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브수다] OTT는 자극적? '그알'PD는 오히려 '피 흔적'을 지웠다

강선애 2023. 4. 5.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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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TV 방송과 OTT의 경계가 점차 사라져 가고 있는 가운데, 지상파 방송사 PD들이 OTT에 진출해 선보인 시사프로그램들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MBC 조성현 PD가 넷플릭스와 손잡고 만든 '나는 신이다:신이 배신한 사람들'이 사이비 종교의 추악한 민낯을 적나라하게 보여줘 사회적 공분을 일으킨 것에 이어, 또 하나의 OTT 다큐멘터리가 시청자의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웨이브(Wavve)에서 지난달 3일부터 순차적으로 공개 중인 수사 다큐멘터리 '국가수사본부'는 SBS에서 '그것이 알고싶다'(이하 '그알'), '궁금한 이야기Y' 등을 만든 '스타교양 PD' 중 하나인 배정훈 PD가 만든 '작품'이다. '국가수사본부'를 '작품'이라 표현한 이유는, 그만큼 오랜 시간 공들여 취재해 만듦새가 좋기 때문이다. OTT로 선보이는 콘텐츠인 만큼 방송 편성 시간에 쫓기지 않고, 충분한 취재를 바탕으로 평소 품고 있던 고민, 보여주고 싶었던 이야기를 풍성하게 담아 '국가수사본부'를 제작했다.

지난 15년간 두려움 없이 사건에 달려드는 집요한 면모로 '오늘만 사는 PD'라는 별명까지 붙은 배정훈 PD. 교양 PD로서 다룰 수 있는 수많은 소재들 중에서 왜 '국가수사본부'였고, 왜 형사들의 이야기여야만 했는지,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 '수사 잘하는' 형사들의 이야기

'국가수사본부'는 형사들의 일상을 사실 그대로 보여준다. 사건의 발생 순간부터 범인 추적, 검거, 이후 취조 현장까지, 모든 과정을 생생하게 카메라에 담았다. 그동안 '그알'을 통해 사건 해결의 기회를 놓친 경찰을 날카롭게 비판해 왔던 배정훈 PD가, '국가수사본부'에서는 경찰의 노고와 공적을 들여다본다. 배 PD는 왜 '수사 잘하는 경찰'에 관심을 가졌을까.

"15년 정도 PD 생활을 하며 경찰을 많이 만났는데, 대개의 경우 제가 찾아가면 반가워하지 않아요. '그알' 같은 프로그램은 보통 수사가 잘못된 경우에 찾아가니, 경찰이 절 반가워하지 않는 건 당연했죠. 그런데 그분들이 수사를 제대로 한다고 해도, '잘했다'고 칭찬하지 않잖아요. 잘해도 본전인, 그런 업무 특성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경찰분들이 저와 개인적인 신뢰관계가 생기고 난 후, 그런 말들을 해주시더라고요. '왜 잘한 건 칭찬해주지 않고, 못한 걸 때리기만 하냐'고. 생각해 보니 그렇더라고요. 수사를 잘하는, 절대다수의 경찰관들의 이야기는 왜 조명하지 않을까, 그런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하면 어떨까, 경찰관의 노고, 피해자의 아픔을 생각하는 인간적인 모습들을 잘 담아보자... 그게 '국가수사본부' 기획의 시작이었어요."

'국가수사본부'는 서울, 부산, 광주, 수원, 강릉 등 전국의 경찰서를 찾아간다. 경찰들은 각 지역 사투리 때문에 말투가 다르고, 또 소속 팀마다 분위기도 다르다. '국가수사본부'는 그 모습 그대로 보는 재미가 있다. 배 PD는 다양한 지역의 경찰들을 조명해보고 싶은 마음에 직접 전국을 누볐다.

"'국가수사본부'라는 전체의 스토리 안에 다양한 지역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섭외하려고 열심히 전국 팔도를 다녔죠. 각 지역의 경찰을 만나보면, 그분들의 성향, 언어, 분위기가 정말 다르더라고요. 그렇게 다양한 모습들이 담기면, 콘텐츠 전체로 봤을 때 '보는 맛'이 될 수 있겠다 싶었어요."

