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만원→349원→거래정지…폭탄 안고 달리는 K-바이오
[편집자주] K-바이오가 올해 큰 도전에 직면한다. 다수 국내 바이오가 지속된 투자 수요 악화로 재무건전성을 위협받고 있다. 급기야 최근 일부 기업은 감사의견 문제로 상장폐지 위기에 처했다. 코스닥 성장성특례상장 1호 셀리버리의 거래정지는 상징적이다. 바이오 위기는 어디서 초래했을까. 결국 핵심은 시장 신뢰 하락이다. 특히 특례상장 바이오 중 IPO 당시 약속한 성과를 지킨 기업을 찾기 힘들다. '바이오는 사기 아니냐'는 인식이 팽배한 이유다. 바이오는 어쩌다 거짓말쟁이가 됐을까.
바이오 투자자들을 '멘붕'(멘탈붕괴)에 빠트린 바이오는 셀리버리만 아니다. 에스디생명공학 역시 최고 2만원에 육박했던 주가가 349원까지 떨어진 뒤 감사의견 거절로 지난달 거래정지됐다.
거래가 이뤄진다고 능사는 아니다. 제넥신, 셀리드처럼 최근 3년새 주가가 고점 대비 90% 이상 하락한 바이오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주주들의 손실이 얼마나 될지 가늠하기 힘들 정도다. "바이오는 다 사기 아니냐"는 개인투자자들의 토로가 허투루 들리지 않는 이유다.
특히 급격한 시장가치 하락으로 상장과 비상장을 가리지 않고 바이오 업계에 자금줄이 마르면서 바이오 산업의 생태계가 무너질 수 있단 우려까지 나온다.
바이오의 추락은 시장 신뢰 하락에서 비롯했다. 2005년 코스닥 기술특례상장 제도 도입 뒤 100개 이상 바이오가 증시에 입성했지만, IPO(기업공개) 당시 약속한 기술이전이나 상업화를 통한 흑자전환에 성공한 기업은 찾기 힘들다. 에이비엘바이오 등 극소수를 제외하면 대다수 바이오가 눈에 띄는 연구 또는 상업화 성과를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
머니투데이가 2005년부터 지금까지 특례로 코스닥에 상장한 바이오 관련 기업 103개를 전수 조사한 결과, 신약 개발 성과로 지난해 의미 있는 수익을 창출한 기업은 에이비엘바이오뿐이다.
그나마 코로나19(COVID-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수혜를 본 진단 회사 바이오니아, 휴마시스, 수젠텍, 제놀루션 정도가 특례 상장 바이오 중 이익 창출에 성공했다. 또 코렌텍, 원텍, 오스테오닉이 의료기기로 돈을 벌었다. 이 외에 건강기능식품 비피도와 치과용 골이식재 나이벡, 최근 거래재개된 DXVX가 소규모 영업이익 흑자를 기록했다.
나머지 91개 특례 상장 바이오는 모두 영업적자다. 다수 신약 개발 바이오가 수년간 수백억원 규모의 영업손실을 지속하고 있다. 인트로메딕, 이노시스, 셀리버리는 현재 거래정지 상태다. 바이오에 대한 시장의 신뢰가 추락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국내 코스닥 기술특례 상장 1호 기업 헬릭스미스의 현주소는 상징적이다. 2005년 상장 이후 일부 기술이전 성과로 잠깐 소규모 이익을 내기도 했지만 그뿐이다. 신약 개발에 대한 기대는 옅어졌고 최근 3년간 영업적자가 1500억원을 넘는다. 주인은 바뀌었고, 최대주주가 변경되는 과정에서 헐값 매각 논란이 불거졌다. 기업가치는 급락했다. 지금은 소액주주와 법적 다툼을 벌이고 있다. 투자자는 죽을 맛이다.
이는 취재 과정에서 만난 여러 바이오 현업 관계자들도 인정하는 대목이다.
