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g Picture] IFRS 전면 도입 14년 … 韓 회계, 국민 신뢰 얻었나
◆ Big Picture ◆
12월 말 결산법인 주주총회가 끝나면서 법인세법에서 정한 재무상태표 신문 공고가 줄을 잇는다. 일부 연결 대상 회사는 두 개의 표를 공고하는데, 그 명칭이 제각기 다르다. 삼성전자는 '연결재무상태표와 별도재무상태표'이고, 제일모직은 '연결재무상태표와 재무상태표'다. 삼성물산은 괄호를 첨가해 '연결재무상태표(연결대차대조표)와 재무상태표(대차대조표)'로 표시한다. 연결 대상이 없는 계열사는 '재무상태표' 하나만 공고한다. 삼성 계열사끼리도 서로 다른 방식으로 명칭을 표시해 매우 혼란스럽다.
기업 회계는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주식회사에서 주주와 경영진의 재무적 책임을 가리는 시스템이다. 회계 기준은 잣대나 저울 같은 측정 수단이지만 물리적 척도가 아닌 전문가의 합의로 정하는 룰(rule)이다.
주식회사는 네덜란드와 영국 등 유럽 국가에서 먼저 시작됐지만, 주주의 폭넓은 참여로 거대한 자본을 제대로 형성한 나라는 미국이다. 신대륙 개척에 발맞춰 철도, 전기, 자동차, 정유 등의 분야에서 거대한 주식회사가 출현했고 독립적 회계감사를 위한 공인회계사 제도도 출범했다.
회계 기준은 미국 공인회계사회가 1948년부터 제정하기 시작했다. 1973년에는 증권감독기구와 미국 회계학회 주도로 상설기구인 재무회계기준심의회(FASB)를 구성했고 상근직 위원 7명을 중심으로 전문인력을 충분히 확보해 기준 제정에 나섰다. 같은 해 영국 런던에서는 유럽 회계 전문가들이 모여 비상설기구인 국제회계기준위원회(IASB)를 결성했다. FASB는 기업 현장에서 제기되는 문제에 대응하는 규칙 중심의 기준서를 발간했고 세계 각국은 이를 참조해 국가별 회계 기준을 제정했다. FASB보다 재원과 인력이 극히 열세였던 IASB는 원칙적 방향을 제시하는 수준의 보고서를 발행했다.
실무계 문제에 일일이 대응하는 규칙 중심의 미국 기준은 2001년 엔론 사태에서 의외의 복병을 만났다. 연결재무제표에 포함될 범위를 정하면서 주식회사가 아닌 특수한 형태(SPC 등)는 연결 대상에서 제외한 규정이 문제였다.
엔론의 최고경영자(CEO) 제프리 스킬링은 SPC를 다수 설립해 유전 개발 등 고위험 투자에 활용했다. 연결 범위에서 제외되면 원가법을 적용하는 것이 원칙이며 손실이 예상되면 적절히 감액하는데 이를 제대로 확인하는 절차가 부족했다. 이익을 부풀릴 요량이면 값이 오른 SPC를 골라 매각하고 손상은 숨겼다. 성공한 SPC는 매각해 이익을 늘리고 실패한 SPC는 원가 그대로 계상하는 조작을 계속하다가 내부 고발로 거대한 부정이 드러났다. 부실 감사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감지한 감사법인 아서앤더슨은 감사 파일을 불법적으로 파기해 증거를 없앴고 결국은 회사와 감사법인의 동반 파산과 형사처벌로 끝났다.
기준을 일일이 설정한 것이 오히려 화를 키운 부작용으로 노출되자 원칙적 방향 설정을 강조하는 IASB의 국제회계기준(IFRS)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회계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너무 낮아 걱정이던 한국도 발 빠르게 나섰다. 노무현 정부 금융위원회는 2006년에 'IFRS를 2010년부터 전면 도입하는 로드맵'을 발표했다. 연결재무제표가 주재무제표인 IFRS에서는 연결회계의 역할이 특히 중요하다. 미국 기준을 중심으로 연결을 다룬 국내 교과서는 다시 써야 했다.
