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의 점괘들, 미 경기침체 확률 75% [마켓톡톡]
3월 ISM지수 14년만에 최저
JP모건 CEO “침체 확률 높아져”
4일(현지시간) 미국 노동시장이 한풀 꺾이고, ISM 제조업지수가 경기침체 신호를 보내면서, 미국 경기침체가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과연 미국 경제는 어떤 상황일까. 경기후퇴를 알리는 지표들을 점검해봤다.
4일 스위스 취리히에서 열린 크레디트스위스(CS) 주주총회에 참가한 한 주주는 "당신들이 우리 생계를 망치고 있는데도 밤에 잠을 잘 수 있느냐"며 분통을 터트렸다. 아버지를 대신해 주총에 참석한 한 대학생은 "경영진이 은행에 생존 능력이 있다고 주장해서 투자를 계속해 왔는데, 좌절과 분노를 겪었다"고 말했다.
악셀 레만 CS 회장은 "은행이 살아날 수 있다고 믿었지만, 되살릴 시간이 부족했다"며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파산 또는 인수·합병(M&A), 두가지뿐이었다"고 사과했다.
지난 3월 미국발 은행 위기가 발생하고, 수그러드는 과정을 지난 몇주 동안 국내외 언론이 자세하게 보도했지만 이런 위기가 실물경제, 나아가 사람들의 삶과 어떻게 연관되는지를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다만, CS 주총은 한달도 안 되는 기간 미국과 유럽에서 벌어졌던, 게다가 아직도 끝나지 않은 글로벌 은행 위기가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 경기침체와 불황=경제학에서 경기는 장기적으로 상승과 하락을 반복하면서 순환한다. 경기가 저점을 찍고 상승하고, 다시 고점을 찍고 내려오면, 한번 순환하는 것이다. 이론적으론 활황기든 후퇴기든 지속되는 기간과 진폭(저점·고점의 높이)만 다를 뿐이다. 진폭과 기간의 차이가 경기침체와 불황을 가르는 유일한 잣대다. 이론상으로는 그렇지만 진폭과 기간의 크기에 따라서 실물경제는 희비가 갈린다.
로널드 레이건은 1980년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 지미 카터 대통령의 경제정책 실패를 비판하면서 승리를 거뒀다. 레이건 전 대통령은 경기침체(recession)와 불황(depression)의 차이를 이렇게 설명했다. "당신의 이웃이 실직하면 경기후퇴고, 당신이 실직하면 불황, 지미 카터가 실직하면 경기회복이다."
존 스타인벡의 소설 「분노의 포도(the Grapes of Wrath)」에 나오는 주인공은 대공황 때문에 미 중남부의 곡창지대 오클라호마에서 서부 캘리포니아로 이주해야 했던 소작농 일가다. '분노의 포도'란 제목은 소작농 톰 조드가 불황으로 희망을 잃은 이들을 묘사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매달린 분노가 충만했다"는 부분에서 따왔다. 경기의 급격한 하락은 실망을 넘어 분노를 불러오는 일이다.
■ 美 침체 확률=미국 경기가 침체로 빠져드는 걸 보여주는 신호가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미국 공급자관리협회(ISM)가 미국내 20개 업종의 400개 이상 회사를 대상으로 매달 설문조사를 실시해 발표하는 ISM 구매관리자지수(Purchasing Managers' Index)는 선행성이 강해 경기순환을 가장 잘 보여주는 지표로 꼽힌다.
설문에 참여한 400여개 회사들은 신규주문, 생산, 고용, 원자재 공급, 재고 5개 분야의 상황을 묻는 질문에 악화(worse), 동일(same), 개선(better) 세가지 중 하나를 골라서 답하고, ISM이 이를 수치화해 발표한다. 50 이상이면 경기확장, 50 이하면 경기수축을 뜻한다.
4일 발표된 ISM 제조업지수는 46.3이다. 이는 미국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사실상 공황 상태에 빠졌던 2020년 4월 41.5, 5월 43.1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팬데믹 기간 중에도 ISM 제조업지수는 50 후반에서 60 초반을 유지했었다.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2월까지는 47~49를 기록했다.
하이투자증권은 5일 보고서를 내고 "ISM 제조업지수가 46.3까지 하락한 건 코로나19 팬데믹 당시를 제외하면 글로벌 금융위기로 미국 경제가 침체 국면에 있었던 2009년 6월 이후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역사적으로 보면 ISM 제조업지수가 처음 집계된 1948년 이후 이 지수가 46.3 이하를 기록한 것은 16차례이며, 이중 경기침체가 발생한 것은 12차례다. 확률로 따지면 75%다.
■ 한풀 꺾인 美 노동시장=미국 노동부는 4일 기업들의 2월 구인건수가 993만건으로 전월 1056만건보다 63만건 줄었다고 발표했다. 미국의 월간 구인건수가 1000만건 밑으로 내려온 것은 2021년 5월 이후 처음이다. 3월 구인건수 시장 예상치인 1040만건보다도 적었다.
다만, 코로나19 팬데믹 이전과 비교해 보면 미국 노동시장은 여전히 강세를 보이고 있다. 2020년 2월 구인건수는 700만건이었다. 구인건수가 줄기 시작했지만, 실업률에 영향을 미치려면 아직 여러 단계를 더 거쳐야 한다.
물동량 자체도 감소 추세다. 코로나19로 물류대란을 겪었던 미국 서부의 롱비치항은 지난해 10월부터 모든 정체가 풀리긴 했지만, 5개월 연속으로 물동량이 줄고 있다. 롱비치 항구 물동량이 줄어드는 것은 미국 내수 시장의 수요가 감소한다는 의미로 경기침체를 나타내는 지표 중의 하나다.
3월 롱비치항 물동량은 1년 전보다 31.7% 급감했다. 특히 내수에 직결된 수입 물동량은 34.7%나 줄었다. 수출량은 5.9% 감소했다. 롱비치항은 지난 3월 14일 "인플레이션에 의한 제품 가격 상승, 아시아 지역 공장들의 2월 휴무 증가 등으로 물동량이 줄었다"고 발표했다.
■ 소프트랜딩과 변수=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경기 과열로 지적해온 노동시장이 축소로 돌아선 건 글로벌 은행 위기 이후 '금리인상을 중단하라'는 압박을 받고 있던 연준에는 희소식이다. 이를 소트프랜딩(연착륙) 신호탄으로 해석하는 이들도 있다. 노동시장 분석회사인 라이트캐스트의 론 헤트릭 수석이코노미스트는 "회사들이 일자리를 줄이고 있는 것은 경제가 연착륙한다는 신호"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연착륙은 지난 3월 발생한 미국 은행의 연쇄 부도와 같은 돌발상황이 없어야 가능하다. 4일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CEO는 주주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경기침체 확률이 올라가고 있다"며 "글로벌 은행 위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다이몬 CEO는 서한에서 "일단 위기가 지나가더라도 향후 몇년 동안은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다이몬 CEO는 규제 강화를 넘어선 금융계의 리스크 관리를 주문했다.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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