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아침에] JOLED 몰락과 초격차 기술
독자 기술 없어 10년도 못 버티고 무너져
中, 고부가가치 분야도 턱 밑까지 추격
초격차 없인 한국경제 설자리 좁아져
한때 ‘일본 디스플레이의 희망’으로 불렸던 JOLED가 지난달 27일 도쿄지방법원에 민사재생 절차를 신청했다. 이는 우리나라 법정 관리와 비슷한 것으로 사실상 파산 조치다. JOLED는 2015년 1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 시장을 선점한 한국 기업을 추격하기 위해 일본 정부와 업체들이 힘을 합쳐 만든 회사다. 소니·파나소닉 등 일본 간판 기업들이 대거 참여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JOLED의 전략은 저비용 제조 방식으로 제품을 양산해 한국에 반격을 가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기술 완성도가 떨어진 탓에 불량 제품이 속출하면서 악성 재고가 급증했다. 결국 급속히 불어난 손실을 감당할 수 없게 된 JOLED는 10년을 채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게 됐다.
일본 디스플레이 기업들은 1990년대만 해도 세계 패널 시장을 주도했다. 하지만 기술 변화를 따라잡지 못해 한국 회사들에 추월 당했다. 일본의 중소형 패널 기업들이 공동투자한 재팬디스플레이 역시 8분기 연속 적자를 내는 등 경영난을 겪고 있다. 일본 현지에서는 디스플레이 산업이 한국에 역전 당하며 경쟁력을 상실한 게 반도체 산업의 궤적과 닮았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일본 반도체 산업은 1980년대까지 세계시장을 호령했지만 한국과 대만 등에 밀려 변방으로 밀려났다.
우리 산업이 처한 현실을 떠올리면 JOLED의 침몰이 남의 일 같지 않다. 삼성디스플레이 등 국내 패널 업체들은 과감한 투자와 기술 개발로 2004년 일본을 밀어내고 왕좌에 올랐다. 그러나 정부 지원을 등에 업은 중국 기업에 2021년 디스플레이 생산량 1위 자리를 내줬다. 액정표시장치(LCD)는 이미 중국에 추월 당했고 차세대 OLED도 중국의 매서운 추격을 받고 있다. 국내 조선사가 주도했던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시장에서도 중국이 급부상하고 있다. 고부가가치 선박인 LNG선은 그동안 우리 업체들이 독점해왔으나 지난해부터 중국이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2021년 7%였던 중국의 LNG선 세계 시장점유율은 지난해 30%로 급등했다.
더 우려되는 것은 중국에 중간재를 수출하고 현지 공장에서 완성품을 만들어 세계에 팔던 한국의 성장 공식이 급속히 효력을 잃고 있다는 점이다. 1993년부터 30년 넘게 흑자를 냈던 대중 무역이 올해 적자로 돌아섰다. 1~3월 대중 무역적자는 78억 8000만 달러에 달했다. 중국산 수입은 큰 변화가 없었지만 우리 수출이 급감했기 때문이다. 중국은 중간재 내재화 정책에 따라 중간재 직접 조달에 속도를 내고 있다. 중국의 정밀화학·무선통신부품 등 중간재 분야의 수출은 2년 연속(2021~2022년) 두 자릿수 증가세를 보였다. 또 첨단소재, 컴퓨터·통신 등 하이테크 9개 분야 가운데 7개에서 흑자가 확대되거나 적자가 축소됐다. 중국이 저가·범용 제품이 아닌 고부가가치 분야에서도 우리의 턱밑까지 올라온 것이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JOLED의 파산 배경을 분석하면서 “독자적인 기술을 확립하지 못했다”는 점을 첫 손가락에 꼽았다. 남보다 앞선 초격차 기술을 개발하지 못한 게 실패의 주요인이라는 것이다. 일본 3대 전자부품 회사인 TDK의 부사장을 지낸 가쓰라 미키는 최근 발간한 저서 ‘일본의 가전 산업은 왜 몰락했는가’에서 “일본 기업들은 디지털 기술의 발전을 따라가지 못해 길을 잃었고 결국 몰락했다”고 진단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첫 번째도, 두 번째도, 세 번째도 기술”이라며 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기술 리더십을 확보하지 못하면 글로벌 기술 패권 전쟁에서 순식간에 낙오할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이 회장이 4일 삼성디스플레이의 4조 1000억 원 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하면서 “끊임없이 혁신하고 선제적으로 투자해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실력을 키우자”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기술 경쟁력 격차를 유지하지 못하면 한국 경제의 설 자리는 급격히 좁아질 수밖에 없다. 기업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 정부와 국회도 기술 초격차를 위한 전방위 지원에 팔을 걷어야 할 때다.
임석훈 논설위원 shim@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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