필자와 신현걸 건국대 교수 등이 공저로 2009년에 'IFRS 고급회계' 초판을 발행했는데 IFRS 연결기준이 미국 기준보다 매우 추상적이어서 집필에 애로가 많았다. "저자들의 견해로는"이라는 문구가 곳곳에 첨가됐다. 각 나라에서 IFRS 연결회계 책을 수배했지만 호주에서 발간된 교과서 한 권이 전부였다.
미국과 유럽의 지배회사는 종속회사 지분을 100% 보유하는 것이 보통이다. 50%씩 출자하는 공동 사업과 낮은 지분율을 보유한 경우는 종속회사로 보지 않는다. 한국은 순환출자를 정리하기 위해 지주회사 설립을 유도하면서 30% 이상 지분이면 공정거래법에서 지주회사로 인정했다. 노무현 정부 끝 무렵에는 상장회사의 경우 20% 이상 지분이면 지주회사로 인정하도록 법률을 개정했다.
연결 단계에서 지배력 판단이 문제 되는 사례가 속출했고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를 IFRS 연결에서는 지배회사로 보지 않는 경우도 생겼다. (주)LG는 LG전자와 LG화학, (주)SK는 SK이노베이션 지분을 33% 정도 보유한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다. LG는 두 회사를 모두 연결 대상에서 계속 제외한 데 비해 SK는 계속 포함한다. LG는 50% 미만 지분은 지배력이 없다는 판단이고 SK는 30%대 지분율도 지배력이 있다는 입장이다.
필자에게 굳이 이유를 묻는다면 작고한 구본무 LG 회장의 겸손한 성품을 거론할 수밖에 없다. LG와 SK의 외부감사를 교대로 맡는 대형 회계법인은 때때로 달라지는 연결 대상 지배력 판단 논리를 둘러대느라 고생이다.
연결 절차를 밟기 전의 지배회사 고유 재무제표를 별도재무제표라고 한다. 별도재무제표에서 '별도'는 빼고 그냥 재무제표라고 부르는 회사도 많다. 연결 대상이 없어 재무제표가 하나뿐인 경우와 혼동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상법에는 '재무상태표'라는 용어가 없고 '대차대조표'로 표기한다. 삼성물산이 괄호를 이용해 두 명칭을 함께 쓰는 것은 상법을 그냥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IFRS 전면 도입 이후 14년이나 흘렀는데 동일한 내용을 담은 표의 명칭조차 통일하지 못하는 것은 지나치게 우유부단한 행정이다.
대기업에 부정적인 시민단체가 애용하던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연구원(IMD) 회계 투명성 평가도 회계 제도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다. 세계 경제에서 핵심적 역할을 하는 63개 국가를 대상으로 여러 항목을 조사하는데 이 중에 회계 투명성(Auditing and accounting practices)이 한국에서는 최대 관심사다. 설문 방식의 조사인데 응답자는 국내 또는 외국 기업에 종사하는 국민 또는 국외 거주자로 해당 국가에서 생활하며 인지한 경험으로 현재와 미래를 평가하도록 요구한다.
회계 관련 사항을 회계 전문성과 상관없이 일반 응답자에게 다른 여러 항목과 함께 묻는 방식이다. 상식 수준의 언론 보도가 전문 영역인 회계 투명성 평가에 영향을 미칠 조사 방식에 대해 부정적인 전문가도 많다.
IFRS 전면 도입으로 회계 투명성이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는 2006년 노무현 정부의 금융위원회 정책 브리핑에 담겨 있다.
IFRS 홈페이지에 '채택 주체의 경험'으로 지금도 게시 중인 2016년 한국의 헌사는 노골적이다. 유럽연합(EU), 호주, 한국의 경험이라며 3개 주체의 헌사가 게시됐는데 유럽연합은 자본시장의 공통 언어 창출, 호주는 상장회사에 긍정적 효과로 간단하게 요약했지만 한국은 자기 비하 문구까지 동원돼 웃기는 수준이다. "IFRS 채택은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줄이고 해외 주식 상장과 채권 발행 및 인수·합병(M&A)을 통한 자본 유치에 있어서 한국 기업에 대한 투자 위험을 줄이는 데 긍정적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헌사 게시 다음 해인 2017년에 한국이 받은 IMD 투명성 평가는 63개국 중에 63등으로 꼴찌였다.
