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아시스’ 강경헌, 약간의 이기심에서 출발한 살인의 악업 [김재동의 나무와 숲]
[OSEN=김재동 객원기자]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내 자식의 앞길을 위해서라는데, 엄밀히 말해서는 당신들의 자식 앞날을 위해서라는데, 이미 혼(魂)도 백(魄)도 다 스러졌을 죽은 자들과의 언약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다고.
KBS 2TV 월화드라마 ‘오아시스’가 후반 피치를 올리기 시작했다. 4일 방영된 10화에선 주인공 이두학(장동윤 분)이 아버지 이중호(김명수 분)의 상을 당했다. 이어, 범죄단체 수괴라는 오명을 쓰고 오만옥(진이한 분)의 총에 맞아 바다에 빠지는 엔딩을 맞았다.
이두학을 비롯, 점암댁(소희정 분), 오정신(설인아 분) 등을 비극으로 내몬 장본인 중 하나가 바로 강여진(강경헌 분)이다. 하지만 강여진 역시 태생이 악인인 것은 아니다. 그녀만의 당위를 재구성 해보자.
결혼 전 강여진은 육사생도였던 황충성(전노민 분)과 교제했다. 하지만 부임지를 전전할 초급장교의 앞길을 부정적으로 보던 아버지의 성화에 여수의 유지 최영식(박원상 분)과 혼인한다.
강여진으로선 오히려 흡족한 상황. 시아버지(전국환 분)는 존경받는 독립투사였고 남편도 사리분별 명확해 칭송받는 유지다. 무엇보다도 가산 택택한 지주가문이다. 강여진은 그런 최씨댁 안방을 차지하고 명예와 부를 누릴 수 있었다.
다만 한 가지. 스스로 후손을 볼 수 없는 몸이라는 점. 그마저 시아버지가 타박 않고 대책을 세워주었다. 솔가해 나간 옛 머슴 이중호-점암댁 내외의 갓난 둘째를 입적시킨 것이다.
남 부러울 것 없는 나날들. 총선이 다가올 무렵 남편은 주변의 부추김에 출마를 고민했고, 때마침 전 연인 황충성이 지역 보안사령관으로 부임한다. 부와 명예를 향유하던 강여진에게 하나 부족한 게 권력이다. 여진은 황충성을 통해 남편의 여당후보 출마를 기획하지만 정작 최영식이 출마를 결심한 것은 군부독재 타도를 위해서였다.
지역 보안사령관으로서 황충성은 야당 후보 최영식을 기필코 낙마시켜야 한다. 하지만 탈탈 털어보아도 흠결 하나 없다. 그래서 돌린 눈에 최철웅이 들어온다. 그리고 오만옥의 계략으로 야기된 최철웅의 살인.
여진은 이중호 앞에 무릎을 꿇는다. “아재, 한 번만 살려주세요!” 여진 깜냥에 중호는 거절할 수 없다. 철웅도 중호의 아들 아닌가. 걸린 것 하나 없는 큰아들 두학보다는 중호가 충성하는 최씨 집안의 모든 것이 걸린 둘째 아들.
여진의 의도는 성공했다. 하지만 상황은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부정선거사범 오명에 속앓이하다 남편은 횡사하고 운동권였던 철웅은 연락도 없이 군대에 끌려간다. 다행히 우여곡절 끝에 사법고시는 패스하지만 운동권 빨간 줄이 검사임용을 불가능하게 한다.
여진은 다시 한번 안기부로 자리를 옮긴 황충성을 찾는다. 하지만 황충성에게선 최철웅의 뒷배가 되어줄 의중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여전히 독신의 몸이지만, 그렇다고 여진에게 몸 닳아 하지도 않는다. 철웅을 위해서도, 자신을 위해서도 황충성이 뒷배가 되어줄 계기가 필요하다.
그래서 여진은 최철웅을 황충성의 아들로 둔갑시켰다. 세상을 뜬 최영식에겐 비폐쇄성 무정자증이란 병명을 안겼다. 연적의 소생으로만 알고 철웅을 집요하게 괴롭혔던 충성은 자책하며 최고의 아버지가 될 작심을 하고, 여진에게도 새삼 사랑을 키우며 청혼까지 한다. 도시개발 정보도 빼내 부를 일굴 기회도 제공한다.
여진의 봄날이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호사다마라고 황충성과의 재혼 소식과, 철웅이 황충성의 친아들이란 소식을 전해들은 이중호가 태클을 걸어온다. 최철웅은 최영식의 아들이여야 한다는 경고가 여진에겐 살벌하게 전해진다. 집까지 찾아가 무릎도 꿇어보고, 당신 아들 철웅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하소연도 해보지만 중호의 고집은 강경하다.
중호가 황충성에게 진실을 알린다면 여진과 철웅의 인생은 끝장난다. 믿고 의지하던 아재는 더 이상 없다. 옹고집 이중호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일 뿐이다. 이중호라는 시한폭탄으로부터 여진은 스스로와 아들 철웅을 보호해야 한다. 이것은 전적으로 정당방위다.
그리고 이중호를 협박범으로 몰아가는 약간의 연극만으로도 황충성은 깨끗하게 이중호를 정리해 주었다. 그러게 사정할 때 듣지... 설득할 때 귀 기울이지... 결국은 당신 아들 잘되라는 일인건데... 그렇게 강여진은 어느 사이 살인교사범이 되고 말았다.
시작은 그저 약간의 이기심과 욕심 정도였다. 만족스런 환경하에서 그렇다는 얘기다. 철웅의 입적 당시 “끝까지 내가 낳은 아들”이란 조건을 건 것은 충분히 그럴만 하다. 하지만 철웅의 살인죄를 두학이 대속하게 해달라는 것은 억지다.
자기 본위의 여진이 보기에 남편이 금배지 달기 직전이다. 말 바꾸면 머슴 출신 중호 소생이 국회의원 아들이 될 영광스런 순간이다. 대대로 종이었던 중호에게도 기회 아닌가 싶었을 것이다. 그러니 농고 나와 농투성이 되기 십상인 중호의 또 다른 아들이 대속하는 게 오히려 합리적으로 보였을 수 있다.
또 어차피 최영식의 자식도 아닌 최철웅이다. 땅에 묻힌 지 오래인 최영식 대신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황충성의 아들이 돼서 나쁠 건 뭔가. 그러면 내 아들, 그리고 이중호-점안댁 아들 철웅이 활개치고 세상을 살텐데 무슨 얼어죽을 의리 타령하며 날개를 꺾으려 든단 말인가? 여진은 답답했을 수 있다.
그렇게 여진은 악업을 쌓아왔고 회를 거듭할수록 그 정도도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내 위주로 다른 이의 생각을 재단하는 오만, 그래서 다른 이의 인생을 하찮게 여기는 죄가 결국엔 그녀를 수렁에 빠트리고 말 것이다.
남의 탁자 위 사기그릇이 제 아무리 꼴불견이라도 바닥에 떨어트려 산산조각낼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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