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 흐르며 맛과 색깔 변화무쌍 시간을 음미하는게 와인의 매력[와인 이야기]
피에르마리 파티외 마스터 소믈리에 인터뷰
美 캘리포니아 와인 '프리마크 아비'
'파리의 심판'에 레드·화이트 참여
단일 포도밭에서 나온 '보셰' 와인
시간을 맛볼수 있는 숙성 잠재력 커
2002년 보셰, 보르도 1등급과 견줄만
2018년 빈티지는 파워풀하며 '클래식'
와인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는 '시간'을 맛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술을 마시며 인생과 삶을 얘기할 때 '와인'만 한 것이 없다고 느끼는 건 와인이 '숙성'되면서 변하는 '시간의 맛'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맛의 차이를 제대로 알기 위해선 동일한 생산자가 만든 동일한 와인을 포도 수확연도(빈티지)별로 달리해서 시음하면 좋은데, 이를 '버티컬 테이스팅'이라고 합니다.
놀라운 건 세계 최고의 소믈리에들조차도 버티컬 테이스팅을 하면 같은 와인이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거죠. 실제로 그런 일이 올해 일어났습니다. 지난 2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ASI 베스트 소믈리에 오브 월드 2023' 결선에선 2003년 페트루스와 2012년 페트루스가 나왔는데 아무도 같은 와인임을 맞히지 못했습니다. 그만큼 와인은 세월과 함께 자신의 색깔과 맛을 변화무쌍하게 바꿉니다.
지난번 '와인이야기'에서 마스터 오브 와인(Master of Wine)인 지니 조 리와의 인터뷰를 실었습니다. 이번엔 마스터 소믈리에를 만났습니다. '마스터 오브 와인'과 '마스터 소믈리에'는 와인업계를 대표하는 최고 권위의 자격증입니다.
잭슨 패밀리 와인의 피에르마리 파티외 마스터 소믈리에가 얼마 전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잭슨 패밀리는 전 세계 45개의 와이너리를 보유하고 있으며 가족이 경영하는 미국 최대 와인 생산자입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와인이라 불리는 '켄들 잭슨' 와인이 유명하죠. 와인 애호가로 유명한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신세계 계열사에서 수입하지는 않지만 이마트24에서 판매하는 와인 중 가성비 와인으로 '카멜로드 피노누아'를 꼽았는데 이 와인도 잭슨 패밀리 와인입니다. 잭슨 패밀리는 각각의 와이너리를 독립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게 특징이라고 합니다.
파티외 마스터 소믈리에는 "캘리포니아에 여러 가지 좋은 와인들이 많은데 아무도 얘기하지 않으면 소비자들이 좋은 와인의 존재를 알 수 없기 때문에 한국을 방문했다"고 말했습니다.
파티외 마스터 소믈리에가 이번에 한국서 소개한 와인은 잭슨 패밀리가 2006년 인수한 '프리마크 아비(Freemark Abbe)'입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와인인 '프리마크 아비'는 두 가지 수식어가 따라다닙니다.
하나는 내파밸리 최초의 와인, 또 다른 하나는 파리의 심판에 참여한 와인. 프리마크 아비는 내파밸리의 역사와 함께합니다. 1886년 조지핀 티치슨이 설립한 프리마크 아비는 1976년 파리의 심판에 레드와 화이트를 모두 출품시키며 미국 와인의 대표주자로 자리매김합니다. 당시 와인 저장고의 모습을 라벨에 그려 넣었는데 지금은 테이스팅룸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프랑스 와인업계 최악의 실수를 꼽으라면 저는 '파리의 심판'이라고 생각합니다. 1976년 프랑스 파리에서 벌어진 '블라인드 테이스팅'에서 미국 와인들이 프랑스 와인의 자존심인 무통 로칠드(레드), 몽라셰(화이트)보다 더 높은 점수를 받은 사건인데요. 영화 '와인미라클'의 소재가 된 파리의 심판으로 미국, 특히 캘리포니아 와인은 상업성을 인정받게 됩니다. 반면에 파리의 심판에 참여했던 프랑스 평가자들은 후에 프랑스 와인업계로부터 엄청난 비난의 대상이 됐습니다.
하지만 프리마크 아비의 맛을 표현할 때 '파리의 심판'과 같은 과거 얘기만 한다는 건 클리셰(Cliche·진부한 표현)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시간' 얘기로 돌아갈게요. 빨리 숙성된 '맛'을 음미하기 위해 숙성시간을 인위적으로 단축시키기 위한 여러 가지 노력들이 있습니다. 이탈리아 와인의 왕이라 불리는 바롤로 와인 쪽에선 회전식 발효조(Rotary Fermenter)를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같은 논리로 일부 캘리포니아 와이너리에선 지금도 디켄팅 때 쓰는 방법을 발효조에서 사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오크통 숙성도 오크통과 와인이 오랜 기간 숨을 쉬고 대화하며 오크향이 배어나게 해야 하는데 이 과정을 단축하기 위해 와인에 오크칩을 넣기도 했습니다.
파티외 마스터 소믈리에는 "오크칩을 넣어 강제로 맛을 내면 맛은 비슷할 수 있지만 오랜 시간을 걸쳐 완성되는 구조감은 줄 수 없다"고 단적으로 말했습니다.
와인 애호가들의 가장 큰 관심사 중 하나가 '숙성 잠재력'입니다. 보통 숙성 잠재력이 큰 와인이 값도 비싼 편입니다. 프리마크 아비 와인 중에서 장기 숙성 잠재력이 가장 돋보이는 와인은 '보셰(BOSCHE)'입니다.
'보셰'라는 단일 포도밭에서 나온 포도로 만든 2002년, 2018년 보셰를 비교했는데 저는 2018년 보셰가 묵직하면서도 구조감도 훌륭했고, 산미가 지나침 없이 균형이 잘 잡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파티외 마스터 소믈리에는 "2018년 빈티지는 파워풀하면서도 클래식하다. 2002년은 완벽에 가까운 빈티지다. 내파밸리 와인을 전형적으로 잘 보여주는 와인"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는 "소비자들이 와인셀러에 와인을 두었을 때 시간이 지나면서 더 좋아질지를 궁금해한다"면서 "2002년 보셰의 맛을 보면 2018년 빈티지가 앞으로 20년 뒤에 어떻게 맛이 바뀌게 될지 알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프리마크 아비의 레드와인은 블렌딩만 보면 카베르네 소비뇽을 주로 하고 메를로를 섞는 보르도 좌안 와인들과 유사합니다. 보르도의 어느 등급 수준 와인들과 경쟁하고 있는지를 마스터 소믈리에에게 물어봤습니다. 파티외 마스터 소믈리에는 "여러 밭의 포도를 블렌딩한 프리마크 아비의 레드와인은 보르도 포이약 지역의 그랑크뤼 4~5등급과 비슷하고 보셰와 시카모어 등 단일 포도밭에서 만든 싱글 빈야드 제품은 1~2등급과 경쟁할 수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프리마크 아비가 캘리포니아의 다른 와이너리와 다른 점은 올드 빈티지 와인을 직접 보유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와이너리는 아직도 1968년 빈티지 와인을 보유하고 있다고 합니다. 와이너리를 방문하면 1980년, 1990년, 2000년, 2010년처럼 10년 단위로 숙성된 와인을 맛볼 수 있다고 합니다. 버티컬 테이스팅도 가능하다고 하네요. 언젠가 캘리포니아로 와이너리 투어를 갈 기회가 있다면 프리마크 아비 와이너리를 방문해 '시간'을 맛보시길 추천합니다.
[김기정 컨슈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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