사실 횡령과 같은 자금 사고가 더 문제다. 주범 이외의 가담자에 대한 처벌이 너무 약하고 효과적인 내부 고발제가 활용되지 못한 것이 화근이다. 수치 간의 논리적 연결을 따지면 부정과 오류의 단초를 찾을 수 있는 회계의 본질적 구조를 활용해 감시에 나서야 한다.
부서 인원 모두의 업무를 일시에 정지하고 불시에 조사하는 방식 등 조사 기법을 고도화해야 한다. 공인회계사회가 전문적 지식과 경험이 검증된 회원을 골라 특별팀을 운영하고 적발된 사례는 상세히 기술해 공유해야 한다. 회계 개혁 효과에 대한 홍보가 활발했던 2021년에 37위까지 올랐던 IMD 평가가 2022년에는 53위로 16등이나 추락했는데 이는 우리은행과 오스템임플란트의 거액 횡령 사건 때문일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 판단을 중시하는 원칙 중심 기준으로 바꾸고도 규칙 중심 감리 방식을 버리지 못한 것도 문제다.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에 대한 오랜 감리와 형사재판도 불신 요인이다. 파생상품과 연결회계가 결합된 고난도 판단 영역의 회계 처리에 두 달 정도의 결산과 현장감사를 수행한 회사와 감사법인을 상대로 8년간이나 감리와 형사재판을 계속하는 것은 지나치다.
최근 법정에서 제시된 전문가 의견을 보면 그 당시에는 아예 없었던 논리를 새로 개발한 것도 눈에 띈다. 미래에 등장할 이론까지 예측한 회계 처리는 현실 세계에서는 불가능하다.
현재 IFRS를 전면 채택한 주체(jurisdiction)는 145개다. 국가 단위가 아니라 회계 관할권으로 세분해 유럽 각국과는 별개로 유럽연합도 채택 주체로 카운트한다. 스위스를 제외하고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포함한 대부분 유럽 주변 국가와 아프리카 국가 다수가 전면 채택했다. 미국, 일본, 중국, 인도 등은 전면 채택을 보류했고, 캐나다는 전면 채택이지만 미국 기준도 동시에 채택하는 양다리 포지션이다.
이런 정황을 보면 한국이 가장 의미 있는 전면 채택 주체임이 분명한데 IASB 위원에서는 빠지는 수모를 겪고 있다. 2012년부터 8년간 유지하던 위원직을 2019년에 놓친 것이다. IASB 위원은 지역별로 배분해 유럽, 아메리카 대륙, 아시아(오세아니아 포함) 각각 4명과 아프리카 1명 및 위원장 1명을 합쳐 14명으로 구성한다. 현재 아시아·오세아니아 쿼터는 이스라엘, 호주, 중국, 일본이 차지하고 있다. 미채택 주체인 중국과 일본은 포함됐고, 한국은 빠졌다. 보험회계와 같이 업계의 생존이 걸린 현안이 많은 상황에서 한국인 위원 부재에 따른 어려움은 심각하다.
기업의 재무 상태와 경영 성과를 적정하게 표시할 기준 설정은 회계의 핵심 과제다. 그 나라의 법제와 환경과 어울리지 않는 기준을 무리하게 강요하는 것은 부당하다. 미국은 1997년부터 IASB와 기준 조화(harmonization)를 논의하고 있지만 통합은 불가능한 것으로 인식되는 분위기며 일본도 미국과 같은 입장이다. 기업 규모에 비해 IFRS 회계 부담이 과중한 중견기업과 낮은 지분율로 얽혀 결과를 해석하기도 힘든 소규모 그룹의 연결재무제표 작성 의무를 조정하는 개선책이 시급하다.
국제적 원칙이 추구하는 방향은 지키면서 자국의 환경에 맞는 회계 기준 설정이 합리적이다. 유럽계 국가 중심의 국제회계기준에 대해 미국 등이 전면 채택을 보류한 이유를 우리도 참조해야 한다.
[이만우 고려대 경영대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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