익명을 요구한 바이오 기업 관계자들은 "같은 업계에서 봐도 상장 뒤 연구개발에 몰두하기보다 주가 부양에만 신경쓰는 바이오가 분명 있다" "밖에서 보면 실패가 유력한 파이프라인인데 주가 때문에 마지못해 끌고 가는 경우가 있다" "IPO를 하고 나면 목표를 달성한 듯 추가적인 파이프라인 발굴 등 미래가치를 지속적으로 높이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는 사례도 보인다" 등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
일부 상장 바이오 오너를 비롯한 경영진의 인식이나 태도에 대한 비판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정도진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는 "일부 바이오 기업의 오너와 경영진을 보면 상장 기업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며 "상장 기업은 자본시장을 통해 투자를 받는 만큼 투자금에 대한 수탁 책임이 있고, 이 자금을 토대로 언제까지 수익을 창출해서 이익을 투자자와 공유하겠단 의무감을 느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의무를 다하지 못한다면 상장을 하지 말았어야 한다"며 "바이오 기업도 회계 투명성, 내부통제, 재무 구조 등에 대해 상장 기업으로서 책임을 갖고 비상장 때와 다르게 경영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훈 에이비엘바이오 대표는 국내 신약개발 바이오에 대해 "냉정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또 끊임없는 연구개발, 선택과 집중, 글로벌 시장 개척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각자 보유한 파이프라인에 대해 성공 확률이 낮단 판단이 든다면 과감하게 버릴 필요가 있다"며 "자기 파이프라인이라고 냉정하지 못하고 애정을 갖고 보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또 "신약 후보물질을 냉정하게 보고 과감하게 버릴 수 있으려면 한두 개 파이프라인에 의존해선 어렵다"며 플랫폼 기술에 기반한 다양한 파이프라인 확보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이어 "좋은 물질이라고 무조건 직접 임상을 가져가려고 하지 말고 글로벌 기술이전을 통해 스스로 사업적 성과를 축적하며 재정적으로 안정적인 구조를 갖추려는 노력도 필요하다"며 "신약개발 과정에서 비용을 들여서라도 기술의 원천이라 할 수 있는 세포주에 대한 특허를 확보하려는 노력에도 힘을 쏟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대주회계법인의 셀리버리에 대한 감사의견 거절도 CB 풋옵션 우려가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대주회계법인은 감사의견 거절의 근거로 기업의 영속성에 대한 불확실성을 제시했다. 그러면서 2022년 말 기준으로 총부채가 총자산은 42억원 초과하며, 2023년 10월 전환사채 350억원(액면가액)에 대한 조기상환청구권 행사 기간이 도래하는 점을 지적했다.
결국 셀리버리가 그동안 누적된 적자로 재무건전성이 악화한 상태에서 앞서 발행한 대규모 CB의 풋옵션이 행사될 경우 기업의 존속 능력에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단 회계법인의 판단이 거래정지로 이어진 셈이다.
대규모 CB의 현금상환 압박 우려는 비단 셀리버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너도나도 바이오에 투자하려던 2020~2021년 국내 상장 바이오가 발행한 CB 규모는 3조원을 넘는다. 이 때 발행한 많은 CB의 만기는 좀더 여유가 있지만 문제는 풋옵션이다. 풋옵션 행사는 통상적으로 CB 발행 2~3년 뒤부터 가능하도록 설정한다.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3조원 CB의 풋옵션 시기가 도래한단 의미다.
실제 지난달에만 코아스템켐온, 전진바이오팜, 셀리드, 지티지웰니스, 우정바이오, 휴메딕스 등이 만기 전 전환사채를 취득했다. 이뿐 아니라 여러 바이오가 앞서 발행한 CB 풋옵션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기 위해 추가적인 자금조달 등을 검토하고 있다.
특히 지금은 국내 바이오의 기업가치가 극도로 낮아진 시기다. 2020~2021년 발행 당시 CB의 전환가액과 현재주가 사이에 괴리가 무척 크다. 더구나 당시 CB는 대체로 무이자 또는 1% 수준의 금리로 발행됐다. 사채권자 입장에선 풋옵션이 가능한 시기가 오면 현금상환을 요구할 가능성이 클 수밖에 없다.
셀리버리의 거래정지로 모처럼의 반등을 기대하던 바이오 투자자들은 또 한 번 쓴맛을 봤다. 앞으로 다른 바이오가 추가적인 자금조달 실패 등으로 CB 풋옵션에 대한 디폴트(채무불이행) 사례가 불거질 경우 바이오에 대한 투자 수요는 더 악화할 수도 있다. K-바이오는 폭탄을 안은 채 시장 신뢰 회복을 위해 어렵고 아슬아슬한 달리기를 하고 있는 상황이나 마찬가지다.
한 상장 바이오 오너는 "지금 업계에선 올해 하반기 몇몇 바이오는 자금 문제로 정말 큰 어려움에 처할 것이란 얘기가 파다하다"며 "유일한 해결책은 바이오의 시장가치가 오르는 것뿐인데, 뾰족한 방법이 없어 막막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정규 브릿지바이오테라퓨틱스 대표는 "최근 제약·바이오의 시장가치가 하락하면서 IPO 문이 좁아지고 비상장 기업의 자금조달 환경마저 악화하면서 우리 바이오 산업의 생태계가 악순환 고리의 초입에 접어든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적지 않다"며 "국내 바이오 기업들은 혁신 기술 개발에 매진해야 하고 이와 함께 자본시장을 통한 건전한 자금조달이 뒷받침된다면 산업이 성숙하고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도윤 기자 justice@mt.co.kr 정기종 기자 azoth44@mt.co.kr 박미리 기자 mil05@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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