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만 더 터지면”… 총선 앞둔 與의 불안 요인 된 최고위원[한상준의 정치 인사이드]

한상준 기자 2023. 4. 5. 12: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국민의힘 당규에 따르면 최고위원회의는 △당직자 임면에 대한 의결 △국회의원 등 공직 후보자 의결 △당무 운영에 관한 주요 사항의 처리 등의 기능을 갖는다. 당의 최고 의사결정기구로 인사·예산·공천 등에 대한 결정이라는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는 것. 최고위원회는 당 대표, 원내대표, 6명의 최고위원, 정책위의장 등으로 구성된다.

지난해 대선 승리에도 불구하고 이런 당 지도부 구성을 놓고 홍역을 앓았던 국민의힘은 3·9전당대회를 통해 비로소 정통성을 갖춘 온전한 최고위원회를 꾸렸다. 새 지도부가 친윤(친윤석열) 일색이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오히려 여권 내에서는 “비슷한 성향의 인사들로 꾸려졌으니 최고위를 둘러싼 잡음이 더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도 나왔다. 그러나 이런 기대가 무색하게, ‘김기현 체제’가 출범한 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은 시점에서 당 지도부로 인한 문제가 불거졌다.

● 김재원·태영호의 입, 끝나지 않은 갈등

전당대회의 여운이 채 가시지도 않았던 지난달 12일, 김재원 최고위원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주관한 주일 예배에 참석했다. 당의 공식 행사도 아닌 이 자리에서 마이크를 잡은 김 최고위원은 5·18민주화운동의 정신을 헌법 전문(前文)에 넣는 것과 관련한 질문에 “그건 불가능하다. 저도 반대한다”고 했다.

5·18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은 당초 진보 진영에서 제기했지만, 윤석열 대통령도 대선 공약으로 약속했던 사항. 그런데 집권 여당의 수석 최고위원이 대통령의 공약에 공개적으로 반대를 표한 것.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오른쪽)이 지난달 12일 사랑제일교회 주일 예배에 참석해 전광훈 목사(왼쪽)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유튜브 캡처
또 당시 예배에서 전 목사가 “(헌법 전문 게재가) 전라도에 대한 ‘립서비스’ 아닌가”라고 하자 김 최고위원은 “표 얻으려면 조상 묘도 판다는 게 정치인 아닌가”라고 했다.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 이준석 전 대표는 물론이고 윤 대통령까지 호남 표심을 얻기 위해 공을 들여왔던 행보를 한 번에 부정해버린 것. 윤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에서 광주, 전남, 전북 등 3개 지역 합산 득표율 12.8%를 기록했다. 이는 역대 보수 정당 대선 후보 중 가장 높은 호남 득표율이다.

대통령실까지 나서 유감을 표하자 김 최고위원은 잠시 머리를 숙이는 듯했지만, 채 보름도 지나지 않아 미국에서 또 한 번 설화를 일으켰다. 지난달 27일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열린 한 강연에서 김 최고위원은 전 목사에 대해 “우파 진영을 천하통일했다”고 말했다. 극우 성향의 전 목사를 거듭 치켜세운 것.

논란이 된 최고위원은 또 있다. 75주년 제주도4·3사건 희생자 추념식이 열린 3일 태영호 최고위원은 다시 한 번 논란의 중심에 섰다. 앞서 태 최고위원은 2월 전당대회 선거운동 당시 제주를 방문한 자리에서 “4·3사건은 명백히 김일성 씨 일가에 의해 자행된 만행”이라고 했다. 당시 제주 시민단체 등이 태 최고위원의 발언을 두고 “4·3을 폭동으로 폄하해 온 극우의 논리와 전혀 다를 바가 없다. 즉각 사과하고 최고위원직 후보에서 스스로 사퇴하라”고 했지만 태 최고위원은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태 최고위원은 3일 “어떤 점에서 사과가 되는지 아직까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며 “제가 지난번에 한 발언은 그분(유족)들의 아픔을 치유해주고자 한 발언”이라고 했다.

국민의힘 태영호 최고위원이 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1


● TK 출마 노리는 김재원, 강남 사수 나선 태영호

정치인의 모든 말과 행동에는 정치적 의도가 담겨 있다. 자연히 두 최고위원의 ‘문제적 발언’도 무의식 중에 나온 실언이 아니다.

먼저 김 최고위원은 왜 두 차례나 전 목사에 대한 적극적인 구애에 나섰을까. 이를 알기 위해선 그의 정치 궤적부터 봐야 한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행정고시, 사법고시에 연거푸 합격한 김 최고위원은 2004년 17대 총선 당시 경북 군위-의성-청송에서 당선돼 여의도 활동을 시작했다. 친박(친박근혜)계였던 그는 18대 총선에서는 ‘친박 대학살’로 인해 출마하지 못했다. 이후 19, 20대 총선에서 승리하며 3선 고지에 올랐지만 2020년 21대 총선을 앞두고는 또다시 공천에서 배제됐다. 아무런 연고가 없는 서울 중랑을 지역구로 옮겨 출마하려 했지만, 경선에서 패해 끝내 출마가 좌절됐다.

