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人터뷰]사이먼 후지와라 "후더베어, 궁극의 이미지가 되는 게 꿈"
기사내용 요약
일본계 영국 미술가...세계 미술시장 스타 작가
만화 캐릭터 '후더 베어' 창조 진짜가짜 뒤섞어
갤러리현대서 한국 첫 개인전...'후티크'도 열어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우리는 정말 모네나 피카소의 작품을 보러 전시에 가는 것일까요? 아니면 모네·피카소라는 브랜드를 소비하는 것일까요?”
마티스와 모딜리아니 '나부' 작품을 '19금 만화'같은 누드화로 그려낸 사이먼 후지와라는 당당했다. 한국에서 첫 개인전을 위해 내한한 그는 18세기~20세기 회화, 영상, 설치 작품으로 둔갑한 그의 만화 캐릭터 '후더 베어(Who the Bær)'의 정당성에 대해 논리력을 과시했다.
"후가 봤을때, 19세기 작품들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노란 침을 흘리는 듯한 긴 분홍 혀를 가랑이에 낀 채 나른하게 앉아 화면 밖을 쳐다보는 여성 누드화 앞에서 그가 되레 물었다.
그는 "여성 모델들이 의자나 카우치에 나체로 늘어져 있는 모습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못할거 같다"면서 "왜냐면 여성을 그렇게 대상화 하는 것에 불편함을 느끼니까요"라고 말했다.
명작이지만 달라진 시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그는 인터넷 시대에 맞춰 '패스티시(pastiche·명백한 모방)와 콜라주 작업으로 이들을 업데이트했다. "이를테면 젠더를 가지고 장난을 치거나, 관객에게 윙크를 하며 좀 더 소통을 한다던지 하는 방식이죠."
과거의 명작을 로맨틱하게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지적으로 분석하며 모순점을 꼬집는다. 자신의 아바타인 만화 캐릭턱 '후(Who)’의 세상을 통해서다. 그의 말을 들으면 진짜 세계와 가짜 세계가 뒤섞여 헛갈릴 정도다.
만화같은 그림이라고 무시하면 큰 코 다친다. 현재 사이먼 후지와라는 전 세계 미술시장을 누비며 인기를 누리고 있다. 무엇이든 무한 변신하는 그의 캐릭터 '후'때문이다. 덕분에 '후지와라'도 이름처럼 어디서든 '후지, '와라'며 러브콜이 뜨겁다.
1982년 런던에서 출생한 일본계 영국 작가로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건축학을 공부했다. 이후 프랑크푸르트 슈테델슐레 예술대학에서 순수미술과를 졸업했다. 베를린에 거주하며 작가 활동을 펼치고 있다. 2021년 밀라노 프라다 재단에서 열린 개인전(Who the Bær)에서 첫 선을 보인 후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국내에서도 그해 아트부산에서 참가한 애쉬더 쉬퍼 갤러리에서 내놓은 작품은 품절사태를 빚기도 했다.
'곰돌이 푸'닮은 캐릭터 ‘후’ 종횡무진
미키마우스, 심슨 등 20세기 만화 캐릭터처럼 21세기 미술계에 새 캐릭터가 된 '후'는 세계관을 통합한다. 후가 사는 ‘후니버스(Whoniverse)’는 콜라주에서부터 회화, 조각, 실물 크기의 설치 작업,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어린이를 위한 책을 비롯해 ‘후티크(Whotique)’, 즉 ‘후 더 베어 부티크’라는 이름으로 제작되는 유명 브랜드와의 컬래버레이션 상품으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끝없이 이어지는 이미지의 전환, 단순한 캐릭터가 아니다. 후의 욕망은 무엇일까?
"궁극의 이미지가 되는 것이 후의 꿈이죠." 사이먼 후지와라는 "진정성을 가진다는 것 보다는 이미지의 세계에서 모든 것이 다 되려고 하는 것'이라면서 "그것이 어쩌면 오늘날 SNS에서 횡행하는 이미지 시대에 부합하는게 아닐까 싶다"고 했다.
그래서 그의 캐릭터 후더 베어에게 이미지의 세계는 진짜 세계다. "예를 들어 마티스 콜라주안에 후가 다이빙해서 들어가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보세요. 마티스는 3차원 공간을 2차원으로 평평하게 바꿨지만 후더 베어는 그 안에서 공간을 보고 3차원의 공간으로 뛰어들게 되는 것이죠."
'후더 베어' 연작 팬데믹 사태속 탄생 "부조리한 세상의 반응"
"제게 콜라주 작업은 중요해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정신 나간 시대가 콜라주와 같은 시대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는 "대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모든 게 동시에 일어나는 코로나 시기에 콜라주와 같은 경험을 했다"면서 "한순간에는 정상이었다가 다음 순간에는 집안에 갇히고 마스크를 써야 되는 그런 상황을 겪으며 콜라주 작업에서 드로잉 작업이 이어졌다"고 했다.
