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인으로 재산 빼돌린 수십억 채무자···정보요구 법적 근거 마련

조윤진 기자 2023. 4. 5.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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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보·건보법 개정 추진
'부실채무자' 5개銀 거래내역 보니
거래소 연결 계좌 수십개 드러나
차명계좌 등 고려땐 규모 더 클듯
국내 거래소 계정 살필 권한 부여
암호화폐 추적···재산 회수율 제고
연합뉴스
[서울경제]

채무액이 수십억 원대에 달하는 고액 ‘부실 채무자’ 중 일부는 암호화폐거래소를 통해 재산을 은닉한 채 채무를 이행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그동안은 이 같은 부실 채무자가 암호화폐거래소에 숨긴 재산에 대해 예금보험공사가 정보 제공을 요구할 법적 근거가 없어 재산 회수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이에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한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예금자보호법을 개정해 부실 채무자 및 책임자가 거래소에 숨긴 재산과 암호화폐를 추적하고 재산 회수율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5일 금융권에 따르면 예보는 최근 채무 원금이 수십억 원인 고액 부실 채무자 1000여 명의 암호화폐 원화 거래소 연계 계좌 관련 내역을 케이·카카오뱅크, 신한·NH농협·전북은행 등 5개 은행에 요청했다. 5개 은행은 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고팍스 등 5대 암호화폐 원화 거래소와 실명 계좌 발급 계약을 맺은 은행이다. 조사 결과 거래소와 연결된 것으로 추정되는 계좌는 수십여 개인 것으로 나타났다.

예보가 이들 은행에 부실 채무자 자료를 요청한 것은 거래소로 흘러간 은닉 재산을 추정 및 추적해보기 위해서다. 부실 채무자는 2011년 저축은행 사태 등 부실이 발생한 31개 금융회사에서 돈을 빌렸다가 갚지 않은 채무자다. 예보는 예금자보호법 제21조의3에 따라 보장된 자료제공요구권을 활용해 부동산·금융자산·주식 등 금융회사 및 공공기관에 보관된 부실 채무자 재산을 조사해왔다.

하지만 암호화폐가 새로운 자산으로 떠오르면서 거래소 등에 자신의 재산을 은닉하는 부실 채무자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예보 관계자는 “이번 조사에서 발견된 계좌는 수십여 개에 그치지만 고의로 재산을 은닉하고자 하는 채무자들의 경우 가족 등의 명의를 빌린 차명 계좌로 돈을 빼돌리는 경우가 많고 거래소가 아닌 개인 지갑, 해외 거래소 등을 통할 수도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그 규모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예보는 국내 암호화폐거래소에 등록된 계정도 살펴봐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법적 권한은 없는 상황이다. 예보 관계자는 “거래소에 대해 입출금 내역이 있는 계좌는 압류를 해달라고 법원에 신청을 하지만 해당 계좌에 실제로 돈이 있는지 없는지, 있다면 얼마나 있는지 등 계좌 특정이 불가능해 압류 신청을 기각당하기도 한다”며 “그러다 보니 효율성이 떨어지고 행정력이 불필요하게 낭비되고 있다”고 짚었다.

예를 들어 A거래소와 연결된 은행의 B계좌가 있다고 가정하면 현재 예보가 추적할 수 있는 것은 B계좌가 A거래소로 돈을 입금한 경우, A거래소에서 B계좌로 돈이 출금된 경우 등으로 제한된다. A거래소로 100만 원을 입금한 뒤 500만 원을 출금한 내역만 남아 있을 경우 암호화폐 거래를 통해 재산을 늘렸다는 추정은 가능하지만 실제로 돈을 벌었는지, 출금액을 제외하고 거래소 계정에 돈이나 암호화폐가 더 남아 있는지 등은 확인할 수 없다.

이에 예보는 지난달 말 ‘2022년도 상호저축은행 구조조정 특별계정 관리백서’를 발간하고 “부실 금융회사 발생에 대비해 효율적 대응 태세를 갖추기 위해 자료 제공 요구 대상 기관에 가상자산사업자 추가 등 예보법 개정 관련 협의를 진행 중”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유재훈 예보 사장도 지난달 초 취임 100일을 맞이해 가진 기자 간담회에서 “부실 관련자의 가상자산도 추적 및 회수할 수 있도록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의지를 밝힌 바 있다.

김 의원은 “예보와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가상자산사업자에 대해서도 자료를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되면 부실 채무자 등이 코인 등에 숨긴 재산을 보다 효과적으로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며 “이로써 채권 회수율 등을 높이고 공정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의원은 예보뿐 아니라 건보에 대해서도 자료 제공 요구 권한을 확대하는 개정안을 발의할 예정이다.

한편 예보가 2011년 저축은행 사태 이후부터 지난해 말까지 회수한 부실 관련자 국내 은닉 재산은 총 4268억 원으로 집계됐다. 이 중 2022년 1년간 회수한 금액은 총 212억 원으로 회수 규모는 최근 8년 내 최저치를 기록했다. 예보 관계자는 “국민 신고를 통해 부실 관련자의 은닉 재산 정보를 확보할 수 있도록 ‘금융부실관련자 은닉재산신고센터’도 설치해 운영 중”이라며 “센터를 통한 신고도 회수 성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조윤진 기자 j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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