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검찰 기소는 엄청난 선거 개입"…美사법전쟁 점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4일(현지시간) 뉴욕 맨해튼 형사법원에 출석해 '성추문 입막음'을 포함한 34개 범죄 혐의를 전면 부정하고 무죄를 주장한 뒤 플로리다 자택으로 돌아가 자신의 기소에 대해 "미국에서 전에 보지 못했던 엄청난 선거 개입"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이러한 일이 미국에서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지도 못했다"며 "내가 저지른 유일한 범죄는 미국을 파괴하고자 하는 이들로부터 용감하게 지킨 것"이라고 항변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날 뉴욕 법정에서 열린 '기소인부절차'에 출석해 50여 분간 머물면서 "무죄" "네"라고만 답하고 침묵을 지켰다. 기소인부절차는 피고인에게 기소 내용을 고지하고 공소사실에 대한 인정·부인 의사를 확인하는 과정이다.
검찰이 제기한 공소에 따르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16년 대선 기간 성추문을 감추려고 회사 문서를 조작해 세 차례 합의금을 전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혼외 성관계한 포르노 배우(13만달러), 불륜 관계였던 플레이보이 모델(15만달러), 트럼프 혼외 자식설을 주장하던 트럼프타워 도어맨(3만달러)에게 총 31만달러(약 4억원)를 지급하는 등 뉴욕 형법 제175조에 따른 기업 문서 조작과 관련해 34건의 범죄 혐의를 받고 있다. 미국 역대 대통령 중 형사 기소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날 저녁 플로리다주 팜비치 마러라고에서 30분간 연설하며 검찰, 법원, 조 바이든 대통령을 싸잡아 비난했다. 그는 자신을 기소한 앨빈 브래그 맨해튼 지방검사장을 대배심의 비밀 유지 사항을 유출한 범죄자라고 지목했다. 또 사건을 맡은 후안 머천 맨해튼 형사법원 판사를 '트럼프 혐오 판사'라고 지칭했다. 이어 바이든 대통령을 향해서는 차남인 헌터 바이든 의혹, 미국 주요 도시 범죄 증가, 3차 핵전쟁 위협 초래, 인플레이션 등의 문제를 지적했다.
특히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 가짜 사건은 2024년 (대통령)선거를 방해하려는 것"이라며 "즉각 중단돼야 한다"고 요구했다. 아울러 그는 "러시아는 중국과, 사우디아라비아는 이란과 손잡았다"며 "중국, 러시아, 이란, 북한이 위협적이고 파괴적인 연합으로 뭉쳤는데 내가 대통령이었다면 절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대선 사기를 거듭 주장하면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라는 선거 슬로건으로 연설을 마쳤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뉴욕 법원 출석 과정은 미국 전역에 TV로 생중계됐다. 그는 이날 오후 법원으로 가는 차량 탑승 전에 굳은 표정으로 지지자를 향해 주먹을 들어 보이기도 했다. 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법원으로 향하는데 너무 초현실적"이라며 "그들이 나를 체포할 것인데 이런 일이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기소인부절차를 밟기 전에 형식상 체포 절차에 따라 지문을 찍고 신분을 확인했다. 다만 머그샷(범인 식별용 얼굴 사진) 촬영은 취소됐다.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포르노 배우였던 스토미 대니얼스와의 2006년 혼외정사 사실을 숨기려고 개인변호사 마이클 코언을 통해 2016년 대선 직전 대니얼스에게 회삿돈 13만달러를 지급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나중에 코언에게 합의금을 변제하면서 회사 장부에 '법률 자문료'로 기재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트럼프 전 대통령의 친구가 경영하는 타블로이드지인 내셔널인콰이어러가 트럼프 전 대통령과 불륜 관계였던 플레이보이 모델 캐런 맥두걸에게 2016년 침묵을 대가로 15만달러를 전달했다. 이를 통해 내셔널인콰이어러는 맥두걸 스토리에 대한 독점 권리를 확보했지만 보도하지 않아서 사실상 맥두걸의 입을 막았다. 이 사건에도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다고 검찰은 판단했다.
이와 함께 트럼프 전 대통령은 '트럼프에게 혼외 자식이 있다'고 주장한 뉴욕 트럼프타워 도어맨에게 3만달러를 지급한 의혹도 새롭게 범죄 혐의로 적시됐다.
각종 성추문용 합의금이 2016년 대선후보였던 트럼프 전 대통령을 위해 사용됐기 때문에 검찰은 이를 불법 선거자금이라고 보고 그에게 기업 문서 조작과 선거법 위반 혐의를 함께 적용했다. 사업 기록 위조는 징역 1년 이하의 경범죄이지만 선거법상 다른 범죄를 은폐할 목적일 경우 건당 징역 4년 이하의 중범죄로 격상된다. 이론적으로 34개 혐의에 4년씩 형이 선고되면 최대 136년 징역형이 가능하다.
브래그 검사장은 "뉴욕주 법에 따라 다른 범죄를 숨기고 속이려는 의도로 기업 문건을 위조하는 것은 중범죄"라며 "불리한 정보와 불법행위를 유권자에게 숨기기 위해 허위 자료 34건을 만들었다"고 발표했다. 그는 "모두가 법 앞에 평등하다"고 강조했다. 법원은 다음 재판기일을 오는 12월 4일로 정하고 검찰과 변호인 의견을 듣기로 했다.
이번 재판이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선 행보를 가로막지는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기업 문서 조작과 선거법 위반을 결합한 검찰의 새 법리 해석 논란, 핵심 증인이지만 전과자인 변호사 코언의 증언 신뢰성 등을 복합적으로 고려하면 유죄판결이나 징역형을 받을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는 전망이 나온다.
[워싱턴 강계만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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