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게 최저임금 탓' 만악근원설 또다시 반복하는 경제지

김예리 기자 2023. 4. 5.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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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 경제지의 적은 경제지? 스텝 꼬인 최저임금 보도
초단시간 일자리도, 구직자 척박한 삶도 최저임금 탓
독일 1년 새 25% 인상, 영국은 1만7000원 "역부족"

[미디어오늘 김예리 기자]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내년 최저임금 심의 요청하면서 최저임금위원회가 가동하기 시작했다. 보수 경제지도 관련 보도에 시동을 걸고 있다. 해마다 최저임금 때리기 보도가 반복되지만, 최저임금을 각종 경제 위기 요인으로 내세우다 자사의 과거 보도나 해외 최저임금을 다룬 보도와 모순된 주장을 내놓는 경우도 속속 눈에 띈다.

“초단시간 노동자 급증, 최저임금 탓”…작년 말엔?

한국경제신문은 지난달 26일 1면 <소주성 후폭풍…'알바 난민' 사상 최대>로 최저임금 보도 신호탄을 알렸다. 최저임금 탓에 초단시간 노동자가 늘었다는 주장이다. “최저임금 급등에 부담을 느낀 소상공인이 고육지책으로 '초단기 알바'를 고용하면서 지난해 초단기 근로자는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고 했다. 한국경제는 지난해 주당 근로시간이 1~14시간인 취업자가 157만7000명으로 전년 대비 6만5000명 늘었다며 집계를 시작한 이후 가장 높았다고 덧붙였다.

매일경제도 노동계가 내년 최저임금 요구안으로 1만2000원을 발표한 뒤 5일 “최저임금이 급격하게 인상되면 '쪼개기 알바' 등 초단기 일자리가 범람하고 임금 인상에 따른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수 있다”며 같은 수치를 댔다.

▲3월27일 한국경제 1면

초단시간 노동자 급증이 최저임금 탓일까. 4개월 전 이들 경제지를 포함한 언론은 다른 요인을 짚었다. 정부가 초단시간 일자리 급증을 주도했다는 지적이다. 공공일자리 사업 대부분이 주 15시간 미만의 일자리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취업자를 산업별로 보면 사업·개인·공공서비스 및 기타 분야 주 15시간 미만 취업자가 93만5000명으로 가장 많았다. 지자체의 노인일자리 등 공공일자리에 여기에 포함됐다.

한국경제도 지난해 11월 마찬가지 지적을 했다. <'초단시간 근로자' 180만명 역대 최대…공공일자리서 '폭증'>에서 초단시간 근로자가 “거의 180만 명에 육박”한다며 “급증세는 사회간접자본 및 기타서비스업 분야와 공공서비스업 등이 주도한 것으로 나타나 국가가 초래한 현상이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고 했다. “초단시간 근로자를 양질의 일자리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한국경제 보도

사용자들이 근로기준법상 사각지대를 악용해 최저임금 제도에 '노동시간 쪼개기'로 대응하는 현실은 문제다. 그러나 이를 노동권 보호로 해결할 대상이 아니라 최저임금 인상 반대 이유로 제시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다. 주 15시간 미만 노동자는 근로기준법상 퇴직금과 주휴일, 연차휴가, 초과근무 가산임금, 육아·출산 및 직장내 괴롭힘, 일부 산업안전보건법도 적용 받지 않는다.

구직자 삶이 척박해져? 실업급여 기준이 최저임금

최저임금 탓에 구직자들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삶이 척박해졌다는 주장도 등장했다. 한국경제는 “최저임금이 1만원에 육박하면서 구직자의 삶은 척박해졌다”며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한 근로자도 2021년 321만 명으로 전년 대비 25만 명 늘었다”고 했다. “수능을 마치고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바짝 벌고 싶었는데 여기저기 면접만 보다 시간을 허비했다”는 익명의 구직자 코멘트를 인용했다.

사업주들이 채용을 회피하려 해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논리다. 학계는 최저임금이 각종 지원·보장 제도의 기준으로 쓰이는 현실을 모르는 소리라고 지적한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은 “구직자엔 직장 다니던 이들도 포함되는데, 실업급여의 하한액이 최저임금에 곱한 숫자로 정해진다. 최저임금이 오르면 퇴사한 구직자들의 생계 유지에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라고 했다. 고용노동부 고용행정통계에 따르면 올해 2월 실업급여 지급자 수는 63만 283명이다.

