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 식단이냐”…노동자들, 광주시 ‘노동자 반값 아침’ 외면
샐러드·샌드위치 3000원에 판매
“힘쓸 일 많은데”“편의점도 이 값”
노동자들, 메뉴·가격 모두 불만
“온종일 땀 흘리며 일해야 하는 공장 노동자들이 풀(채소)만 먹고 힘이 나겠어요?”
지난 4일 오전 8시20분쯤 광주광역시 광산구 하남근로자종합복지관의 ‘간편한 아침한끼’ 가게에서 작업복 차림의 노동자 A씨가 메뉴판을 살피더니 발길을 돌렸다. 금형회사에 다닌다는 A씨는 “괜히 시간만 낭비했다. 힘을 써야 하는 일이 많은데 ‘다이어트 식단’ 같은 것을 먹고 어떻게 일을 하느냐”고 푸념했다.
광주광역시가 전국 처음으로 노동자들을 위해 도입한 ‘반값 아침한끼’ 사업이 외면받고 있다. 저렴한 가격에 아침식사를 제공해 노동자들의 건강을 챙기고 경제적 부담도 덜어주겠다는 목표였지만 정작 노동자들은 ‘메뉴’와 ‘가격’ 모두 불만이다.
‘반값 아침한끼’는 민선 8기 강기정 광주시장의 핵심 공약 중 하나인 ‘근로자 조식지원 사업’의 첫 모델이다. 지난달 27일 문을 연 간편한 아침한끼 가게에서 강 시장은 “노동자들에게 간편하지만 든든한 한끼가 되길 바란다”면서 “노동자의 건강을 챙기고 복지를 증진하는 데 힘쓰겠다”고 말했다.
이 가게는 평일 오전 7시부터 10시까지 6000원 짜리 샐러드와 샌드위치를 각 3000원에 판매한다. 시는 1년간 4800만원의 예산을 투입해 판매 비용의 50%를 지원하고 운영은 광주광산지역자활센터가 맡았다.
시는 개장 이후 샐러드와 샌드위치가 하루 평균 130개 씩 판매돼 지난 3일까지 650개가 제공됐다고 밝혔다. 지원 예산이 정해져 있어 ‘1일 100개’로 한정해 판매하기로 했는데 예상보다 인기가 많아 판매 수량을 늘렸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하지만 개장 1주일을 넘긴 가게 상황은 시의 설명과 달랐다. 개장 효과가 걷힌 듯 이용객이 크게 줄었다. 이날 오전 7시50분 부터 9시10분까지 가게를 지켜봤지만 방문한 노동자는 20여명에 불과했다.
샐러드나 샌드위치를 구입한 노동자의 상당수도 같은 건물이나 인근에서 일하는 20~30대 여성 노동자였다. 작업복 차림의 남성 노동자나 출근길에 이곳을 일부러 들리는 노동자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이날 판매된 샐러드와 샌드위치는 90개에 그쳤다.
현장에서 만난 노동자들은 아쉬움을 토로한다. 노동자 B씨는 “‘반값 아침’이라고 해서 구내식당 처럼 밥을 먹을 수 있는 줄 알고 왔는데 당황했다”면서 “편의점에서도 샐러드나 샌드위치를 이 가격에 사 먹을 수 있다”고 말했다.
가게가 고강도 육체노동이 많은 중소기업이 밀집한 하남산단에 위치하고 있는 만큼 이들 노동자들이 원하는 메뉴를 제공했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광주시는 사전에 메뉴 선정과 가격 결정을 위해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등은 진행하지 않았다.
기우식 참여자치21 사무처장은 “정책 당사자들의 요구가 무엇인지 충분한 사전 조사를 거쳐야 하는데 그런 부분이 미흡했던 것 같다”며 “실효성 있는 사업을 위해 원점에서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광주시 관계자는 “노동자들이 간편하게 먹을 수 있고 쉽게 만들 수 있는 식사를 고민하다가 샌드위치로 결정하게 됐다”며 “차츰 문제점을 파악해 메뉴를 확대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겠다”고 밝혔다.
고귀한 기자 g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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