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 언론 ‘박멸’한 러시아···군사 블로거들은 어떻게 푸틴의 ‘디지털 보병’이 됐나
독립언론 ‘궤멸’한 러시아서 ‘정보 공백’ 채워
전쟁 옹호하며 푸틴의 ‘선전 부대’ 역할
초국가주의 운동 뿌리 두고 군 수뇌부도 비판
56만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러시아의 유명 ‘군사 블로거’가 지난 2일(현지시간) 반(反)러시아 세력의 표적 공격으로 추정되는 폭탄 테러로 사망하면서, 전쟁 상황을 중계하는 블로거들이 상대 진영의 표적이 될 정도로 영향력이 커진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자국의 비판적인 언론을 모조리 해산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블로거들을 전쟁의 ‘선전 부대’로 활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4일 CNN은 ‘전쟁 특파원’이라고도 불리는 러시아의 군사 블로거들이 푸틴의 언론 탄압으로 발생한 러시아 내 ‘정보 공백’을 대체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 당국은 지난해 3월 러시아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독립언론 메디아조나를 강제 해산하는 등 우크라이나 침공 전후로 정권에 비판적인 언론들에 차례로 재갈을 물려 왔다. 이에 따라 언론인들은 탄압을 피해 해외로 근거지를 옮겨 활동하거나 수감된 상태다.
결국 러시아 시민들이 전쟁에 대한 정보를 얻는 방법은 철저히 크렘린의 시각대로 보도하는 국영 언론이나 ‘군사 블로거’들이 운영하는 텔레그램 채널 뿐이다. 캔디스 론도 신아메리카재단 연구원은 “군사 블로거들은 (전쟁에 대해) 매우 불투명한 정보를 제공하지만 어쨌든 그들은 뉴스를 제공하고 있다”면서 “최전선에서 발생하는 일에 접근할 수 있는 러시아 내 유일한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특히 군사 블로거들은 민간군사기업(PMC) 와그너 그룹과 우크라이나 돈바스 지역의 친러 분리주의자 그룹 등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어, 구체적이고 민감한 군사 정보에 접근하고 있다. 지난 2일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폭사한 유명 군사블로거 블라드랜 타타르스키(본명 막심 포민·40) 역시 와그너 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의 후원을 받는 등 상당히 밀접한 관계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론도는 “와그너 그룹을 대중화시킨 것도 이들 군사 블로거들”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들이 전하는 전쟁 관련 소식이 편향적이며 크렘린의 전쟁을 옹호하는 나팔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러시아의 ‘종군 기자’ 노릇을 하고 있지만, 때로는 시리아·아프가니스탄 등지에서 벌어지는 와그너 그룹의 군사작전이나 돈바스 전쟁 등에 직접 전투원으로 참전하며 보도에 관한 윤리적인 선을 넘고 있다고 CNN은 전했다.
타타르스키 역시 전선에서 무기를 들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노출하며 ‘애국심’을 선전하기도 했다. 우크라이나 도네츠크 출신인 그는 2011년 무장한 채 은행을 털다가 붙잡혔지만 탈옥한 후 친러주의 반군인 돈바스민병대에서 활동하며 범죄 전력을 ‘세탁’했다.
미 싱크탱크 전쟁연구소의 러시아 분석가인 카테리나 스테파넨코는 “군사 블로거들의 영향력이 커진 것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군사적 실패를 경험하기 시작한 지난해 4~5월 무렵”이라고 말했다. 당시 러시아 국영언론과는 달리 이들은 군 고위층의 전략 실패를 강도 높게 비판하며 더 높은 수준의 공세를 주문했다. 러시아군이 큰 피해를 입은 지난해 5월 세베르스키도네츠강 전투, 11월 헤르손 철수 등을 강도 높게 비판한 것도 군사 블로거들이다. 러시아 내 국영 언론에겐 허용되지 않았던 ‘비판의 자유’가 군사 블로거들에게는 있다는 얘기다.
이는 이들이 푸틴의 침략 전쟁을 강하게 옹호하는 극우·초국가주의적 노선을 견지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미 싱크탱크 아틀랜틱카운실 디지털포렌식연구소의 루슬란 트라드는 “군사 블로거의 텔레그램 구독자들은 대부분 극우 민족주의자”라며 “이들의 채널 중 다수는 초국가주의 운동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이 운동은 텔레그램을 통해 더 널리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BBC는 “군사 블로거들이 러시아 독자들에게 인기가 있는 이유는 러시아의 ‘특수 군사 작전’의 필요성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으면서 (군에 대한) 좀 더 비판적인 관점을 제공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블로거들이 텔레그램 계정에 게시하는 노골적인 전쟁 관련 자료들도 주목도를 높이는데 일조하고 있다. 일례로 와그너 그룹과 연계된 텔레그램 채널 ‘그레이 존(Gray Zone)’은 지난해 11월 우크라이나에 투항한 용병을 망치로 처형하는 영상을 그대로 공개하기도 했다.
크렘린도 이들의 ‘강경 노선’을 추켜 세우고 있다. 마리아 자카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타타르스키를 비롯한 군사 블로거들 덕분에 “세계가 진실된 영상을 보고 우크라이나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에 대한 정보를 얻는다”고 말했다.
반면 러시아 당국은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군이 저지른 잔학 행위를 보도하는 독립 언론은 철저히 탄압하고 있다. 러시아 언론인 마리아 포노마렌코는 지난해 우크라이나 마리우폴 극장에서 민간이 수백여명이 러시아군의 포격으로 숨진 소식을 전했다가 징역 6년을 선고 받았다. 야당 정치인이자 정치평론가인 일리야 야신은 러시아군의 부차 학살을 언급했다가 러시아군에 대한 ‘거짓 정보’를 퍼뜨린 혐의로 체포돼 징역 8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한편 러시아 당국은 타타르스키 살해 용의자로 체포된 다리야 트레포바(26)를 4일 기소했다. 반테러 작전을 지휘하는 국가반테러위원회는 이번 사건이 야권 정치인 알렉세이 나발니와 연계된 세력의 도움을 받은 우크라이나 특수기관의 소행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우크라이나 정부와 나발니 모두 이를 부인하고 있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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