그렇게 발품을 팔아 만난 전국의 경찰관들. '국가수사본부'는 이들이 범인을 쫓으며 밤낮없이 고생하는 리얼한 순간들을 치열하게 그려낸다. 동시에 인간적인 모습들도 조명한다. 범인 검거를 앞두고 수사 파트너에게 가벼운 농담을 던지며 분위기를 환기시키려는 모습, 어린 피해자와 유족의 아픔에 안타까워하며 눈시울을 붉히는 모습, 결국 범인을 잡은 후 느끼는 짜릿한 기분까지, '국가수사본부'는 수사 과정 속 경찰들의 이모저모를 낱낱이 보여준다.

"저희 콘텐츠는 더하거나 뺀 게 없고, 사실에 가깝게 나와요. '강력계 형사' 하면 우리가 생각하는 이미지가 있잖아요? 그런데 그분들도 직업이 경찰일 뿐 평범한 사람들이에요. 묵묵한 사람도 있고, 유머러스한 분도 있고, 러블리한 분도 있죠. 그런 모습들을 가급적 사실 그대로 전달해 보자는 게 취지였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런 인간적인 모습들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어요."

'국가수사본부'가 공개된 후, 배 PD는 콘텐츠에 출연한 경찰들의 연락을 수시로 받고 있다. 그동안 제대로 조명받은 적 없는 경찰들의 노고를 있는 그대로 그려낸 '국가수사본부'로 인해 주변의 시선이 달라졌다며, 고맙다는 경찰들의 목소리가 전해지고 있다.

"콘텐츠가 금요일 낮에 공개되는데 금요일 밤마다 경찰분들의 전화를 매주 받고 있어요. 본인들이 하는 일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소임대로 하는 것이라 한 번도 '우리 아빠 멋있다', '내 남편 멋있다' 이런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는데, '국가수사본부'를 보고 주변에서 그런 이야기를 해주곤 한대요. 좋은 콘텐츠로 잘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그런 피드백들이 오고 있어요. 그분들 중에는 '다음에는 이렇게 하면 어떨까'라며, 재출연 의사를 보이는 분도 있고요.(웃음)"

# 사건 발생,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국가수사본부'의 가장 큰 특징은, 사건 발생 첫 출동 현장부터 형사들과 동행한다는 것이다. 뒤늦게 사건 현장을 둘러보고, 필요에 따라 사건 현장을 재연하거나 세트로 비슷하게 꾸미는 보통의 다큐멘터리와는 확연히 다른 접근법이다. 실제 사건 발생부터 검거까지, 모든 과정을 놓치지 않고 보여주는 게 새롭다. 이게 가능했던 배경에는 언제 사건이 터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계속 형사들과 함께 경찰서에서 대기하고 무작정 기다렸던 제작진의 숨겨진 노력이 있었다.

"통계적으로 사건이 많이 나는 경찰서부터 문을 두드려 제작진을 배치했어요. 그런데 평소에 사건이 많이 나는 곳인데 우리만 가면 사건이 안 나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사건이 원래 안 나는 곳인데 우리 때문에 사건이 났다고 할 정도로 많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었어요. 운이 많이 작용했죠. 결과적으로 그렇게 사건을 만날 수 있었던 건, '기다림'이었어요. 계속 기다렸고, 기다리다 보니 사건이 발생하더라고요. 시간과의 싸움이었죠. 그렇게 기다렸는데 한 달 동안 사건이 하나도 안 난 곳도 있어요."

배 PD가 '국가수사본부'의 기획안을 들고 처음 제작을 위해 뛰어다녔던 게 지난해 3월. 그리고 '국가수사본부'가 웨이브에서 처음 서비스 된 게 올해 3월이다. 꼬박 1년이 걸렸다. 섭외, 설득, 협의 과정을 거쳐 순수하게 촬영한 기간만 따지면 9개월 정도의 시간이다.

"저희 제작팀이 기간은 다르지만 최대 7팀 정도가 있었어요. 한 팀에 5~6명이 기본 스태프였고요. 서울이나 수도권에 위치한 경찰서면 출퇴근이 가능하지만, 지방으로 내려가면 근처에 월세방을 구해 숙식하며 경찰서로 출퇴근하는 삶이었죠. 그런 게 제작진이 겪는 고충이에요. 사건이 우릴 기다려주지 않으니까요. 주인공으로 삼고 있는 형사팀의 스케줄대로 우리도 움직였고, 그러다 보니 이 분들이 얼마나 고된 노동을 하는지 자연스럽게 제작진도 몸으로 느낄 수 있었어요."

