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 한 굽이굽이... 보릿대 사이 피어난 '제주 4·3 진실꽃' [틀낭에 진실꽃 피엄수다]

정자연 기자 2023. 4. 5.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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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진 작가. 정자연 기자

 

제주가 품고 있는, 반세기 이상 국가가 숨기고 억눌러온 폭력과 야만의 역사에 관해 이야기한 책이 있다. ‘틀낭에 진실꽃 피엄수다’(메디치미디어 刊)는 ‘산딸나무에 진실꽃이 피었습니다’라는 말이다. 4·3의 진실이 마침내 피게 되었다는 것을 담은 제목이다. 많은 제주사람들이 4·3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끊임없이 때론 낮게, 때론 가열차게 목소리를 높여왔다. ‘틀낭에 진실꽃 피엄수다’는 그런 목소리를 그림과 글, ‘그래픽 다큐멘터리’로 담았다.

책은 제주 4·3을 마음으로 느끼고 온몸으로 엮어낸 이들이 오래도록 국가가 숨기고 억눌러온 폭력과 야만의 역사에 관해 이야기한다. 4·3의 진실을 전하고, 여전히 남아있는 문제들을 살핀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과 아픔은 보리줄기를 사용해 만든 그림으로 대변된다. 책은 이수진 보리아트 작가가 보리미술로 탄생시킨 그림 70여점을 통해 4·3 당시 사라져버린 사람들과 마을들의 존재를 증언하고, 희생된 이들의 영혼을 불러내 진실의 목소리로 위로한다. 

이수진 작가가 소재로 사용한 보리줄기는 4·3 때 폐허가 돼 끝내 재건되지 않은 마을들의 옛 터에서 자란 것들이다.

은은하게 반짝이는 보릿대 빛깔 사이로 70년 넘게 묵은 아픔과 한이 굽이굽이 물결친다. 은은한 보리줄기 속 뿜어내는 잔잔함은 아름다워 더 시리다.  

이수진 작가는 사라진 사람들의 혼이 그 보리줄기에 깃들어 있다고 생각하며 작품을 만들었다. 작품에 사용된 재료는 제주 보리와 제주 흙, 제주 귤, 제주 동백꽃 등 모두 제주에서 공수해 왔다. 

지상에 남은 숟가락 하나, 80.3×116.8cm, 제주 보리줄기, 천연염색, 2021. 메디치미디어 제공

이 작가는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제주 4·3 이 안고 있는 역사 자체가 굉장히 무겁고 아픈데 많은 분들이 역사를 있는 그대로 알기 바라는 마음으로 작업했다”며 “어렵지 않게 작품만 보고도 제주 4·3이 어떤 내용인지 알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작업을 하는 동안 이 작가는 제주의 진실을 마주하고 한동안 작업을 하지 못하기도 했다. 그는 “제주 4·3 사건을 너무 늦게 알았고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 희생당하신 분들이 다음 생에서는 평범하게 편하게 사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작업을 마무리했다”고 설명했다.

너, 90.5×50.0cm, 제주 보리줄기, 아크릴, 2020. 메디치미디어 제공

글은 지난해까지 (사)제주4·3범국민위원회 집행위원장을 맡았던 박진우 민족문제연구소 수원지역위원장과 이하진 작가가 맡았다. 

박진우 위원장과 이하진 작가는 이제는 냉전, 반공주의적 역사관에서 벗어나 그 곳에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 대한민국 주권자로서의 권리, 저항할 권리, 싫어한다고 말할 권리, 이러한 권리를 보장할 가치를 글에 녹여내는 데 집중했다. 

박진우 위원장은 “최근 정순신 변호사의 아들이 제주도에서 온 친구에게 ‘빨갱이’라는 표현을 했다는 등 아직도 당시 제주에 대한 편견, 거짓이 남아있다”면서 “이수진 작가의 작품을 통해 편안히 진실을 마주하고, 이념이 아닌 인간의 기본권과 가치, ‘사람’을 먼저 바라보길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썼다”고 밝혔다. 

정자연 기자 jjy84@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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