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의 시론]이재명의 운명과 윤핵관의 선택
말할 권리로 진실 은폐해온 李
법정서 답변 순간 몰락 시작돼
총선 前 민주당 분당도 가시화
대립자 윤핵관도 존재감 잃어
尹정부 균형·공감 확보 도와야
대통령 측근의 불행 극복 가능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권력의 가장 중요한 속성은 ‘말할 권리’였다. 자신이 짠 프레임으로, 자신에게 유리한 내용을,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표출했다. 국회의원 배지와 당 대표직은 말할 권리를 보장받기 위한 장치이고, 한사코 구속을 피한 것은 말할 기회를 봉쇄당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대장동 특혜 의혹에 ‘단군 이래 최대의 공익환수 사업’ 프레임을, 성남FC 후원금 의혹에는 ‘지자체 예산 절감과 기업 유치’ 프레임을 씌웠다. 검찰 수사는 정치 검찰의 정적 죽이기로 몰고 갔다. 불법과 탈법에 대해서는 침묵했다. 그의 정치적 팬덤들은 그의 주장을 유일한 진실로 믿었고, 중도 성향 지지자들은 ‘대안적 진실’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재명의 시간은 저물고 있다. 이재명은 대장동 특혜 및 성남FC 후원금 의혹과 관련, 지난달 22일 배임과 제3자 뇌물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 선거법 위반 재판이 진행 중이어서 백현동 특혜·대북 불법 송금·변호사비 대납 의혹으로 추가 기소되면 매주 2∼3회씩 법정에 서게 된다. 법정에서 이재명은 더 이상 말할 권리를 누릴 수 없다. 피고인 이재명은 기소된 범죄 혐의 프레임 내에서 검찰의 질문에 답해야 한다. 검찰은 이재명이 숨기고 싶은 진실을 집요하게 파고들 것이다. 이재명은 대장동 인허가와 관련해 12번 직접 서명한 경위나 성남FC 후원금을 걷기 위해 기업들과 벌인 특혜 협상 등에 대해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증거와 증언으로 무장한 검찰 질문에 부인과 모르쇠로 일관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답변을 거부할 수 있지만, 묵비권을 행사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유죄 판결을 받았다. 법원의 공정성을 문제 삼을 순 없을 것이다. 선거법 무죄 확정으로 지난 대선에 출마할 수 있었던 것도 현재의 사법부 덕이다.
말할 권리로 진실을 덮을 수 없게 된 이재명의 권력은 붕괴할 수밖에 없다. 중도 성향 지지자들은 이탈하고 열성 지지층 일부도 흔들릴 것이다. 이재명의 공천과 당선의 상관관계를 확신할 수 없는 현역 의원들은 제 살길을 찾아 나설 것이다. 민주당 지도부가 붕괴하거나 분당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내년 4월 10일 총선까지 남은 1년 동안 이 모든 일이 빛의 속도로 진행될 수 있다.
그러나 야당의 분열이 국민의힘 총선 승리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보수 진영에 이재명은 영화 ‘어벤저스’의 빌런 ‘타노스’와 같은 존재다. 민주당이 절대 질 수 없다는 대선에서 0.73%포인트 차이로 패배한 것은 이재명의 당선이 우주 생명체의 절반을 소멸시키는 타노스의 ‘손가락 튀기기’가 될 수 있다는 보수 진영의 절박감 때문이었다. 그러나 타노스의 소멸은 어벤저스의 퇴진으로 이어졌다. 빌런이 없는 세계에서 어벤저스는 부담스러운 존재다. 보수 진영의 어벤저스는 윤석열 대통령과 윤핵관이다. 이재명의 몰락이 가시화하면 윤핵관의 존재 의미와 당정의 일사불란함은 호소력을 잃는다. 특히, 생존 위기에 내몰린 민주당 의원들은 혁신을 추구하고 국민은 전쟁의 끝에서 일상의 회복과 미래의 희망을 요구할 것이다. 그 전환기에 순발력 있게 적응한 정치인들이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의 새로운 주역으로 부상할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11개월간 추진해온 국정 운영의 어젠다들은 대선 민의를 벗어나지 않았다. 노조 개혁을 통한 산업 현장의 정상화, 노동시장 유연화를 통한 기업 경쟁력 제고, 한일관계 정상화와 한미동맹 강화를 통한 글로벌 체제 변화 적응 등은 미룰 수 없는 과제들이다. 그러나 균형감을 유지하지 못했고 국민의 공감을 끌어내는 데 미숙했다. 국정 지지율에 치명타가 된 ‘주 69시간 노동’이 대표적 예다. 상응하는 휴식을 보장하지 않는 기업주는 오히려 손해를 보게 되는 제도적 장치가 함께 제시돼야 했다. 노조 개혁에는 건전한 노조활동의 지원책이, 한일관계 정상화에는 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병행돼야 했다.
그 괴리를 메우느냐에 내년 총선과 윤석열 정부의 성패가 달려 있다. 윤핵관이 존재감을 입증할 수 있는 것도 이 지점이다. 대통령의 강력한 신임을 바탕으로 민심을 가감 없이 전달하고 정책의 균형을 유지하려는 공무원과 당이 바람막이 역할을 한다면 역대 정부에서 대통령 핵심 측근들이 맞았던 불행한 운명을 넘어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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