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엄벌주의’에 초점 간 정부 학폭 대책···‘회복’과 ‘보호’는 어떻게
이주호 “가해학생 더 엄정 조치할 것”
전문가들 “소송 증가 부작용 우려···
관계 회복·피해자 보호 강화해야“
정부가 학교폭력(학폭)을 막기 위해 ‘가해자 엄벌’에 초점을 맞춘 대책을 검토하고 있다. 정순신 변호사의 아들이 학폭 전력에도 불구하고 서울대에 진학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가해자에게 무거운 불이익을 줘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졌다. 그러나 가해자에 대한 처벌 강도가 높아질수록 관련 소송도 늘어날 수 있어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응징’에만 힘을 쓰다 학생 간 관계를 회복하고 피해학생을 지원할 방안이 뒷전으로 밀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는 이달 14일 정 변호사 아들 관련 청문회가 열린 뒤 학교폭력 근절대책을 공식 발표할 예정이다.
5일 ‘학교폭력 근절 종합대책 관련 당정협의회’에서 정부와 여당은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에 기재된 중대한 학폭 조치사항의 보존 기간을 연장하고, 이를 정시 전형까지 확대 반영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취업 때까지 학폭 기록을 보존하는 방안도 검토했다.
현재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학폭위) 조치 사항 가운데 1호(피해 학생에 대한 서면사과), 2호(피해 학생 및 신고·고발 학생에 대한 접촉, 협박 및 보복행위의 금지), 3호(학교에서의 봉사)는 학생부에 기재됐더라도 졸업과 동시에 삭제된다. 4호(사회봉사), 5호(학내외 전문가에 의한 특별 교육 이수 또는 심리치료), 6호(출석정지), 7호(학급교체)는 졸업 후 2년간 기록이 보존됐다가 삭제되지만, 심의를 거쳐 졸업과 함께 삭제할 수 있다. 8호(전학)는 예외 없이 졸업 후 2년간 보존됐다가 삭제되고, 9호(퇴학)는 예외적으로 삭제되지 않는다.
이날 당정에서는 피해학생을 보호하고 학교의 교육적 해결을 촉진하는 방안도 논의했으나 대책의 무게중심은 ‘가해자 엄벌’에 쏠렸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학폭 시 반드시 상응하는 조치 뒤따른다는 인식이 확고히 자리 잡도록 가해학생에 대해선 더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엄정한 대응과 함께 부작용에 대한 대책을 주문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이날 성명을 내고 “학폭 대책이 처벌 강화 방안에만 매몰돼서는 안 되며, 학교와 교원이 교육적·회복적 생활지도에 나설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함께 마련돼야 한다”고 했다.
가해자 엄벌에 따른 부작용 중 가장 우려되는 것은 ‘소송 남발’이다. 실제로 학생부에 학폭 조치사항이 기록되기 시작한 2012년 21건이었던 학폭 관련 행정심판은 2019년 1609건으로 늘었다. 가해자가 조치사항이 완화될 때까지 소송을 끌고 가는 사례가 늘면서 피해학생의 고통도 커졌다.
학폭 관련 소송은 예외적으로 신속히 마무리될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송경원 정의당 정책위원은 “소송을 거는 것 자체를 막을 수는 없으니 소송의 결론을 빨리 내야 추가적인 피해를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관계 회복과 학폭 예방에 초점을 둔 대책도 필요하다. 현재 전국 시·도교육청에서는 가·피해학생의 화해와 소통을 이끄는 갈등조정 및 관계회복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다. 학생들은 전문가로 이뤄진 지원단과 함께 집단상담, 인성교육 프로그램 등에 참여한다. 그러나 학교마다 프로그램의 질과 이행능력이 천차만별이다. 한성준 좋은교사운동 공동대표는 “관계회복 프로그램을 내실화·의무화해 학교의 교육적 해결 역량을 키워주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피해학생 보호 및 지원책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조정실 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 회장은 “중요한 건 학폭이 발생한 후 피해가 충분히 치유됐는지, 그것이 공동체 회복에 도움 됐는지 살피는 관점을 갖는 것”이라며 “오히려 피해학생들이 기존의 환경에서 도망 나오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말했다.
대표적인 피해자 보호책인 ‘가·피해학생 즉시 분리’와 ‘긴급조치’를 강화할 필요성도 있다. 현재 가해학생과 피해학생의 즉시 분리 기간은 ‘3일 이내’로 제한적이다. 주말이 포함되면 분리조치가 무의미해져 이 기간을 5일로 확대하자는 의견이 나온다.
현행 학교폭력예방법에 따르면 학교장은 ‘피해학생이 긴급보호를 요청할 경우’ 심리상담 등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는 “가해학생이 처벌받았다고 하더라도 피해 학생들의 분노, 좌절, 트라우마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피해학생의 회복을 지원하는 시스템을 보완해야 한다”고 했다.
김나연 기자 nyc@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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