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 근육' 안무·야구 방망이 든 4세대 걸그룹, 여성성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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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책, 소설, 영화, 드라마, 가요, 연극, 미술 등 문화 속에서 드러나는 젠더 이슈를 문화부 기자들이 다양한 각도에서 살펴 봅니다.
4, 5월 대중음악계가 4세대 주요 걸그룹들의 격전으로 달아오른다.
반면 4세대 걸그룹 노래 대부분에는 남성을 지칭하는 말이 아예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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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없어진 가사, 활동성 강조한 의상 등이 공통점
"여성 주체성 중시하는 페미니즘이 걸그룹에 영향"
편집자주
책, 소설, 영화, 드라마, 가요, 연극, 미술 등 문화 속에서 드러나는 젠더 이슈를 문화부 기자들이 다양한 각도에서 살펴 봅니다.
4, 5월 대중음악계가 4세대 주요 걸그룹들의 격전으로 달아오른다. 오는 10일에는 아이브와 케플러가, 5월에는 르세라핌과 에스파가 각각 새 앨범을 선보인다. 팀 구성도 곡 스타일도 제각각이지만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자신들의 이야기에 ‘남자’를 배제하고 '여성성'을 강조한 의상을 벗어던진 것.
‘남자’ 대신 스스로에 집중...탈바꿈한 4세대 걸그룹 가사
'나는 남자 없이 잘 살아 / 그러니 자신이 없으면 내 곁에 오지를 마 / 나는 함부로 날 안 팔아 / 왜냐하면 난 아 돈트 니드 어 맨.’ 2013년 발표된 그룹 미쓰에이의 대표곡 ‘남자 없이 잘 살아’ 가사가 보여주듯 걸그룹 곡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던 소재는 ‘남자’. 하지만 남자 없이 잘 살 수 있다는 미쓰에이의 곡에서조차 남자를 지칭하는 단어가 14번 등장한다.
반면 4세대 걸그룹 노래 대부분에는 남성을 지칭하는 말이 아예 없다. 특히 4세대를 대표하는 그룹 아이브는 사랑 노래에서 첫눈에 반한 상대를 자기자신으로 설정했다. ‘내 앞에 있는 너를 / 그 눈에 비친 나를 / 사랑하게 됐거든’이라는 ‘일레븐’의 마지막 가사가 대표적이다. 아이브가 첫 정규 앨범 발매에 앞서 지난달 27일 선공개한 노래 ‘키치’ 역시 ‘달콤한 말 뒤에 숨긴 너의 의도대로 / 따라가진 않을 거야 / 난 똑똑하니까’라는 가사로 나르시시즘 콘셉트를 명확하게 드러냈다.
‘나는 겁이 없다(I’m fearless)’라는 문장의 알파벳을 재배열해 그룹명으로 삼은 르세라핌 역시 여성으로서 스스로의 강인함을 과시하는 데 집중한다. 가장 최근 발매된 ‘안티프레자일’은 ‘더 높이 가 줄게 / 내가 바랐던 세계 제일 위에 / 떨어져도 돼 / 아 임 안티프레자일’ 같은 가사와 함께 팔 근육을 드러내는 안무가 반복된다. 5월 1일 발매를 앞둔 첫 정규 앨범 역시 타인의 평가에 개의치 않고 자기만의 길을 개척한다는 메시지가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품 넓은 점퍼, 청바지에 야구방망이 집어 든 걸그룹
높은 킬힐이나 지나치게 선정적인 의상은 이미 걸그룹 무대에서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그러나 여전히 춤을 추기 힘들 정도로 짧은 하의나 크롭 상의가 심심찮게 등장하는 게 현실이다. 걸그룹은 줄곧 ‘여성성’을 강조한 의상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하지만 4세대 그룹들이 선공개한 의상 콘셉트는 이런 관행도 깨뜨리고 있다. 그룹 케플러가 공개한 개인별 콘셉트 사진에서 멤버들은 넉넉한 품의 야구점퍼와 야구모자를 쓰는 등 편안한 스포츠 룩을 선보였다. ‘키치’ 뮤직비디오 속 아이브 멤버들도 야구점퍼를 입고 야구방망이를 자유롭게 휘두른다. 이외에도 최근 각각 '오엠지'와 '럽 미 라이크 디스'로 활동한 뉴진스와 엔믹스 역시 통 넓은 청바지에 운동화를 착용하고 무대에 올랐다.
걸그룹들의 이런 변신 행보는 여성의 주체성을 중시하게 된 사회적 분위기가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박희아 대중음악평론가는 “여성의 삶이 남성에 의해 좌지우지됐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페미니즘의 영향력이 커졌다”며 “강력한 백래시(페미니즘에 대한 반발) 때문에 걸그룹들이 페미니즘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지만 자기주도적인 여성상을 추구하는 1020세대의 가치관이 의상·가사에나마 투영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K팝 콘텐츠의 제작자와 소비자층에 여성 비율이 늘어난 영향도 있다. 김도헌 대중음악평론가는 "과거엔 고령의 남성 제작자가 중심이 돼 '걸그룹의 타깃은 당연히 남성'이라고 안일하게 판단했다"며 "그러나 대중문화계의 주 소비층은 언제나 젊은 여성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변화가 시도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K팝 시장이 여성 소비자 수요를 반영하면서 여성 제작자의 역량도 두드러졌다. 뉴진스를 만든 민희진 어도어 대표, 아이브를 만든 서현주 스타쉽엔터테인먼트 프로듀서, 엔믹스를 만든 이지영 JYP엔터테인먼트 이사가 대표적이다. 물론 걸그룹들의 변신에 한계도 뚜렷하다. 박 평론가는 “가사로만 주체성을 강조할 뿐 여전히 노출이 과한 의상을 입거나, 미성년자 멤버가 성상품화 대상이 되는 점 등은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최은서 기자 silve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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