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와 시각]‘自生黨死’ 트럼프 데자뷔

김남석 기자 2023. 4. 5.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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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미국 뉴욕 맨해튼의 센터스트리트에 위치한 맨해튼 형사법원.

역대 미국 전·현직 대통령 중 최초로 기소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기소인부절차를 위해 이곳에 모습을 드러냈다.

트럼프 전 대통령 기소가 본인에게는 호재가 됐지만, 소속정당 공화당에는 회복 불능의 대형 악재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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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석 워싱턴 특파원

4일 미국 뉴욕 맨해튼의 센터스트리트에 위치한 맨해튼 형사법원. 역대 미국 전·현직 대통령 중 최초로 기소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기소인부절차를 위해 이곳에 모습을 드러냈다. 2016년 대선 직전 포르노 배우 출신 스토미 대니얼스의 성관계 폭로를 막기 위해 개인 변호사 마이클 코언을 통해 13만 달러(약 1억7000만 원)를 건네고 법률자문비로 처리해 선거자금법을 위반한 혐의 등이다. 하지만 정치 입문 전부터 대중의 관심·유명세를 활용하는 데 타의 추종을 불허했던 트럼프 전 대통령은 “정치적 박해” “마녀사냥” 등 표현으로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다. 지지층이 결집하면서 야후뉴스·유거브 여론조사에서 그는 공화당 대선주자 중 지지율 52%로 압도적 1위를 기록했다. 장삿속에 능한 부동산업자 출신답게 검찰 기소를 보수 파괴공작으로 규정하고 힘을 보태달라는 메일을 뿌려 500만 달러 이상 후원금을 챙기기도 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 기소가 본인에게는 호재가 됐지만, 소속정당 공화당에는 회복 불능의 대형 악재가 되고 있다. 3일 공개된 CNN 조사에서 공화당 지지자 79%가 기소 반대 입장을 밝히는 등 당내 여론이 한쪽으로 쏠리면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옹호하지 않으면 곧장 좌파 동조자로 낙인찍는 분위기가 팽배해졌다.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 마이크 펜스 전 부통령 등 유력주자들이 2024년 대선 출마를 선언하려던 참에 스포트라이트가 트럼프 전 대통령 기소에 쏠려 경선 초반 흥행 구도가 산산조각이 난 점도 악재다. 무엇보다 향후 형사 기소가 이어지는 ‘트럼프 사법리스크’가 본격화할 것으로 예측되면서 대선 향배를 좌우할 중도층이 본선에서 공화당을 외면할 가능성이 커졌다. 실제 앞선 조사에서 당내 과반 지지를 얻은 트럼프 전 대통령은 조 바이든 대통령과 가상 양자대결에서 43%대 45%로 뒤졌다. 노예해방을 이룬 에이브러햄 링컨의 공화당이 트럼프 전 대통령의 사당(私黨)으로 탈바꿈하면 중도·온건 보수층을 겨냥한 지지기반 확대는 물 건너간다.

공교롭게도 한국에서도 데자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검찰에 기소됐지만, 당권 장악을 통해 체포동의안 부결 등으로 버티고 있다. 대장동 특혜·성남FC 후원금 의혹 등에 이어 변호사비 대납 의혹까지 불거졌지만, 이 대표는 보궐선거 출마로 방탄용 의원 배지를 달고 ‘부정부패 등으로 기소 시 당직 정지’를 규정한 당헌 제80조에 예외조항을 적용해 당권을 유지했다. 개딸(개혁의 딸)로 불리는 강성 지지층이 결집해 이 대표를 지지하지 않으면 곧장 ‘수박’(겉과 속이 다른 배신자)으로 내모는 것도 판박이다. ‘이재명 지키기’가 민주당 발목을 잡으면서 당내에서도 “이 대표가 대표직을 내놓지 않으면 총선을 치를 수 없다” “이전 당 대표들은 당을 최우선으로 하는 선당후사를 했다” 등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미국 신학자이자 정치개혁가였던 제임스 클라크는 “정치꾼(politician)은 다음 선거를 생각하고 정치가(statesman)는 다음 세대를 생각한다”고 말했다. 당보다 특정인을 앞세우고 한목소리만 강요하는 정당이 올바른 정치가가 이끄는 정당일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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