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곧 농사철…잿더미 위에서 라면 먹더라도 못 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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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도 못사는 사람들 집만 귀신같이 알고 들이닥치는 것 같네."
충남 홍성군 서부면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이 53시간 만에 잡혔지만, 주민들은 하루아침에 잿더미로 변해버린 삶의 터전을 바라보며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다.
한 양곡리 주민은 "자식들이 쓰라고 준 돈이며 나 아플 때 병원비 대려고 모아뒀던 게 200만원 정도 되는데, 도망 나오듯 집을 빠져나왔다가 가보니 아무것도 남은 게 없다"며 가슴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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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연합뉴스) 이주형 기자 = "불도 못사는 사람들 집만 귀신같이 알고 들이닥치는 것 같네."
충남 홍성군 서부면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이 53시간 만에 잡혔지만, 주민들은 하루아침에 잿더미로 변해버린 삶의 터전을 바라보며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다.
5일 찾은 서부면 남당리 내동마을 전용태(81) 씨의 목조 단층 주택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폭삭 주저앉아 버렸다.
녹내장으로 시력이 온전치 못한 전씨는 몸이 아픈 아내를 이끌고 대피하느라 옷가지 하나 챙기지 못했다.
슬레이트 지붕만 남은 현관문 앞에 앉아 하염없이 내리는 비를 쳐다보던 전씨는 "80 평생 홍성에 살았지만, 그런 산불은 처음 봤다"며 허망해했다.
그는 "50만원 남짓한 기초노령연금 말고는 고추를 키워 장에 내다 파는 것밖에 달리 수입이 없고 오갈 데도 없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눈물을 훔쳤다.
그나마 남은 고추 모종 5천 포기라도 비로부터 지켜내겠다는 듯 전씨는 연신 한숨을 내쉬며 고추밭에 이불을 덮었다.
갈산중학교에 마련된 대피소에도 여전히 주민들(11가구 17명)이 남아 복구작업을 기다리고 있다.
친척이나 지인들 집으로 떠난 이들도 있지만, 달리 기댈 곳도 없는 데다 농사 걱정에 멀리 갈 수도 없는 상황이다.
집이 전소됐다는 어사리 주민 김희경(70) 씨는 "쌀농사로 먹고사는데 창고에 있던 쌀이 전부 타 버렸다"며 "집이 자꾸 눈에 밟혀서 오늘 갔다 왔는데, 밤새 내린 비로 고추 모종에마저 물이 다 차 있었다"며 울먹였다.
그는 "이제 곧 농사철이라 우리 부부는 이곳을 떠날 수도 없다. 잿더미 위 비닐하우스에 이불 펴놓고 라면을 끓여 먹으며 버티는 한이 있더라도 집에 가고야 말 것"이라고 말했다.
한 양곡리 주민은 "자식들이 쓰라고 준 돈이며 나 아플 때 병원비 대려고 모아뒀던 게 200만원 정도 되는데, 도망 나오듯 집을 빠져나왔다가 가보니 아무것도 남은 게 없다"며 가슴을 쳤다.
이번 화재로 주택 59채가 전소되고 46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창고 24동과 축사 20동, 비닐하우스 48동 등 시설 172곳이 불에 탔고 돼지 850마리, 산란계 8만마리 등 가축 8만1천153마리가 폐사했다.
홍성군 관계자는 "조사를 진행할수록 피해 현황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며 "조사는 최소 1주일가량 더 걸릴 전망"이라고 말했다.
군은 주민들을 위한 임시숙소를 정할 때까지 갈산중 대피소를 지속해서 운영하는 한편, 산불 영향 구역 1천454㏊ 내에 있는 주민들을 전수조사해 자세한 피해 상황을 파악할 예정이다.
화재로 집을 잃은 이재민을 위해 주거용 주택 지원, 생활 안정 주거비 지원, 주택융자 지원 등 다각적인 대책도 마련하고 있다.
coo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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