만화, 카툰에 형식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오늘날의 세계는 무척이나 복잡하다. 기후 위기, 정체성 정치가 다툼을 일으키고 더 이상 경제를 믿지 않고 모든 것이 무너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와 동시에 수많은 정치인이나 지도자들이 마치 만화 캐릭터처럼 매우 단순한 이미지처럼, 아주 복잡한 문제에 대해 답을 제공하려고 하고 있다. 왜 복잡한 문제에 대해 단순해 빠진 답을 제공하려고 할까요?"
그는 자문자답했다. "어쩌면 저희가 복잡한 문제를 더 이상 처리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기 때문일 것"이라며 그래서 "만화같은 단순한 캐릭터를 도입하게 됐다"고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무런 문제 없이 후가 존재 하는 모습을 보면서 오히려 무섭다고 느낀다"고도 했다.
"후더 베어는 만화캐릭터 아닌 세계를 사유하는 그릇"
"캐릭터 존재들은 실제로 존재하는 게 아닌데 사람들 사이에서 우상화되죠. 곰돌이 푸나 미키마우스 등을 보세요. 인간이 못하는 것도 심지어 할 수 있잖아요. 감정도 투사하면서요."
사이먼 후지와라는 "그래서 후더베어는 만화캐릭터 하나라기보다는 철학"이라고 강조했다. "세계를 보고 사유하는 틀, 그릇"이라며 "순수하고 자유롭기 때문에 갈 수 없는 곳도 어디든 갈 수 있다"면서 자부심을 보였다.
"후 캐릭터는 어두운 면을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죠. 그런 (악한)부분들을 좀 더 소화할 수 있는 가볍고 단순하게 아름답게 보여줄 수 있는 여러가지 기능을 가진 존재이지만 이미지에 집착하는 시대에 후더베어를 마스코트 삼고 자신만의 관계를 만들어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이번 전시에는 피카소와 마티스에서 바스키아와 데미안 허스트, 트레이시 예민 등에 이르는 서양 미술사의 아이콘을 경유하는 사이먼 후지와라표 페스티쉬 회화와 콜라주가 20세기 미술사를 훑으며 질문한다.
"미술사에서 1800년대 후반을 흥미롭게 본 건 오늘날의 광고와 브랜딩,모델링으로 이어진 미의 기준이 발생된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는 "마티스, 피카소 등이 그 당시의 이미지의 전형을 깨고 20세기의 이미지의 전형을 만들려고 했는데 그러한 노력들이 오늘날 후더 베어가 살아가는 이미지 세계의 디딤돌이 된 것"이라고 했다.
후의 얼굴을 한 상어가 후를 먹고 있는 콜라주를 통해 과도한 소비주의를 꼬집고, 생전 만화 캐릭터 같은 취급을 받은 바스키아의 작업을 모방해 인종과 젠더와 예술의 정체성을 짚는다.
"후라는 캐릭터가 바스키야와 같은 전략을 취하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트레이시 예민처럼 개인의 사적인 전략은? 진정성이라는 것이 끝난 이후 예술이 브랜딩 된 이후 어떤 것이 가능할까?"를 반영한 작업이다.
재미있기도 하고 정신없어 보이는 작품은 사실 생각해보면 어떤 면에서는 이미 모든 일이 일어나고 있는, 또는 겪고 있는 일이기도 하다. 판타지가 아니라 다큐멘터리일 수 있다.
만화로 제시되는 전시 작품들은 이미지 시대 안에서 ‘존재’하길 바라는 끊임없는 욕망과 화가로서의 결핍과 철학적 투쟁이 담겼다.
"이 작업들은 작가로서 제가 가진 불안을 반영한 것이기도 합니다. 미술계 안에서 작가로서 나의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지, 혹은 미술이라는 자체가 미래에 어떻게 될 것인지, 과연 미래에도 미술이 진지한 것으로 존재할 것인지 아니면 자본과 오락과 유명인이 패션이 다 합쳐진 어떤 것이 될 것인지. 오늘날 미술관들이 점점점 테마 파크화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제 작품은 그것의 극단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그는 "모든 게 하나로 이뤄진 '후더 베어'는 이 세계의 신이자 독재자로 인간 관람객조차 필요 없는 세계가 될 수도 있다"면서 진중하게 말했다. "이 모든 것들이 재미있고 장난스러워 보이지만 사실은 무척 진지한 고민을 심각하게 담고 있는 작업들이라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전시는 5월21일까지.
☞공감언론 뉴시스 hyun@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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