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 재심 재판장 “갈 길 멀어 가슴 먹먹”…유족에 진심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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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사건이 일어나고 여기까지 오는 데 75년이 넘었고, 긴 세월 속에서 4·3 희생자 대부분이 이미 세상을 떠났습니다. 자식들도 할아버지 할머니가 됐고 세상을 떠난 이들도 있습니다. 첫 재판 당일 하루라도 빨리 무죄 판결을 받아 위로하려 했던 유족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해 고개 숙여 사과드립니다."
지난 4일, 제주지방법원에서 열린 제주4·3 재심재판에서 재판장 강건 부장판사가 이례적으로 희생자 유족들에게 사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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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사건이 일어나고 여기까지 오는 데 75년이 넘었고, 긴 세월 속에서 4·3 희생자 대부분이 이미 세상을 떠났습니다. 자식들도 할아버지 할머니가 됐고 세상을 떠난 이들도 있습니다. 첫 재판 당일 하루라도 빨리 무죄 판결을 받아 위로하려 했던 유족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해 고개 숙여 사과드립니다.”
지난 4일, 제주지방법원에서 열린 제주4·3 재심재판에서 재판장 강건 부장판사가 이례적으로 희생자 유족들에게 사과했다.
제주 출신인 강 재판장은 재판에 앞서 “재판의 이름으로 무고하게 희생된 사람들에게 무죄임을 선고하고 공표할 수 있게 됐다”며 “25년 만에 고향에 돌아와 4·3 재심재판을 맡게 돼 가슴 벅찬 가운데 재심재판을 받아야 할 분들이 아직 많이 남아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아직 갈 길이 멀구나 하는 느낌을 받고 가슴 먹먹했다”고 말했다.
이날 제주지방법원 형사4-1부(재판장 강건)는 군법회의 수형인 60명에 대한 직권재심과 일반재판 수형인 4명 등 모두 64명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강 재판장은 유족들의 말을 들어보겠다며 “법정에서는 국어를 사용한다. 하지만 재판장도 제주 사람이라 사투리로 고라도(말해도) 된다”고 했다.
4·3 수형 희생자 김병언의 딸 김축생씨는 “지금도 ‘폭도’라는 말만 들으면 소름이 끼친다. 우리 집안은 4·3에 전부 죽었다. 딸들만 살고 아들들하고 아버지, 할머니, 어린 조카들, 올케까지 일곱 식구가 전멸했다. 아무 죄없이 촌에 사는 할머니 아버지가 무슨 죄가 있길래 3살 난 조카까지 다 죽였는가. 이렇게 억울한 일이 어디 있느냐”며 “아버지는 목포(형무소)에 가고, 샛(둘째)오빠는 마포(형무소)에 갔고, 작은 오빠는 대구(형무소)에 갔다.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다”며 울먹였다.
4·3 수형 희생자 고 김두규의 아들 김용진씨는 서청을 자처한 이들이 4·3 추념식 때 소동을 부린 일을 언급하며 “어제(3일)까지만 해도 4·3에 대해 시비가 엇갈리는데, 민주국가에서 어린아이, 노인, 부녀자를 즉결 총살하는 나라가 어디 있느냐”고 했다. 이날 법정에서는 10여명이 넘는 희생자들의 아들딸과 조카, 손자들이 나서서 절절한 유족 사연을 전했다.
강 재판장은 이날 재판장의 소회를 밝히다가 울컥했다. “뒤늦게나마 재심으로 정당한 재판이라고 보기 어려운 군법회의의 재판으로 피고인들에 대해 유죄라고 판단한 것을 뒤집고 피고인들이 무죄임을 밝힙니다. 만시지탄이 될지 모르나 이 재심 판결로 잘못을 바로잡으면서 억울하게 망인이 된 피고인들이 안식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긴긴 세월 동안 깊은 고통과 설움 속에 살아가면서 한이 쌓일 수밖에 없었던 피고인들의 치욕과 그 아픔을 함께 한 가족과 일가친지들이 망인은 무죄라는 기억을 새로이 하며 작은 위로나마 받을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첫 4·3 재심 재판에 나서 소회를 말하는 제주 출신 강 재판장의 말에는 물기가 묻어났다.
이어 강 재판장은 “대한민국 헌법과 법률에 의거해 양심에 따라 선고한다. 피고인은 각 무죄”라고 선고했다. 재판부의 판결은 4·3 희생자와 유족들의 응어리진 한과 상처를 보듬었다.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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