와신상담을 노리던 그는 2022년부터 지난해까지 대구 지역에서만 세 차례 출마 채비를 했다. 김 최고위원은 2022년 1월 곽상도 전 의원의 의원직 사퇴로 치러졌던 대구 중-남 보궐선거에 출마하려 했지만 당 안팎의 만류로 접었다. 지난해 3월에는 대구시장 선거에 뛰어들었지만 후보 경선에서 탈락했고, 두 달 뒤 홍준표 대구시장의 지역구였던 대구 수성을 보궐선거에 도전했지만 역시 경선에서 탈락했다.

이런 행보와 관련해 한 여권 인사는 “김 최고위원이 내년 총선에서 대구경북 지역구에 출마하려 한다는 건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라며 “전 목사로 대표되는 극우 진영의 확실한 지원을 받아 이번에는 반드시 공천을 받아내겠다는 의도”라고 했다. 국민의힘 김용태 전 최고위원 역시 YTN 라디오에서 “당선이 유리한 지역의 공천을 받으면 사실상 망언을 하더라도 당선되는 경우가 굉장히 많았다”며 “김 최고위원이 당의 최고위원으로서 역할을 하기보다는 본인의 공천과 본인의 당선만을 위해서 이런 발언들을 하는 것 아닌가 싶다”고 진단했다.

태 최고위원 역시 마찬가지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태 최고위원이 사과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두 가지 이유를 들어 설명했다.

“첫 번째는 ‘노이즈 마케팅’의 효능을 제대로 경험했다는 점이다. 당초 최고위원 선거에서 태 최고위원은 당선 안정권이 아니었다. 그러나 제주 발언으로 논란이 되고 이목이 집중되면서 극우 성향의 표가 몰렸고, 결국 ‘깜짝 당선’됐다. 두 번째는 태 최고위원의 지역구는 서울 강남갑이다. 여긴 보수의 ‘텃밭 중의 텃밭’ 같은 곳이라 노리는 사람이 적지 않다. 정치 신인을 전략 공천해도 당선은 확실하다. 따라서 극우 표심을 기반 삼아 재선을 노리겠다는 의도다.”

실제로 태 최고위원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강남은 어차피 모든 사람이 탐내는 곳이기 때문에 공천 과정이 쉽지 않을 것 같다”면서도 “무조건 (지역구를) 사수할 것”이라고 했다.

● 與 내부에서도 “본인만 살자는 것” 부글부글

여권 내에서는 두 최고위원의 연이은 구설에 부글대는 분위기다. 내년 총선에서 원내 제1당을 탈환하기 위해 필수적인 수도권 지역의 승리가 위태로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수도권 지역에서 출마를 준비하고 있는 한 여권 인사는 김 최고위원의 5·18 발언을 두고 “정말 무릎이 팍팍 꺾인다”고 했다. 수도권에는 호남 유권자가 적지 않고, 이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몇 년째 뛰어 왔지만, 김 최고위원의 발언 한 번에 그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됐다는 것. 이 인사는 “두 최고위원이 대구경북이나 강남에서 또 당선된다고 해도, 정작 수도권에서는 문제의 발언 때문에 낙선하는 후보가 속출할 수도 있다”며 “명색이 당 지도부라는 사람들이 본인의 당선만 생각할 뿐 당의 전체적인 상황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성토했다. 또 다른 한 원외(院外) 인사는 “극우 진영에만 매달리면 일부 지역구에서 승리할 순 있어도 전체 선거에서는 지는 것”이라며 “만약 저런 발언이 총선 직전에 터졌으면 정말 수도권 선거는 해보나 마나 였을 것”이라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고 있지만 김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는 “경고까지 했으니 일단 지켜보자”는 분위기다. 당원들의 투표로 뽑힌 최고위원을 징계하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김 최고위원은 김 대표로부터 공개 경고를 받았고, 당 지도부는 태 최고위원의 4·3 추념식 참석을 만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태 최고위원의 참석으로 또 한 번 논란이 일면 정국에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도부가 미온적으로 대처하고 있다”는 반발이 계속되면서 갈등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태세다.

이런 당내 상황을 두고 한 여당 의원은 “진짜 문제는 총선이 아직 1년이나 남았다는 것”이라고 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은 어쩔 수 없지만, 만약 앞으로 당 지도부의 구설이 한 번만 더 터진다면 당 전체가 걷잡을 수 없는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의미다. 이 같은 우려가 현실이 될지, 아니면 기우에 그칠지에 따라 여권의 내년 총선 성적표도 결정된다는 점을 여당 지도부는 과연 알고 있을까.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Copyright © 동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