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설계 30분 만에 '척척'…AI·드론·로봇이 건설판 바꾼다
건설사, 벤처캐피털 만들어 투자
콘테크 시장 규모 年 18%씩 성장
AI로 건축설계, 드론으로 현장 측량
3D 매핑 기술로 시공 오차 확인도
맞춤형 로봇이 사람 대신 위험 작업
"꽉 막힌 규제 풀어 기술혁신 유도해야"
# 로봇 스타트업인 위로보틱스는 대우건설과 협업해 건설용 웨어러블(착용형) 로봇을 개발했다. 건설 작업자의 근육 부담을 최대 30% 낮춰주는 제품이다. 로봇 전문가인 데니스 홍 미국 UCLA 교수는 이 로봇을 착용해본 뒤 “안 입은 것처럼 편하면서도 큰 힘을 낼 수 있으니 마치 내가 아이언맨이 된 느낌”이라고 평가했다.
# 롯데건설은 지난 2월 스마트 도면 관리 솔루션인 ‘팀뷰’를 도입했다. 스타트업인 팀워크가 개발한 것으로 클라우드 협업 기능이 적용돼 도면 변경 내용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롯데건설은 “현장 공사와 설계 업무 모두 효율성이 크게 높아질 것”으로 기대했다.
국내 건설사들이 인공지능(AI)과 드론, 가상현실(VR) 등 첨단 기술로 무장한 스타트업과 협업하면서 건설 현장에 혁신 바람이 불고 있다. 단순히 설계와 현장 관리를 효율화하는 정보기술(IT) 솔루션뿐만 아니라 인간의 육체노동을 대신 수행하는 로봇까지 현장에 투입하고 있다. 자금력을 갖춘 건설사들이 공정 효율화를 위한 첨단 콘테크(건설+기술)에 눈을 돌리면서 관련 스타트업들이 주목받고 있다.
○스타트업에 꽂힌 건설사들
GS건설의 기업형 벤처캐피털(CVC)인 엑스플로인베스트먼트는 지난해 말 신기술사업금융전문회사 인가를 취득하고 올해부터 본격적인 투자에 나섰다. 건설 드론 솔루션 회사인 엔젤스윙 등 콘테크 스타트업에 가장 먼저 자금을 투입했다.
호반건설의 액셀러레이터 자회사인 플랜에이치벤처스는 서울 우면동 호반건설 본사에 300평 규모의 스타트업 보육공간을 운영한다. 텐일레븐, 플럭시티 등 스타트업 30곳에 투자했고 55번의 오픈이노베이션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드론 스타트업 뷰메진과 개발한 AI 품질검사 솔루션은 지난해 충남 당진 건설 현장에서 아파트 외벽 점검에 활용됐다.
우미건설은 부동산 플랫폼 직방이 세운 투자회사 브리즈인베스트먼트의 벤처펀드에 100억원을 출자했다. SK에코플랜트는 스타트업 발굴과 기술 협력을 위한 플랫폼을 구축하겠다고 최근 발표했다. 삼성물산(스타트업과 건설로봇 공동 개발), 현대건설(오픈이노베이션 공모전), 포스코이앤씨(로봇협의체 운영) 등도 스타트업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건설=노가다’는 옛말
건설은 한때 ‘노가다’로 불리며 신기술 적용에 뒤처진 분야였지만 해외시장에서 기술 경쟁이 불붙으며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세계 건설시장은 연 4~6%씩 성장하고 있고 중동(올해 14.4% 성장 전망)과 중남미(7.4% 성장), 아시아(4.5% 성장) 등 국내 건설사들의 수주 지역도 다각화됐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드론과 로봇 등을 활용한 스마트 건설 역량은 해외 사업 수주를 위한 핵심 조건”이라고 했다.