그 긴 기간 동안 경찰서에 딱 붙어 촬영을 이어오며 육체적으로 힘든 순간들이 많았다. 경찰관이 흘리는 땀방울만큼, 같은 공간에서 함께 뛰던 제작진도 고생하는 건 당연했다.

"한참 촬영할 때가 여름이었는데, 여름에 진짜 힘들었어요. 강릉경찰서 편을 보면 밤에 편의점 강도를 쫓기 위해 전 강력팀이 동원되어 쫓아가는데, 경찰관들이 땀 흘리고 고생하는 모습이 나와요. 그때가 한여름 휴가철이었어요. 그 화면에 등장하지 않는 제작진도 땀으로 옷이 다 젖고 몰골이 상당히 처참했어요. 강릉경찰서 편에 취재 갔던 후배 PD들은 고생을 많이 해서 한 달 만에 살이 쪽 빠져 있더라고요."

몸만 고생한 게 아니다. 사건 발생 현장을 경찰들과 같이 누비다 보면 실제 시체를 마주치는 순간들도 있었다. 베테랑 경찰도 변사사건 현장은 매번 힘들다고 하는데 일반인인 제작진은 오죽했으랴.

"'그알'이나 '궁금한 이야기Y'를 만드는 PD나 작가들은 사진으로 시체를 많이 접해요. 하지만 실제 사건 현장을 가는 경우는 드물죠. 저도 이번에 십여 년 만에 변사현장에 갔어요. 고독사로 며칠 동안 방치돼 있다가 돌아가신 분의 마지막 모습이었는데, 시각적인 것보다 후각적인 게 더 강렬하게 남더라고요. 그건 저한테도 충격이었죠. 취재를 하며 그런 현장들이 몇 번 있었는데 방송에 안 나가는 게 더 많아요. '국가수사본부'가 총 13부작인데 취재한 것들 중 방송에 나가는 건 1/10도 안 돼요. 경찰, 제작진, 유족, 사건 관계인 등 다양한 분들의 의견을 듣고, 방송에 내보내기에 부적절하다는 판단 하에 버려지는 게 대부분이에요."

사건 해결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는 형사들을 따라가면서도, '국가수사본부' 제작진이 가장 신경을 쓴 부분은 경찰의 수사에 피해를 주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 원칙을 지키기 위해 때로는 욕심을 버리고 한 발 물러나야 했고, 때로는 마냥 기다려야 했다. 경찰들과 제작진, 중요한 건 상호 존중할 수 있는 신뢰관계였다.

"아무래도 OTT 콘텐츠다 보니 방송 프로그램을 만들 때보다 시간적인 여유가 많은 게 장점이었어요. 그래서 조급해하지 않으려 했어요. '국가수사본부'를 보면 마치 저희가 경찰들과 동행하며 아무런 제약이 없었던 것처럼 보이는데, 실제로는 접근 못하고 제약이 따르는 곳이 훨씬 많았죠. 민감한 곳에서는 저희도 물러났고 계속 기다렸어요. 가까이 가지 못해 멀리서 줌을 당겨서 촬영하기도 했고요. '오늘 당장 이거 못 찍어도 되니, 무리하지 말자' 하며 찍었어요. 물론 당장 이 상황을 놓치는 아쉬움은 있었지만, '또 다른 상황을 촬영하면 되지' 하며 넘겼어요. 그런 시간들을 거치며 신뢰가 두터워지는 거죠. 어느 순간에는 형사들이 저희를 찾더라고요. '같이 밥 먹으러 가자'면서."

# 자극적이지 않게, 오히려 실제 모습을 숨겼다

'국가수사본부'가 지양하는 지점은 또 있다. 살인사건 같은 참혹한 현장을 공개해 시청자의 흥미만 자극하지 말자는 것이다. 대신 여러 유형의 범죄를 해결하는 경찰의 모습을 보여줘 피해 예방의 순기능에 초점을 맞추려 했다. 그래서 '국가수사본부'에는 마약, 강도, 불법도박, 보이스피싱 등 다양한 범죄와 해결과정이 등장한다. 살인사건은 1, 2회에서 다룬 부산 모녀살인 사건이 전부다.

