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더의 동적인 조각, 이우환의 정적인 작품 … 동서양의 '대화'

김슬기 기자(sblake@mk.co.kr) 2023. 4. 5.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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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달까지 국제갤러리 2인전
칼더 모빌·브론즈 등 34점 전시
이우환 '관계항' 6점·드로잉 4점
칼더 외손자 로워 재단 이사장
"외조부 동양미학 집착 대단
교감하는 예술을 만나보라"
알렉산더 칼더 조각 '화이트 오디너리' 옆에 서 있는 알렉산더 로워 칼더 재단 이사장. 국제갤러리

동서양의 두 거장이 만났다. 알렉산더 칼더(1898~1976)의 움직이는 조각의 역동성과 이우환(87)의 정적인 작업의 조우다. 이우환의 대표작 제목처럼 거장들의 시(詩)적인 작업이 만나 '대화(dialogue)'를 나누는 보기 드문 전시가 찾아왔다.

5월 28일까지 국제갤러리에서 칼더와 이우환의 개인전이 나란히 열린다. K2 1층과 K3에서 열리는 'CALDER'는 대표적인 모빌과 브론즈, 구아슈 작업 34점을 소개한다. 9년 만의 국내 개인전으로 왕성하게 활동한 1940~1970년대 주요작을 엄선했다.

개막일인 4일 만난 알렉산더 로워 칼더재단 이사장은 "조부의 예술은 과거나 미래가 아닌 언제나 지금을 의미했다. 공간과 관객과 교감하는 예술을 만나보라"고 인사를 건넸다. 칼더의 외손자인 그는 유럽, 호주 등 115개 지역에서 칼더 전시를 열었다. 그는 "날숨에도 움직이고 부딪혀 소리를 내기도 하는 모빌을 칼더는 3차원 이상의 예술로 만들고 싶어했다. 눈에 보이는 이상의 높은 차원이 존재한다 생각했고, 작품을 보는 사람들이 느끼길 원했다"고 작품세계를 설명했다.

K2 1층에는 구아슈 회화 15점이 걸려 조각가로 알려진 칼더의 색다른 면모를 만날 수 있다. 음양, 소용돌이, 원 등 상징이 가득한 추상적 회화도 모빌만큼이나 에너지와 역동성이 느껴진다. 로워 이사장은 "조부께서는 조각 작업을 마치면 다른 방으로 이동해 응축된 에너지와 자유를 드로잉으로 풀어내곤 하셨다"고 설명했다. 그는 "2만5000여 점의 방대한 작품 중 1962년 이후 주로 작업한 수천 점의 구아슈 작업은 대부분 미술관에 소장돼 있다"고 했다. 회화의 숲에 둘러싸인 유일한 조각인 1974년작 'Crag'는 바다에서 융기하듯 솟어난 절벽을 연상시키는 혼돈을 표현했다.

K3에는 대형 모빌이 집중적으로 설치됐다. 입구 천장에 걸린 초대형 모빌 'Roxbury Front'는 칼더가 딸을 위해 만든 작업이다. '그랜드 피아노' '런던' 등에선 위트 있는 제목의 의미와 작품을 비교하면 재미가 있다. 대표작 중 하나인 '구아바'를 보며 로워 이사장은 "인도 여행 중 만든 작품으로, 제목과 작품의 연관성은 없다. 다만 노란색을 보고 구아바처럼 생겼다는 의미에서 붙였다"고 설명했다. 미니어처 청동 조각도 5점 전시됐다. K3의 마지막 작품인 '화이트 오디너리'에서는 회전할 때 숨어 있는 검은 조각이 드러나는 작가가 의도한 '반전'을 만날 수 있다.

이우환의 신작 '관계항-키스'. 국제갤러리

두 거장이 조우하는 작품도 있다. 소품 '새장에 갇힌 돌과 14개의 점'은 1948년 칼더가 미국 코네티컷 비포장도로를 명상하며 걷다 줍게 된 돌멩이를 조각에 차용한 작품. 로워 이사장은 "그분은 철학자였고 자연의 미학을 작품에 투영하곤 했다. 이우환과의 전시를 위해 특별히 고른 작품"이라고 말했다. 그는 "조부는 동양미학에 대한 집착이 대단해서 도자기나 사무라이검과 같은 것도 많이 수집했다"고 말했다.

칼더는 재료의 물성을 실험하고 추상적 형태를 공간 위에 그려낸다는 점에서 이우환과 접점이 있다. 12년 만에 국내에서 개인전을 여는 이우환의 전시는 K2 2층과 K1에서 이어진다. 올해 프랑스 쇼몽성, 베를린, 도쿄 등에서 쉴 새 없이 전시가 예정된 거장은 대표작인 '관계항' 조각 6점과 4점의 신작 드로잉을 통해 끝없이 변하는 예술의 단초를 보여준다.

K2 외부에 설치된 '관계항-Dwelling(A)'은 돌 위에 철판을 올려 위치를 '전복'시켰다. 관계항은 자연을 상징하는 돌과, 산업사회를 대표하는 강철판이 관계를 맺고 관람객이 두 사물의 대화에 참여하는 명상적인 작업. K2 2층에는 구획된 3개의 방에 각각 '관계항' 연작을 설치했다. 순백의 캔버스를 응시하는 돌, 돌을 비추는 조명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관계항-사운드 실린더'에서는 돌이 기대고 있는 강철 원통에서 새와 빗소리, 에밀레종 소리 등이 흘러나온다. 자연과 물질의 관계에 개입하지 않고 관계가 맺어지도록 유도한 것. 신작인 '관계항-키스'는 쇠사슬이 교집합처럼 두 개의 돌을 감싸고 있어 연인의 모습을 은유한다.

캔버스에 붓질의 호흡만 남아 극도로 단순해진 신작 드로잉도 만날 수 있다. 두 개의 점을 찍어 '대화'를 변주하던 그는 점 대신 돌을 그려넣기도 했다. "나와 타자가, 내부와 외부가 만나는 장소가 작품"이라고 설명했던 이우환의 철학이 더 정교하게 구현된 세계를 만날 수 있는 전시다.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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