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집에 온 것 같아요”…6·25 참전용사 만난 미군 손녀
손효주 기자 2023. 4. 5. 18:10
“우리 외할아버지랑 똑같으세요.”
밝은 갈색 머리, 파란 눈동자의 20대 대학생이 눈물을 왈칵 쏟았다. 이날 처음 만난 90대 한국인 할아버지와 대화를 나눌 때였다. 대학생은 미국인 이바 개벌러 씨(23·여), 할아버지는 6·25전쟁 참전 용사인 이근엽 전 연세대 교수(93)다.
이 전 교수는 “학생 얼굴을 보니 학생의 외할아버지 얼굴이 상상된다”며 “학생과 나는 친손녀와 할아버지 같다”며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개벌러 씨는 “돌아가신 외할아버지와 다시 만나 이야기하는 것 같아서 정말 좋다. 할아버지 집에 온 것 같다”며 여러 번 눈물을 훔쳤다.
이 전 교수는 1950년 말 고향 함경남도 함흥에서 자진 입대해 6·25전쟁 당시 소총수로 전장에 투입됐다. 휴전 직전이던 1953년 7월 14일 최전방이었던 강원 화천 백암산 일대에서 다리와 머리에 포탄 파편을 맞는 등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넘겼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출신인 개벌러 씨는 2018년 고려대에 입학해 현재 언어학과 4학년으로 재학 중이다. 개벌러 씨는 6·25전쟁 때 참전한 미군 프랭크 개벌러 씨(1930~2020)의 외손녀다.
지난달 31일 두 사람이 만났다. 한미동맹의 과거와 현재를 상징하는 두 사람이 서울 동작구의 이 전 교수 자택에서 자리를 함께한 것. 이 전 교수는 개벌러 씨가 온다는 소식에 약속 시간 30분 전부터 아파트 1층 현관까지 나와 기다렸다. 정장을 깔끔하게 차려입고 가슴엔 화랑무공훈장까지 달았다. 이 전 교수는 개벌러 씨를 처음 만나 유창한 영어로 인사를 건넸고, 개벌러 씨는 한국어로 화답했다.
개벌러 씨는 “외할아버지는 미 해군 무전병으로 인천상륙작전(1950년 9월 15일) 등에서 활약했다”며 조심스럽게 외할아버지와의 추억을 꺼냈다. 그는 “당시 외할아버지가 어떤 섬에 있을 때 북한군이 눈 흰자위가 다 보일 정도로 가까이 다가왔는데 무전병이라 무기가 없어 공구를 들고 싸울 준비를 하던 중에 다른 동료가 구해줬다는 이야기를 생전에 자주 하셨다”고 했다. 이 이야기를 듣던 이 전 교수는 “내가 1950년 12월에 입대했으니 외할아버지는 나와 동갑이지만 군대는 선배”라며 웃었다.
밝은 갈색 머리, 파란 눈동자의 20대 대학생이 눈물을 왈칵 쏟았다. 이날 처음 만난 90대 한국인 할아버지와 대화를 나눌 때였다. 대학생은 미국인 이바 개벌러 씨(23·여), 할아버지는 6·25전쟁 참전 용사인 이근엽 전 연세대 교수(93)다.
이 전 교수는 “학생 얼굴을 보니 학생의 외할아버지 얼굴이 상상된다”며 “학생과 나는 친손녀와 할아버지 같다”며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개벌러 씨는 “돌아가신 외할아버지와 다시 만나 이야기하는 것 같아서 정말 좋다. 할아버지 집에 온 것 같다”며 여러 번 눈물을 훔쳤다.
이 전 교수는 1950년 말 고향 함경남도 함흥에서 자진 입대해 6·25전쟁 당시 소총수로 전장에 투입됐다. 휴전 직전이던 1953년 7월 14일 최전방이었던 강원 화천 백암산 일대에서 다리와 머리에 포탄 파편을 맞는 등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넘겼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출신인 개벌러 씨는 2018년 고려대에 입학해 현재 언어학과 4학년으로 재학 중이다. 개벌러 씨는 6·25전쟁 때 참전한 미군 프랭크 개벌러 씨(1930~2020)의 외손녀다.
지난달 31일 두 사람이 만났다. 한미동맹의 과거와 현재를 상징하는 두 사람이 서울 동작구의 이 전 교수 자택에서 자리를 함께한 것. 이 전 교수는 개벌러 씨가 온다는 소식에 약속 시간 30분 전부터 아파트 1층 현관까지 나와 기다렸다. 정장을 깔끔하게 차려입고 가슴엔 화랑무공훈장까지 달았다. 이 전 교수는 개벌러 씨를 처음 만나 유창한 영어로 인사를 건넸고, 개벌러 씨는 한국어로 화답했다.
개벌러 씨는 “외할아버지는 미 해군 무전병으로 인천상륙작전(1950년 9월 15일) 등에서 활약했다”며 조심스럽게 외할아버지와의 추억을 꺼냈다. 그는 “당시 외할아버지가 어떤 섬에 있을 때 북한군이 눈 흰자위가 다 보일 정도로 가까이 다가왔는데 무전병이라 무기가 없어 공구를 들고 싸울 준비를 하던 중에 다른 동료가 구해줬다는 이야기를 생전에 자주 하셨다”고 했다. 이 이야기를 듣던 이 전 교수는 “내가 1950년 12월에 입대했으니 외할아버지는 나와 동갑이지만 군대는 선배”라며 웃었다.