세계 콘테크 시장 규모는 2019년 98억달러(약 12조8000억원)에서 연평균 18%씩 성장해 2027년엔 291억달러(약 38조원)까지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과거엔 건설사 내부에서 연구개발(R&D)을 전부 담당하는 사례가 많았지만 건설에 적용되는 기술이 다양해지면서 지금은 외부 기술기업과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국내 주택경기가 침체하면서 스타트업과의 협업을 통해 새 활로를 찾으려는 시도도 많다. 이지혜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앞으로 모듈러(탈현장 건설공법) 같은 신기술을 통해 제조업과 건설업의 경계가 허물어질 수 있다”며 “기술을 도입해 수익성을 높이고 새로운 시너지를 창출하는 게 중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스타트업이 바꾸는 건설 현장
스타트업 기술이 적극 활용되면서 건설 현장은 크게 달라지고 있다. 건축설계 솔루션 스타트업 텐일레븐은 서울 불광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2000가구 규모의 아파트 단지 설계안을 단 30분 만에 도출해 주목받았다. AI가 건축법규와 지형, 주변 건물의 높이 등을 기준으로 용적률과 일조권, 조망권을 고려한 설계를 자동 생성해 기존 설계안보다 가구 수를 100가구 늘렸다. 텐일레븐의 솔루션은 서울 망우1구역과 신반포7차 재건축사업에도 적용돼 기존 안보다 각각 134가구(경제적 가치 약 938억원)와 201가구(5025억원)를 늘려 설계했다.
코로나19로 원격 관리 필요성이 강조되면서 디지털 트윈(현실과 똑같은 쌍둥이 가상공간) 등을 통해 비대면 작업을 돕는 스타트업에도 관심이 높아졌다. 엔젤스윙은 드론으로 건설 현장을 촬영해 지형과 기계 등을 반영한 3차원(3D) 현장을 가상세계에 만든다. 건설사는 현장에 직접 인력을 투입하지 않고도 토사량을 정확히 측량하고 반입·반출량 등 변화를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다. 통상 1~2주가 걸리는 현장 측량작업을 단 몇 시간 만에 끝낼 수 있다.
플럭시티는 공사 현장 출입 통제부터 실시간 공정 현황, 중장비 이동 경로 등 시공과 관련한 모든 과정을 3D로 구현했다. 호반건설과 손잡고 서울 개봉5구역과 위례9블록 등 실제 건설 현장에서 관제를 담당했다. 메이사는 드론을 활용한 3D 매핑 기술로 측량과 시공 오차 확인, 공정률 비교 등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포스코이앤씨 등 국내 20여 개 건설사와 협력해 100여 개 현장에서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위험 작업 대신하는 건설로봇
실제 건설 작업을 수행하는 로봇도 등장했다. 건설 로봇은 일반 제조 로봇과 달리 크고 무거운 건설 자재를 다뤄야 하고 작업 환경 역시 일률적이지 않아 상대적으로 발전이 더뎠지만 중대재해처벌법 시행과 육체노동 기피 현상이 겹치면서 최근 수요가 급증했다.
건설 로봇 스타트업인 엠에프알은 바닥부 마감재 시공 로봇, 도로터널 내화보드 시공 로봇 등을 개발했다. 로봇팔과 다리, 센서 등이 건설 임무에 맞게 교체되는 다목적 건설로봇 플랫폼을 구축했다. 철근 가공 스타트업인 로보콘은 3~10%에 달하던 로스율(철근 운반·절단 과정에서의 손실률)을 자체 로봇을 통해 1% 수준으로 낮추는 데 성공했다.
다만 꽉 막힌 국내 규제는 콘테크 시장의 리스크로 꼽힌다. 기술 발전 속도가 빠를수록 과거에 만든 제도와의 ‘시차’는 벌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최근 각광받는 모듈러 건설 기술은 현재 별도의 공사비 산정 기준이 없어 공공건설 수주 때 총사업비 반영에 어려움이 있다. 건설 신기술로 지정받기 위한 수주 실적 기준이 높아 초기 스타트업에 장애가 된다는 지적도 많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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