CS) 붕괴 등 은행 위기의 여파가 수년 동안 지속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경기 침체 가능성을 예고하면서 연방준비제도(Fed)의 리스크 관리 소홀도 지적했다.
다이먼 회장은 4일(현지시간) 주주들에게 보낸 43페이지 분량의 연례 서한에서 “현재의 위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며 “위기가 일단락되더라도 그 파장은 수년 동안 미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과 유럽이 SVB와 CS 사태를 조기 진압했지만 위기가 끝났다는 생각은 시기상조라는 취지다.
다이먼 회장은 SVB의 예치금이 소수의 벤처캐피털 회사에 의해 통제되고 있었다는 사실이 가려져 있었다고 꼬집었다. 또 이번 은행 위기가 시장에서 많은 불안감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에 향후 은행과 다른 대출 기관이 더욱 보수적으로 운영될 것이라고 봤다. 누적된 통화정책 긴축의 부담에 대출 위축까지 더해질 경우 경기 침체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연준의 양적 긴축이 10년 이상의 양적 완화 뒤에 따른 것이기 때문에 통화정책을 쉽게 뒤집기 어렵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했다.
다이먼 회장은 “현재 위기가 언제 끝날지는 분명하지 않다”며 “돈의 방향과 속도가 이전과 크게 달라졌기 때문에 모든 것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고 했다.
다이먼 회장은 JP모건은 높은 금리가 상당 기간 이어질 상황에 대비하고 있다면서 인플레이션 지속에 무게를 뒀다. 그는 “우리는 더 오랫동안 더 높은 인플레이션을 겪을 수 있다”며 “더 높은 금리는 대출을 재융자해야 하는 모든 채무자에게 고통을 초래할 것이며, 이는 부동산 시장을 포함해 미국 경제의 추가적인 약점을 드러낼 수 있다”고 했다.
다만 다이먼 회장은 이번 은행 위기가 2008년 금융위기와 같은 상황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2008년 금융위기가 대형 투자은행, 모기지(주택담보증권) 대출기관, 글로벌 시장과 연계된 보험사 등 수많은 금융기관을 강타한 반면 최근의 위기는 관련된 금융 주체가 훨씬 적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현재 월가의 대형 은행 CEO 가운데 유일하게 2008년 금융위기를 겪고도 살아남은 인물이다.
다이먼 회장은 “2008년 당시에는 1조 달러의 모기지가 곧 부도가 날 것이라는 인식이 커진데다 금융 시스템의 거의 모든 곳에서 막대한 레버리지가 있었다”며 “현재는 그보다 적은 수의 금융기관들이 관련됐으며, 해결해야 할 문제도 더 적다”고 설명했다.
연준 관리 부실 지적…“금리 급등 따른 스트레스 테스트 안 해”
다이먼 회장은 이날 서한에서 연방준비제도(Fed·연준)를 직격하기도 했다. 연준이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리스크 점검에 미흡했다는 것이다.
지난 1년간 연준이 금리를 급격히 올리면서 SVB가 가지고 있던 미국 국채 중심의 유가증권의 가치가 급락했고, 18억달러(약 2조36000억원) 평가 손실이 외부에 알려졌다. 이후 발생한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로 하루새 420억달러(약 55조원)이 빠져나가며 SVB는 36시간 만에 초고속 파산했다. 다이먼 회장은 SVB 파산 이후 위기에 몰린 퍼스트리퍼블릭은행에 대한 유동성 지원을 주도했다.
다이먼 회장은 “아이러니하게도 규제 당국은 은행들에 안전한 정부 채권을 소유하는 것을 장려했다”며 “설상가상으로 연준은 금리가 급등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은행들을 상대로 스트레스 테스트(재무 건전성 평가)를 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SVB는 초우량자산으로 여겨지던 미 국채에 투자했지만 연준의 금리 인상이 부메랑으로 날아왔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그러면서 “현재 미국 은행 시스템의 붕괴와 관련된 대부분의 위험은 눈에 잘 띄지 않게 숨어 있었다”며 “현재 시행 중인 규정과 감독 체계가 SVB 및 시그니처은행의 실패와 시스템 전반의 문제 발생을 막지 못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번 서한을 두고 “다이먼 회장이 연준에 잽을 날렸다”고 평가했다.
이날 시장은 고용시장 둔화에 주목했다. 미 노동부는 구인·이직 보고서(JOLTs)를 통해 2월 구인건수가 993만건으로 1년 9개월만에 1000만건 아래로 떨어졌다고 발표했다. 이는 전월보다 63만건 이상 감소하고 시장 예상치인 1040만건보다 훨씬 낮은 수치였다. 구인건수가 1000만건 미만으로 감소한 것은 2021년 5월 이후 처음이다.
고용시장이 지난달 은행 위기 전부터 둔화됐다는 신호가 나타난 것이다. 은행 위기로 금융시장 안정이 필요한 상황에서 경기침체 우려가 짙어지면서 연준이 긴축 사이클을 끝낼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한편 다이먼 회장은 최근 중소 은행이 무너지며 JP모건 같은 대형 은행이 이번 사태의 수혜를 보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선 일축했다. 그는 “은행에 대한 신뢰가 손상되면 모든 은행에게 피해를 준다”며 “소규모 은행의 예금 유입으로 대형은행이 이익을 본 것은 사실이지만, 이런 붕괴가 어떤 식으로든 그들(대형은행)에게 이롭다는 생각은 터무니없다”고 꼬집었다.
김겨레 (re9709@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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