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어는 전라도의 힘”

김종목 기자 2023. 4. 5. 17:1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소설가 문순태 세번째 시집 ‘홍어’
“입 안에 꽉찬 야만적인 충만감”
“혐오표현으로 사용돼 화나고 슬퍼”
문순태 작가. 문학들 제공

문순태 시집 <홍어>(문학들)에서 자주 나오는 단어는 ‘행복’이다. 그는 “좋아하는 음식 하나 마음속 깊이 품고 살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 아닌가”라며 그 일을 시들로 풀어낸다.

“홍어 날개 한 점/ 진달래 꽃잎인 듯/ 살포시 입에 물고/ 깨알 같은 행복 음미하며/ 씹고 또 씹는다”(‘3 날개’ 중).

“부드러우면서도 쫄깃한 이 행복/ 오래 씹을수록 사랑이 깊어진다”(‘생살 홍어 맛’ 중)

홍어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입에 침이 고이게 하는 행복한 시어들이 이어진다. 문순태는 홍어 삼합을 먹으며 떠올린 미식의 즐거움은 이렇게 표현했다.

“가슴 후비는 어울림의 한판이자/ 입안에 꽉 찬, 이 야만적인 충만감/ 머릿속에 일곱 빛깔 무지개 떠올랐다”(‘홍어 삼합’ 중).

문순태에게 홍어는 생로병사와 희로애락이다. “홍어를 씹으며 행복하게 늙어간다”고 여기면서도 노화를 피할 수는 없다. 홍어 날개를 씹다가 어금니를 다친 그는 모질게 살아온 일과 다른 이에게 상처 준 일을 함께 떠올린다. “팔십 평생, 이 악물고 버티며 살아오느라/ 입속의 시간들 낙엽처럼 삭고 말았구나/ 그동안 이 세상 질기고 단단한 것/ 얼마나 맹렬하게 씹고 깨물어 왔던가/ 때로는 가장 가까운 사람까지도/ 몸부림치며 물어뜯기도 했었다”(‘날개를 씹다가’ 중). 이 시는 어머니에 관한 것이다. “문득 이승 떠날 무렵에 보았던/ 어머니의 오래된 틀니가 생각난다/ 아, 날개 살이 늙은 나를 울리는구나”.

홍어찜을 좋아하던 어머니가 홍어 날개를 씹을 수 없게 되자 한 말을 ‘인생의 맛 홍어찜’에 담았다.

“아서라 세상사 부질없다면서/ 누워 지내는 날이 많았다/ 더 이상 씹을 수 없다는 것은/ 질긴 삶을 내려놓는 것/어머니는 입을 오물거리면서/ 홍어찜은 만고풍상 다 겪고 난/ 인생의 마지막 맛”이라며 자식에게 한 말은 “씹을 수 있을 때 힘껏 물어뜯음서/ 황소처럼 씩씩하게 살어야 헌다”이다.

홍어는 또 내리사랑이다. “보고 싶다는 말 대신/ 자식이 좋아하는 홍어/ 택배로 보낸다”(‘자식에게 홍어를 보내며’ 중).

무엇보다 문순태에게 홍어는 전라도다. 우선 전라도식으로 먹어야 한다. “유리창 문 덜컹거리는/ 오래된 식당 구들장 바닥에/ 퍼지르고 뽀짝 붙어 앙거서/ 큰 소리로 욕하며 노래하고/ 막걸리로 목 축여 가면서/ 젓가락 장단 맞추며 먹어야/ 홍어의 존엄을 지키는 일이다”(‘홍어는 전라도식으로 먹어야’ 중).

문순태는 홍어를 씹어 먹으며 동학농민군의 죽창과 오월광주의 무등산 철쭉꽃을 떠올린다. “그러므로 우리는 너를/ 음식으로 먹는 것이 아니다/ 불꽃같은 맛의 기억을/ 오래 간직하고 싶어서다/…/ 기쁨과 슬픔을 공유하자는 것/ 함께 홍어를 먹는다는 것은/ 더불어 홍어가 되자는 것”(‘홍어, 전라도의 힘이여’ 중).

문순태는 ‘실학자 정약전과 홍어장수 문순득’ 시도 세 편 실었다. 문순득은 1801년 1월 우이도에서 흑산도로 홍어 사러 갔다가 풍랑을 만나 표류하다 3년2개월 만에 돌아온다. 정약전이 문순득 이야기를 듣고 쓴 책이 <표해시말>이다.


