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한국의 체코 원전 수출에 제동 걸었다
미국 정부가 우리나라가 독자 개발한 한국형 원전(APR-1400) 수출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지난해 미국 원전 업체 웨스팅하우스가 한국형 원전 수출을 막아달라며 미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데 이어 미국 정부까지 체코 원전 수출에 딴죽을 걸고 나선 것이다. 탈(脫)탄소를 위해 세계 각국이 잇따라 원전 발주에 나서는 상황에서 미 정부가 최고의 기술력과 건설 능력은 물론 경제성까지 갖춘 한국 원전 산업 견제에 본격적으로 나섰다는 분석이다. 원전 수출은 산업뿐만 아니라 정치·외교·산업 전반이 얽힌 국가 간 계약 성격이 강한 특성상 이달 말 미국을 방문하는 윤석열 대통령의 역할이 요구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팔 안으로 굽은 미 에너지부
5일 한수원과 원전 업계에 따르면 지난 1월 19일 미국 에너지부(DOE)는 한수원이 지난해 말 제출한 체코 원전 사업 입찰 관련 신고 서류를 돌려보냈다. 체코 두코바니 원전은 1200MW(메가와트)급 원전 1기를 건설하는 사업으로 앞으로 3기 추가 발주도 유력하다. 한수원은 현재 미국 웨스팅하우스, 프랑스 전력공사와 3파전을 벌이고 있다. 한수원은 작년 11월 체코 두코바니 원전 입찰에 참여하고, 그와 관련한 서류를 미 에너지부에 제출했다.
미국 정부는 3대 핵심 원전 기술을 수출 통제 대상으로 지정하고 이를 외국에 이전하기 위해선 에너지부의 허가를 받거나 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한수원은 3대 핵심 기술을 국산화했지만, 웨스팅하우스의 원천 기술을 사용했다는 점을 감안해 미 에너지부에 신고서를 냈는데 에너지부가 이를 돌려보낸 것이다. 에너지부는 “관련 규정에 따라 미국인(US persons: 미국인 또는 미국법인)이 신고서를 제출해야 한다”며 반려 이유를 밝혔다. 한수원이 신고 주체가 아니니 미국 법인인 웨스팅하우스를 통해 신고하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우리나라가 UAE(아랍에미리트)에 원전을 수출할 당시에는 관련 기술을 국산화하기 이전이라 국내 업계는 웨스팅하우스에 기술 자문료를 내는 방식으로 신고·허가 문제를 해결했다.
앞서 웨스팅하우스는 작년 10월 한수원의 한국형 원전 수출을 제한해달라며 워싱턴DC 연방지법에 소송을 제기했다. 웨스팅하우스는 “한국형 원전에 우리 기술이 적용됐으니 원전을 수출하려면 미국 정부 허가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한수원으로서는 웨스팅하우스와 원만하게 협의되지 않으면 앞으로 있을 원전 수주전에서도 껄끄러운 상황이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한국 원전 길들이기?
웨스팅하우스 소송과 미국 정부의 서류 반려에 대해 국내 원전 업계에선 세계 최고 수준인 우리 원전 업계를 견제하려는 의도라고 해석한다. 1979년 스리마일 원전 사고 이후 30년 넘게 원전 건설 경험이 없어 원천 기술 이외 사실상 껍데기만 남은 웨스팅하우스로서는 지난 40여 년간 국내·외에서 원전 건설과 운영 노하우를 쌓아온 한국 원전이 눈엣가시라는 것이다. 체코에 앞서 폴란드 원전에서도 한수원은 웨스팅하우스와 수주 경쟁을 펼쳤다. 애초 미국과 폴란드 간 맺은 협정에 따라 국가 사업에선 웨스팅하우스가 선정됐지만, 한수원도 최대 민간 발전사인 ZE PAK(제팍)과 원전 2~4기를 짓기로 협력의향서(LOI)를 체결했다.
원전 업계 관계자는 “원전 수주를 해도 시공 능력이 떨어지는 웨스팅하우스가 한국 기업을 하청 업체로 두기 위해 견제에 나선 것일 수 있다”며 “미국과 웨스팅하우스가 세계 원전 산업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고려했을 때 원만한 문제 해결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한수원도 이날 “미 에너지부의 권고에 따라 웨스팅하우스와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동욱 중앙대 교수는 “이달 방미 때 윤석열 대통령이 원전 수출을 안건으로 올리고 상호 협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며 “원전 산업의 특성상 정부 최고위층에서 풀어야 할 문제가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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