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림보호법에 숨은 리더들…재난 현장에는 리더가 필요하다[기자메모]

김현수 기자 2023. 4. 5.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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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수 전국사회부 기자

지난 3일 오후 9시40분 이철우 경북도지사가 경북 영주 박달산 산불 상황본부에 도착했다. 산림청이 ‘산불 3단계’를 발령한 지 1시간 만이다.

경북도청에서 현장까지 40~50분이 걸리는 것을 고려하면 산불 통합지휘권이 도지사로 넘어오는 3단계 발령 직후 바로 현장으로 달려온 셈이다. 이 지사의 이러한 행보는 ‘트라우마’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이 지사는 2020년 4월 사흘간 산림 800㏊를 태운 안동산불 발생 당일 21대 국회의원 당선인들과 도청 인근 식당에서 반주를 곁들인 저녁 식사를 하다 홍역을 치렀다. 안동산불이 대형산불로 번질 우려가 있는 상황에서도 지역 당선인들과의 만찬이 그토록 중요했냐는 비판 여론이 일었기 때문이다.

당시 경북도는 산림보호법을 들어 산불이 날 당시에는 도지사의 지휘 책임이 없었다고 해명했다. 이 법은 100㏊가 넘는 산림 피해가 예상되거나, 24시간 이상 산불이 지속될 경우 기초자치단체장에서 광역자치단체장으로 지휘 권한을 격상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났지만, 산불을 바라보는 몇몇 정치인들의 시각은 별로 달라져 보이지 않는다.

김영환 충북지사는 지난달 30일 오후 제천에서 발생한 산불이 다음날 오전에야 진화됐음에도, 화재 당일 밤 술자리에 참석했다. 비판 여론이 일자 충북도가 내놓은 해명도 경북도와 판박이다.

여기에 한 술 더 해 술자리에 간 이유가 “지사가 가면 진화작업에 방해가 될 수 있어 산불 현장에 가는 것이 꼭 바람직하지는 않았다”는 황당한 변명을 했다.

김진태 강원지사도 지난달 31일 오후 강원 홍천에서 소방관 100여명이 산불과 사투를 벌이는 사이 골프연습장을 찾아 골프연습에 매진했다. 연이은 산불에 ‘산불 재난 국가위기경보 경계’까지 발령된 상황에서다.

강원지사이지만 ‘산림보호법’상 책임자는 여전히 ‘홍천군수’라는 생각을 지우지 않은 듯 하다.

반면 김동연 경기지사와 오세훈 서울시장은 산불 발생 사실을 보고받은 직후 현장으로 달려갔다. 김영록 전남지사와 김태흠 충남지사, 이장우 대전시장도 마찬가지다.

이들 광역단체장은 산림보호법상 지휘 권한이 누구에게 있는지 몰랐던 것일까. 아니면 ‘높으신 분’이 재난현장을 찾으면 지휘체계에 혼선이 빚어진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일까.

상황이 어떻든 국민이 원하는 리더의 행동은 묻지 않아도 명료하다. 재난은 ‘현장’이 중요하다. 그 당시가 아니면 갈 수 없고, 그때가 아니면 볼 수 없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상황이 급박할 때 매뉴얼을 벗어난 과감한 지시와 대응을 할 수 있는 정치적 책임을 진 리더가 재난 현장에 있어야 하는 이유다. 리더라면, 광역단체장이라면, 늘 재난현장의 중심에 있어야 한다.

김현수 기자 kh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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