개벌러 씨는 손녀가 할아버지에게 물어보듯 “진지 교대를 할 때 미군을 만나 무슨 얘기를 했느냐” “영어로 대화하니 미군들이 고마워했느냐” 등 여러 질문을 던졌다. 이 전 교수가 1952년 봄 중부전선 오성산(강원 김화군·현재 북한) 최전방에 투입될 당시 미군과 진지 교대를 하며 통역 역할을 했던 이야기를 전하자 개버럴 씨 질문이 꼬리를 문 것. 그러면서 “외할아버지에게서만 듣던 6·25전쟁 이야기를 다른 시점에서 들으니 신기하다”며 “이 전 교수님께 듣고 싶은 이야기가 정말 많다”고 했다.
‘사탕’도 대화의 매개체가 됐다. 이 전 교수는 “미군과 진지 교대를 하기 전 미군 벙커에 들어가 보면 사탕이 많았다”며 “이걸 동료들에게 가져다주면 그렇게 좋아했다”고 회상했다. 개벌러 씨는 “외할아버지가 생전 한국 아이들에게 사탕을 주면 정말 좋아했다는 얘기를 자주 하셨다”고 했다.
개벌러 씨는 외할아버지에게서 6·25전쟁에 대한 얘기를 전해듣는 동시에 가수 ‘빅뱅’ 노래 등 K팝과 K콘텐츠에 열광하며 10대를 보냈다. “한국문화와 한국어가 그렇게 좋았다. 그래서 취미도 한국어 배우기 등 대부분 한국과 관련된 것들이었다”며 활짝 웃었다. 이를 계기로 아예 한국 대학에 진학했다. 개벌러 씨는 국가보훈처와 한국전쟁기념재단이 지급하는 장학금도 받고 있다. 그는 “내가 한국에 간다고 했을 때 외할아버지가 가장 행복해하셨다”고 전했다. 또 “외할아버지는 당시 한국을 두고 ‘완전히 아무것도 없는(completely flat) 나라였다’는 말을 하시곤 했다. 자신이 그런 한국의 미래를 위해 싸웠는데 놀랍도록 크게 발전한 한국에서 손녀가 공부하게 된 걸 기뻐하셨다”고도 했다.
이 전 교수는 “한국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가져줘서 고맙다. 앞으로 맛있는 걸 자주 사주는 것으로 외할아버지에게 진 빚을 갚겠다”며 손을 꼭 잡으면서 웃었다. 이날 이 전 교수는 개벌러 씨를 위해 6·25전쟁 당시 한 미군이 건네준 미국 노래집에 들어있던 미국 가곡 ‘스와니강’을 영어로 불러주기도 했다. 이 전 교수는 “전장에서 총탄에 맞지 않으려고 그 노래집을 가슴에 품고 다니곤 했다”며 “이 노래를 부르며 고향에 계신 엄마 생각을 많이 했다”고 했다.
개벌러 씨는 말했다. “이 전 교수님처럼 6·25전쟁을 생생하게 증언해줄 수 있는 분들이 미국에 가서 미국 학생들에게 얘기해줄 기회가 많아졌으면 합니다. 미국 역사 수업에서 6·25전쟁에 대해 더 많이 가르쳤으면 하고요. 그래야 한미동맹이 더 견고해지지 않을까요?”
‘사탕’도 대화의 매개체가 됐다. 이 전 교수는 “미군과 진지 교대를 하기 전 미군 벙커에 들어가 보면 사탕이 많았다”며 “이걸 동료들에게 가져다주면 그렇게 좋아했다”고 회상했다. 개벌러 씨는 “외할아버지가 생전 한국 아이들에게 사탕을 주면 정말 좋아했다는 얘기를 자주 하셨다”고 했다.
개벌러 씨는 외할아버지에게서 6·25전쟁에 대한 얘기를 전해듣는 동시에 가수 ‘빅뱅’ 노래 등 K팝과 K콘텐츠에 열광하며 10대를 보냈다. “한국문화와 한국어가 그렇게 좋았다. 그래서 취미도 한국어 배우기 등 대부분 한국과 관련된 것들이었다”며 활짝 웃었다. 이를 계기로 아예 한국 대학에 진학했다. 개벌러 씨는 국가보훈처와 한국전쟁기념재단이 지급하는 장학금도 받고 있다. 그는 “내가 한국에 간다고 했을 때 외할아버지가 가장 행복해하셨다”고 전했다. 또 “외할아버지는 당시 한국을 두고 ‘완전히 아무것도 없는(completely flat) 나라였다’는 말을 하시곤 했다. 자신이 그런 한국의 미래를 위해 싸웠는데 놀랍도록 크게 발전한 한국에서 손녀가 공부하게 된 걸 기뻐하셨다”고도 했다.
이 전 교수는 “한국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가져줘서 고맙다. 앞으로 맛있는 걸 자주 사주는 것으로 외할아버지에게 진 빚을 갚겠다”며 손을 꼭 잡으면서 웃었다. 이날 이 전 교수는 개벌러 씨를 위해 6·25전쟁 당시 한 미군이 건네준 미국 노래집에 들어있던 미국 가곡 ‘스와니강’을 영어로 불러주기도 했다. 이 전 교수는 “전장에서 총탄에 맞지 않으려고 그 노래집을 가슴에 품고 다니곤 했다”며 “이 노래를 부르며 고향에 계신 엄마 생각을 많이 했다”고 했다.
개벌러 씨는 말했다. “이 전 교수님처럼 6·25전쟁을 생생하게 증언해줄 수 있는 분들이 미국에 가서 미국 학생들에게 얘기해줄 기회가 많아졌으면 합니다. 미국 역사 수업에서 6·25전쟁에 대해 더 많이 가르쳤으면 하고요. 그래야 한미동맹이 더 견고해지지 않을까요?”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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