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미가 남긴 삶의 노래…‘떠날 때는 말 없이’ ‘내 걱정은 하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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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현미(본명 김명선)의 갑작스러운 별세에 많은 이들이 안타까워하고 있다.
현미는 헤어진 두 동생을 평생 그리워했다.
현미는 훗날 "동생이 자신을 버리고 갔다고 울더라. 사실은 버리고 간 것이 아니다. 동생이 북한이 추워서 손톱, 이빨이 다 빠졌더라. 그래도 살아서 만날 수 있는 게 어디냐"고 당시를 떠올렸다.
가수는 자신의 노래처럼 된다는 속설처럼 그는 말 없이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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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현미(본명 김명선)의 갑작스러운 별세에 많은 이들이 안타까워하고 있다. 85살 나이에도 지치지 않는 열정으로 왕성하게 활동하던 그이기에 더욱 그렇다. 66년에 이르는 음악인생뿐 아니라 그의 삶 자체를 대변하는 노래 네 곡을 통해 고인을 기려본다.
‘밤안개’(1962)
1938년 평양에서 태어난 현미는 한국전쟁 당시 남쪽으로 내려왔다. 그는 19살이던 1957년 미8군 무대를 통해 연예 활동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무용수로 무대에 올랐지만, 공연을 펑크 낸 가수의 대타로 마이크를 잡으면서 주목받았다. 그해 3인조 걸그룹 현시스터즈로 데뷔한 이후 1962년 솔로 1집을 발표했다. 미8군 무대부터 눈여겨본 작곡가 이봉조가 앨범 작업을 이끌었다.
이 앨범 수록곡 ‘밤안개’는 현미라는 이름을 널리 알린 히트곡이다. 미국 가수 프랭크 시나트라, 냇 킹 콜 등이 부른 재즈 스탠더드 ‘잇츠 어 론섬 올드 타운’(It’s A Lonesome Old Town)을 번안한 노래다. 이봉조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냇 킹 콜의 노래를 듣고 반해 번안곡으로 만들었다. 현미가 허스키한 재즈 창법으로 부른 노래는 지금까지도 현미의 대표곡으로 남았다. 코미디언 김숙이 이 노래를 부르는 현미를 패러디하기도 했다. 김숙은 “현미 선생님이 내 개그를 봤다며 계속하라고 격려해줬다. 다만 ‘나는 (너처럼) 초라한 드레스는 안 입는다. 내가 화려한 드레스 몇개 주겠다’고 하시더라”는 일화를 공개한 바 있다.
‘보고 싶은 얼굴’(1964)
8남매 중 셋째인 현미는 1·4 후퇴 당시 부모님, 형제자매와 함께 남쪽으로 왔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어린 두 여동생을 북에 남겨두게 됐다. 현미는 헤어진 두 동생을 평생 그리워했다. 그 마음을 대변하는 노래가 ‘보고 싶은 얼굴’이다. ‘김수임 간첩 사건’을 다룬 1964년 개봉 영화 <나는 속았다>의 주제가로, 이봉조가 작곡했다. 현미는 “눈을 감고 걸어도/ 눈을 뜨고 걸어도/ 보이는 것은 초라한 모습/ 보고 싶은 얼굴”이라고 노래했다.
현미는 헤어진 지 47년 만인 1998년 3월 중국 장춘에서 동생 김길자씨를 만났다. 현미는 훗날 “동생이 자신을 버리고 갔다고 울더라. 사실은 버리고 간 것이 아니다. 동생이 북한이 추워서 손톱, 이빨이 다 빠졌더라. 그래도 살아서 만날 수 있는 게 어디냐”고 당시를 떠올렸다. 현미는 이후에도 동생들을 만나고자 애썼으나 끝내 소원을 이루지 못했다. 두 동생의 생사는 현재 확인되지 않는다.
‘떠날 때는 말 없이’(1964)
신성일, 엄앵란 주연 1964년 개봉 영화 <떠날 때는 말 없이>의 동명 주제가로, 역시 이봉조가 작곡했다. 당대 최고 스타 배우가 출연한 영화는 물론이고, 현미가 부른 노래 또한 크게 히트했다. 현미는 1997년 발매한 자서전 <오늘을 마지막 날처럼>에서 ‘떠날 때는 말 없이’를 담은 앨범을 가장 아낀다고 밝히기도 했다.
현미는 서울 용산구 이촌동 자택에서 홀로 지냈다. 이봉조와의 사이에서 낳은 두 아들은 미국에서 살고 있다. 이봉조는 1987년 먼저 세상을 떠났다. 4일 오전 9시37분께 자택에서 쓰러져 있는 현미를 발견한 이는 팬클럽 회장이었다. 가수는 자신의 노래처럼 된다는 속설처럼 그는 말 없이 떠났다. “두고두고 못다 한 말/ 가슴에 새기면서/ 떠날 때는 말 없이/ 말 없이 가오리다”라는 노래만이 남았다.
‘내 걱정은 하지마’(2017)
현미는 2007년 데뷔 50돌을 맞아 연 기자회견에서 “80년이든 90년이든 이가 확 빠질 때까지 노래할 것”이라며 “은퇴는 목소리가 안 나올 때 할 것이다. 멋지고 떳떳하게 사라지는 게 참모습”이라고 의욕을 보였다. 그는 약속대로 우리 나이로 80살이던 2017년 신곡 ‘내 걱정은 하지 마’를 발표했다. 과거의 재즈 스탠더드 스타일과 달리 경쾌한 트로트 노래다.
“가는 세월도 먹는 나이도/ 나 혼자면 외롭겠지만/ 친구들과 어울려 함께 간다면/ 사는 게 재미가 있어/ 사는 건 멋진 일이야”라는 노랫말처럼 그의 주변엔 늘 친구들이 넘쳤다. 그 친구들을 비롯해 수많은 이들이 진심으로 고인을 기리고 있다. 하늘에서 그는 이렇게 노래할 것 같다. “내 걱정은 하지 마/ 나는 나는 끄떡없어”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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