"저희가 취재한 사건들 중에는 1, 2회에 등장한 살인사건 같은 게 또 있어요. 하지만 방송에 내보내지 않는 거죠. '국가수사본부'는 참혹한 살인사건만을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요. 오히려 더 다양한 유형의 범죄들을 보여드려 피해를 예방할 수 있도록 공익적인 영향을 끼치고 싶어요. 실제 국가수사본부에서도 저희한테 '마약이나 보이스피싱도 다뤄주면 좋겠다'고 요청했어요. 그렇게 여러 유형의 범죄들을 해결하는 경찰들의 모습, 그들의 마음과 고민을 보여주는 게 저희의 방점이지, 사건의 잔인함, 참혹성, 그런 걸 보여주려는 게 목적이 아니에요."

지상파 방송보다 규제가 약한 OTT에서 선보이는 콘텐츠이다 보니, 당연히 자극적이거나 선정적일 거라는 선입견이 있다. 앞서 공개된 다른 OTT 콘텐츠들 중에는 실제로 그런 부류들이 많았다. 하지만 '국가수사본부' 제작진은 오히려 자극을 줄이려 노력했다.

"제작 시간이 긴 만큼 고민도 많이 했어요. 당연히 제작자라면 확보한 영상을 방송에서 쓰고 싶죠. 규제가 방송사보다는 헐거운 OTT니까 기존의 관습대로 모자이크를 연하게 해서 그냥 내보내도 돼요. 하지만 이번에는 그런 관습을 따르지 말고, 다른 방식을 고민해 보자는 논의가 있었어요. 살인사건을 다룬 '국가수사본부' 1, 2회를 보면 사건 현장을 훑는 화면에 빨간색이 없어요. 거기는 피가 낭자한 현장인데, 저희가 채도를 낮춰 피의 빨간색을 없앤 거예요. 그런 게 저희의 고민이었어요. 현장감을 전달해 주되, 잔인하고 선정적인 느낌을 빼자는 거죠. 또 이어지는 화면은 사체 사진인데 그 사진을 맥락 없이 본다면 뭘 찍은 사진인지조차 몰라요. 그런데 우리의 잔상과 상상으로, 그게 사체 사진이라는 걸 알고 보니 그냥 잔인하게 느껴지는 거예요. 현장에 피해자와 같이 죽은 강아지 사체도 있었는데 그것도 안 보이게 화면 처리를 했어요. 이런 것들이 저희가 자극적으로 만들지 않으려 심어둔 장치들이에요. 많은 고민을 했고, 저희 제작진 사이에서도 이견이 많았어요. 하지만 'OTT라고 해서 더 자극적으로 만들지 말자'는 생각에 가장 보수적인 선택을 했어요."

'국가수사본부'를 보며 다양한 사건을 좇는 경찰들의 생생한 현장을 따라가다 보면 마치 내가 그 사건 현장에 가있는 듯한 리얼리티가 느껴진다. 시청자들은 "막내 형사가 돼서 현장들 따라다니며 구경하는 거 같다"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배정훈 PD는 자신의 15년 교양 PD 경력에서도 '국가수사본부'의 퀄리티에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늘 시간에 쫓겨 프로그램을 만들곤 했어요. 그래서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하고 방송에 낼 때도 있어 아쉬워하고 그랬죠. 이번엔 그런 게 덜 했어요. 사법적인 판결까지 나는 걸 확인하고, 스토리의 결말을 본 후에 공개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보통 교양프로그램은 기동성이 중요해 제작진이 가벼운 카메라 장비로 다니곤 하는데, '국가수사본부'는 4K 장비로 촬영해서 화면 질감이 굉장히 좋아요. 영화관 스크린에서 틀어도 될 정도예요. '국가수사본부'는 휴대폰보다 TV로 보시길 추천해요. 그럼 정말 제대로 몰입감을 경험할 수 있을 거예요."

[사진=웨이브]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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