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개신교의 시작을 따라…인천·강화 근대문화유산 탐방

임지선 기자 2023. 4. 5.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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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5년 4월5일 부활주일
최초 미국인 선교사 한국 땅에
내동교회·강화읍교회 등
서양식·한식 절충 건물 눈길
3일 한국교회총연합회에서 마련한 ‘기독교 근대 문화유산 탐방’ 행사에서 인천시 중구 항동 한국기독교 100주년 기념탑을 찾았다. 한교총 제공

3일 오후 인천시 중구 항동 한국기독교 100주년 기념탑 앞. 138년 전 한국 땅을 처음 밟은 미국의 공식 선교사 헨리 아펜젤러 부부, 호러스 언더우드를 기념하는 조각상이 세워져 있다. 박철호 기념탑교회 목사가 3명을 기념한 조각상을 뒤에 두고 퀴즈를 냈다. “동상에 몇 사람이 보이시나요? 힌트, 유치원생들은 이 문제를 잘 맞힙니다.” 정답은 아펜젤러 선교사의 아내 배 속에 있던 아기까지 총 4명. 배 속 아기는 앨리스 리베카 아펜젤러. 훗날 이화학당 교사가 돼 오늘날 이화여자대학교를 신촌으로 옮기는 데 큰 공을 세운 인물이다.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출발해 일본 요코하마를 거쳐 배 속 아기까지 4명이 한국 땅에 발을 내디뎠던 때는 1885년 4월5일, 당시 부활주일이었다.

오는 9일 부활절을 앞두고 한국 개신교 주요 교단이 모인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이 지난 3~4일 인천·강화도 기독교 근대문화유산을 탐방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순복음교회 담임목사인 이영훈 대표회장과 공동대표회장 권순웅 목사, 이철 기독교대한감리회 감독회장, 허은철 총신대 역사교육학과 교수 등이 동행했다.

‘차이나타운’으로 익히 알려진 인천 개항장 일대에는 한국 개신교의 ‘최초’ 타이틀을 지닌 곳들이 여럿 있다. 아펜젤러가 인천 제물포에 도착하자마자 묵었던 대불호텔을 지나 조금만 더 올라가면 붉은 벽돌의 인천 내리교회(사적 256호)가 나온다. 한국 개신교 최초의 교회로 아펜젤러가 한양으로 가기 전 제물포에 한 달간 머물며 예배를 드렸던 곳이다. 초가로 시작한 이 교회는 증축과 개축을 거쳤지만 위치만큼은 1885년 당시 그대로다. 일제가 태평양전쟁을 벌이느라 철 제품을 모두 수거해갔을 때 당시 신도들이 교회의 종을 몰래 숨겨 보관해둬 지금도 남아 있다. 당시 조선인은 서양인이라면 무조건 거부했다. 내리교회 사람들은 1894년 청일전쟁으로 피란을 가던 조선인들이 맡겨둔 살림과 돈 되는 물건을 고스란히 돌려주면서 조선인의 마음을 샀다고 한다.

대한성공회의 최초 교회인 내동교회. 한교총 제공

내리교회에서 5분 정도 언덕을 걸어올라가면 자유공원 바로 아래에 유럽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건물이 나온다. 성공회 최초의 교회인 내동교회다. 이곳엔 원래 1891년부터 ‘성 누가병원’이 있었다. 성공회 코프 선교사를 따라온 랜디스 의사가 세운 병원으로 당시 조선 사람들을 무료 진료하던 곳이었다. 친절하다고 소문이 나 황해도에서도 찾았다고 한다. 6·25전쟁 때 건물이 훼손되고 한국전쟁에 참전한 영국 참전 용사들이 모금해 1956년 지금의 교회로 지었다. 넷플릭스 <수리남>에서 전요한(황정민)이 목사로 예배를 드린 촬영지이기도 하다. 서양식 건물이지만 처마 양식은 한국 문화를 따랐다. 성공회의 토착 선교 노력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평일에는 예배당 문을 열지 않아서 내부를 보기는 어렵다. 낮엔 진료하고 저녁엔 영어를 가르치며, 밤엔 한국책을 번역하다 과로로 별세한 랜디스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허 교수는 “한국 교회에서 인천은 ‘최초’의 도시라면, 강화는 경계를 허물고 기독교 선교에 앞장선 지역, 즉 동양과 서양의 ‘만남’, 양반과 평민의 ‘만남’을 이룬 곳”이라고 말했다.

대한성공회의 강화읍교회. 한교총 제공

대표적 장소는 인천 강화군 강화읍에 위치한 대한성공회의 강화읍교회다. 얼핏 보면 사찰 같다. 들어가는 입구도 외삼문, 내삼문을 거친다. 실제로 과거에 절이라고 생각하고 지나가던 스님이 합장을 한 적도 있다고 한다. 가까이 가 자세히 보면, 처마의 무늬는 연꽃이 아닌 십자가다. 지붕에도 예수의 제자를 상징하는 물고기가 있다. 바실리카 양식과 한옥이 결합된 성공회의 한옥 교회다. 보수를 하긴 했지만 이곳은 1900년 만들어진 이후 원형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관할사제인 이경래 신부는 “한옥으로 지은 건 당시 고딕성당을 지어본 기술자를 구하기 어려웠다는 기술적 이유와 조선 현지화 전략이라는 정치·선교적 이유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절에 익숙한 조선 사람들을 위해 인도산 보리수 나무를 심었고 지금도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국가지정문화재인 이곳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강화읍교회에서 눈여겨볼 점이 하나 더 있다. 정문 옆 난간 철제. 일본 성공회 교회에서 일제가 철을 수탈해갔던 일을 사죄하면서 이곳의 철제 난간을 만들어줬다고 한다. 한·일 종교 간의 ‘만남’도 엿볼 수 있다.

기독교 전래의 자세한 역사는 강화기독교역사박물관에서 살펴볼 수 있다. 지난해 지어진 박물관에서는 1909년 건평교회의 교적부가 눈에 띈다. 여기에는 이름도 없이 ‘16세 새댁’으로만 살던 여성에게 ‘고도라’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세례를 줬다는 기록이 있다. 박물관에서는 기독교 순례길을 큐레이터와 함께 걸을 수 있는 프로그램도 만들었다. 강화의 기독교 유적지를 따라 2시간, 4시간 이동하는 코스로 1인당 1만원의 참가비만 내면 된다.

이영훈 한교총 회장은 “한국 개화기에 독립운동과 교육, 의료 등 결정적 영향을 끼친 이들이 기독교인”이라며 “오늘날 물량주의와 교권주의, 교회 내 다툼과 이단이 생겨났지만 앞으로 환골탈태해 교회가 연합되어 한국 사회를 섬기는 일에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임지선 기자 visi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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