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김정은 총회장님’... 제주 간첩단 혐의 통진당 출신 3명 기소

유종헌 기자 2023. 4. 5.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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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에서 북한 공작원과 접선하고 북한의 지령을 받아 국내에서 활동한 혐의를 받는 제주 ‘ㅎㄱㅎ’ 조직원 3명이 기소됐다. 이들은 2014년 해산된 통합진보당 출신 세력들로, 통진당의 후신인 진보당에서 활동하면서 제주도에 지하 세력을 결성했다고 한다. 제주 ‘ㅎㄱㅎ’는 검찰과 방첩당국이 크게 세 갈래로 수사중인 ‘간첩단’ 사건 중 하나다. 나머지 사건은 경남 창원을 중심으로 활동한 자주통일 민중전위, 북한과 접촉한 민주노총 전현직 간부들과 관련된 것이다.

공안탄압 저지 및 민주수호 제주대책위원회가 지난 1월 12일 오후 국가정보원 제주지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뉴시스

제주지검 형사2부(부장 오기찬)는 5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ㅎㄱㅎ 조직원 고모(53)씨와 박모(48)씨를 구속 기소하고, 총책 강모(53)씨를 불구속 기소했다. ㅎㄱㅎ는 ‘한길회’의 초성으로, 주체사상을 지도이념으로 조국통일의 한길을 가겠다는 의미라고 한다. 검찰은 총책 강씨가 암 투병 중인 점 등을 고려해 불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겼다.

강씨는 2017년 7월 캄보디아에서 북한 문화교류국 소속 공작원과 접선해 지령과 통신 교육을 받은 뒤 국내로 돌아왔다. 강씨는 북한으로부터 지역 노동·농(農) 부문 역량 강화와 대중투쟁 전개를 지시받고 2018년 12월부터 고씨, 김씨 등과 ㅎㄱㅎ 결성을 준비했다고 한다. 이들은 2022년 9월 ㅎㄱㅎ를 구성했는데 농 부문은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사무총장인 고씨가, 노동 부문은 진보당 제주도당 위원장인 김씨가 맡고 여농, 청년·학생 조직 부문은 총책 강씨가 직접 관리했다고 한다. 방첩당국은 ㅎㄱㅎ 조직원 규모를 10여명으로 파악한 것으로 전해졌다.

강씨는 2017년 10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사이버 드보크’ 방식을 이용해 북한으로부터 총 13건의 지령을 받고, 14건의 대북 보고문을 작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은 이들에게 ㅎㄱㅎ의 강령과 규약을 보내면서 “혈서를 쓰거나 맹세문을 발표하는 방식으로 결의를 다져야 한다”고 지시하기도 했다. 강씨는 보고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총회장님’, ㅎㄱㅎ를 ‘대학원’으로 부르는 등 음어를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또 북한 문화교류국은 ‘연구원’, 사이버 드보크는 ‘자료보급선’, 해외접선은 ‘해외여행’이나 ‘쇼핑’이란 음어로 소통했다고 한다. 조직 내부의 특정 인사들을 칭하는 표현도 별도 음어로 정했는데, 조직성원은 ‘대학원생’, 예비성원은 ‘수련생’, 장악·관리 중인 세력은 ‘후원회’, 부문조직은 ‘회사’, 부문조직 성원은 ‘사원’으로 각각 칭했다고 한다. 이들은 음어 사용을 통해 진보당 제주도당의 당원 수 등을 상세히 보고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ㅎㄱㅎ’는 북한 문화교류국에서 총 4개 조항으로 이뤄진 강령과 규약도 하달받은 것으로 방첩당국은 파악했다. 검찰과 방첩당국은 강제수사를 통해 이들의 강령도 확보했는데 강령 1조에는 ‘위대한 주체사상을 지도이념으로 한다’, 2조는 ‘미국의 식민지 사회 제도를 반대하고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의 과업을 수행하는 것을 당면 목적으로 한다’는 내용이 적시된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3조에는 ‘사회변혁을 위하여 투쟁하는 핵심들로 골간을 튼튼히 꾸리고 그 두리에 광범위한 애국력량을 묶어세워 민족해방혁명 수행의 결정적 역량을 마련하며 미제와 극소수 친미반동세력을 타도하고 한국사회에 자주적 민주정부를 수립하기 위해 투쟁한다’는 내용이 담겼는데, 검찰에 따르면 사회 변혁이란 주체사상을 바탕으로 한 북한식 사회주의를 표방해 남한 변혁을 목표로 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강령 4조는 ‘조국통일 3대원칙과 북남공동선언들을 활동의 지침으로 삼고 민족주체역량에 기초한 조국통일의 역사적위업을 달성한다’는 내용이었다.

검찰은 이들이 작년 9월 24일 한 호텔에서 노동 부문 결의 모임을 가진 정황도 파악했다. ‘ㅎㅅㅎ’ 조직원들은 이 자리에서 ‘조직과 민중에 복무하겠습니다’, ‘이 한목숨 다바쳐 조국통일 민족해방 만세’, ‘조국통일과 민족해방의 밑거름이 되겠습니다’ 등의 결의문도 낭독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윤석열 정권 퇴진을 위한 집회 개최하라는 북한의 지령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노조법 개정과 쌀값 안정, 여성가족부 폐지 등 사회 현안에 대해서도 촛불집회를 열라는 지령을 받고, 반정부·반미 투쟁 선동을 위한 활동 계획을 세우고 실제 실행에 나선 것으로 검찰은 파악했다.

검찰과 방첩당국은 경남 창원을 중심으로 활동하다 최근 구속 기소된 자주통일 민중전위 조직원들이 민노총과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활동한 데 반해, ㅎㄱㅎ 조직원들은 정당과 농민단체를 중심으로 지역사회 진출을 기도한 것으로 파악됐다. 북한 공작원과 접선한 민주노총 전·현직 간부들도 방첩당국의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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