☞ 흑산도…세상의 끝인 줄 알았더니 새 길의 시작이었네
     https://www.khan.co.kr/travel/national/article/202103312155005


☞ [책과 삶]배신·범죄·홍어까지…전라도는 어쩌다 이토록 지독한 ‘편견의 땅’이 되었나
     https://www.khan.co.kr/culture/book/article/201810192046015


☞ 망언·막말···끝나지 않는 윤석열 '측근 잔혹사'
     https://www.khan.co.kr/politics/politics-general/article/202111031544001

이런 홍어를 한국 극우들은 마구 씹어뱉는다. 전라도를 혐오하는 말로 사용한다. 홍어에 얽힌 사람과 역사에 관한 아름다움, 애틋함, 진정으로 가득한 시집에서 그는 혐오에 맞선 시 하나도 썼다.

“내가 홍어라고?/ 누군가 숨어서 나를 째려보며/ 냄새나는 홍어라고 손가락질한다/ 그래, 나는 속살 빨간 홍어다/ 그렇지만 부끄럽지도/ 주눅 들지도 않는다/ 자랑스럽게 홍어를 사랑하니까/ 사랑하면 세상이 환해지니까”(‘내가 홍어라고?’ 중).

문순태는 기자와 통화하며 “이제 전라도 사람들은 (홍어가 혐오 표현이라는 걸) 다 안다. 볼 때마다 화가 나고 슬프기도 하다. 시를 쓰면서 (혐오와 비하를) 극복하자는 생각도 했다”고 말했다.

홍어는 전라도 정신이나 정체성과 통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홍어는 부레가 없어서 납작 엎드려 살아요. 날개가 있어 날고 싶은 희망 같은 것도 품었죠. 역사적으로 핍박받은 이 지역의 민초들도 납작 엎드려 살아왔거든요. 홍어 숙성 과정이 고통의 과정입니다. 홍어는 이 과정에서 죽습니다만, 삶과 문화 속에서 그 존재가 되살아납니다. 숙성을 거듭남의 뜻으로 써봤어요. 사람도 고통을 겪고 나면 거듭날 수 있잖아요.”

<홍어>는 <생오지에 누워>(책만드는 집, 2013), <생오지 생각>(고요아침, 2018)에 이은 세 번째 시집이다. 문순태는 “소설가가 소설을 써야 하는데 시를 쓰니까 좀 슬픈 마음이 든다. 그래도 원래 시로 출발했다. 옛날 감성을 회복하고 있다. 시골(전남 담양 생오지 마을)에 사니까 시적 감흥이 더 우러난다”고 했다. 문순태는 광주고에 다닐 때 김현승에게서 시를 배웠다. 그는 시인으로 먼저 등단했다.

문순태는 전라도의 상징인 홍어에 이어 실제 삶 공간인 영산강에 관한 시를 쓰려 한다. <홍어>에서도 “영산강 물줄기 따라. 파도치듯/ 홍어가 내게로 스며들어 왔다”(‘홍어가 내게로 왔다’ 중)고 썼다. 그는 영산강 시원인 담양 가마골부터 답사를 다니고 있다.

소설 집필 계획을 물었더니 “올해 우리 나이로 여든다섯이다. 기억력이 많이 없어졌다. 여러 수술도 했더니 기력도 달린다. 소설은 집중력이 필요하다. 장편은 못 쓰겠더라”고 했다.

단편은 초고를 3년 전 써놓고도 퇴고하지 못했다고 한다. 고향 광주를 떠나 살다가 오월광주 때 항쟁에 참여하지 못한 사람이 자격지심 때문에 가지 못하다가 늙은 뒤에야 고향을 찾아가는 이야기라고 한다.

“임플란트를 8개 했다”는 문순태는 요즘도 늘 홍어를 먹는다고 했다. 그 좋아하는 홍어를 먹지 않는 때가 있다. “홍어를 먹고 나면/ 온몸에 가시가 돋으면서/ 울부짖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5월에는 홍어 대신/ 최루 가스보다 더 맵고 짠/ 낙지 대가리 오독오독 씹으며/ 차가운 눈물 삼킨다”(‘5월에는 홍어를 먹지 않는다’ 중).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