경총 받아쓰기 시작, 국제면엔 “1만7000원으로 부족”

경영계가 최저임금 심의 시작을 앞두고 낸 보도자료 '받아쓰기' 현상도 나타났다. 경총은 지난 2일 보도자료를 내 지난해 최저임금을 받지 못한 근로자 비율이 12.7%라고 했다. 최저임금이 너무 높아 인상하면 곤란하다는 얘기다. 동아일보, 매일경제, 서울경제, 세계일보, 중앙일보, 한국경제 등 일간지가 이를 보도했다. 보도자료를 보면 경총은 “2019년 이후 최저임금 미만 근로자 수와 미만율이 감소추세를 보이고는 있다”면서도 “최저임금 수준이 매우 높아져 노동시장 수용성이 저하된 것”이라고 했다.

▲네이버 포털 경총 최저임금 관련 보도자료 검색 결과
▲3일 세계일보

이정희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임금 체불을 이유로 최저임금 인상에 반대하는 것은 윤석열 대통령이 주장해온 법치를 거스르는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시급제 일자리인 공공 노인일자리 사업 임금을 법정 최저임금(9160원)에 못 미치는 9000원으로 책정한 탓이 크다는 지적도 있다.

한편 세계일보는 경총 보도자료를 기사화한 3일 국제면에선 다른 주장을 내놨다. <영국, 세금·공과금 이달부터 대거 인상> 에서 “영국노총(TUC)은 물가상승률에 맞춰 최저임금이 이달부터 10.42파운드(약 1만7000원) 인상됐지만, 가계 부담을 줄이기엔 역부족이라고 일간 가디언을 통해 전했다”고 했다.

▲3일 세계일보

해외도 줄줄이 최저임금 인상 흐름

다른 나라들의 최저임금 인상 흐름은 어떨까. 독일은 최근 1년 새 수차례에 걸쳐 최저임금을 25% 인상했다. 1년 전 시간당 9.6유로에서 12유로(1만 6900원)으로 인상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이끄는 신호등(사회민주당·자유민주당·녹색당) 연립정부의 핵심 공약을 따라서다.

영국의 경우 10.42파운드(1만 7000원)으로 인상했다. 그러나 영국노총(TUC)은 전기가스와 수도 요금, 지방세 인상을 감안하면 가계 부담을 줄이기 역부족이라며 강하게 불만을 밝히고 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4일 "일본에선 총리가 직접 나서 국가 최우선 정책 목표로 물가상승률을 뛰어넘는 임금인상을 독려하고 일본 기업들도 30년 만에 4%대 인상을 단행했다"고도 했다.

물가상승에 공공요금 인상, 임금불평등 악화

한국도 코로나19와 살인적인 물가 상승, 낮은 최저임금 인상률로 임금 불평등이 심화했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은 “임금을 받는 소득자의 상위 5%는 소득 액수가 절대적으로 증가했지만 그 밑은 같은 수준이거나 오히려 떨어졌다"며 “올해 GDP 증가율인 2.26%와 물가상승률 5.1%만 더해도 7.7%를 넘어서는 상황이고, 최근 불평등이 악화한 상황을 개선하려면 최저임금 인상해야 한다는 것이 인상 요구의 주된 논거”라고 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국세청 천분위 소득자료(2012~2021년)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근로소득 상위 5%의 경계값(구분선)은 9800만 원에서 1억 500만 원으로 액수가 7.1% 증가했다. 근로소득 점유율도 올랐다. 반면 하위 반면 하위 50%의 근로소득 점유율은 2019년 20.2%까지 증가했다가 2년 연속 감소해 2021년 19.9%였다. 근로소득 하위 20%의 소득 대비 상위 20%의 비율(근로소득 5분위 배율)도 2019년까지 감소세였다가, 2020년부터 2년에 걸쳐 15.1배로 도로 늘었다.

한국의 경우 단순 물가상승률 전망치와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더한 뒤 취업자 증가율 전망치를 빼는 방식으로 기계적으로 인상률을 적용해왔다. 그러나 노동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고서 등을 인용해 최근 2년간 물가상승률(7.7%)이 최저임금 인상률(6.6%)를 앞질러 노동자 실질임금이 저하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양대 노조는 4일 내년 최저임금으로 월 250만 원에 해당하는 시급 1만 2000원을 제시하겠다고 발표했다. 올해 최저임금(9620원)에서 24.7% 인상한 수준이다. 양대 노조는 “지난해 소비자물가상승률은 5.1% 증가했다. 대표 공공요금인 난방비는 40% 올랐고 전기료는 20%, 수도세는 71%, 대중교통요금은 30% 이상 뛰었고 인상이 예고됐다”며 “생존을 위한 요구”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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