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차선 주차는 그나마 양반” 부산항 화물차 세울 곳이 없다
“에라이! 캄캄한 새벽에 지나갈 때 저 꼬라지로 무단 주차한 거 보고 억수로 놀랬는데, 아직도 차를 안 뺐네!”
지난달 31일 오후 부산 남구 우암동의 부산항 북항 7부두 근처 화물차 차고지인 우암부두 주차장에서 감만부두로 합류하는 왕복 2차로로 화물차를 운전해 가던 김아무개(52)씨가 소리쳤다. 그의 말처럼 감만부두 합류도로 1·2차선을 대형 트레일러 두 대가 나란히 주차해 길을 완전히 막고 있었다.
“보소, 한 차선 주차는 그나마 양반이라고 했지예?” 주차장에서 감만부두 합류도로까지 820m 전체 구간의 양방향 한 개 차선에 무단 주차하고 있던 대형 화물차들을 보고 놀란 기자에게 ‘일상’이라고 했던 김씨의 말이 떠올랐다.
김씨는 앞으로 7부두와 감만부두 등 부산항 북항의 화물차 무단 주차 문제가 더 심각해질 것이라고 했다. 기존 화물차 차고지였던 감만부두 주차장(315면)이 컨테이너 부두 운영 효율화 추진 계획에 따라 최근 폐쇄됐고, 우암부두에 주차장(210면)으로 대체돼 주차할 곳이 105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날 저녁까지 우암부두 주차장은 화물차로 인한 주차난이 발생하지 않았다. 이곳에서 직선거리로 2㎞가량 떨어진 감만부두 주차장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공식적으로는 폐쇄된 주차장이지만, 화물차들이 여전히 빽빽하게 주차해 있었다. 모두 무단 주차다. 이달부터 부두 운영 효율화 계획이 본격 시행되면, 김씨의 말대로 이들 화물차는 우암부두 주차장으로 가야 하고, 주차 못 한 화물차는 노상에 차를 세울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현재 북항 근처 도로에는 하루 평균 300대가 넘는 화물차가 밤샘(0시~새벽 4시) 주차를 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부산에서 밤샘 노상 주차가 가능한 곳은 사하구 감천항로(80면)와 강서구 녹산산단(49면) 등 129면에 불과하다.
화물기사들은 화물차 주차난은 고질적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화물노동자는 보통 새벽 4시에 부두에 도착해 짐을 실은 뒤 밤 10시가 되어야 차고지 주차장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주차장 빈자리가 없어 도로 위 차 안에서 시간을 보낸다. 주차는 다음 날 새벽 2시가 돼야 가능하다. 그때 ‘본선’이라고 불리는 화물차가 선박에 컨테이너 등 짐을 실어나르기 위해 주차장을 나서기 때문이다.
김씨는 “주차 문제로 스트레스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30년 가까이 이렇게 일하다 보니 지난해 말 당뇨 등 건강 적신호가 켜졌고, 올해부터는 무조건 오후 4~5시에 운행을 마칠 수 있는 근거리 배차만 받는다”고 말했다. 또 다른 화물노동자인 최아무개씨도 “수입을 줄이더라도 건강 챙기는 것이 결국 낫다고 생각해 근거리 위주로 배차를 받는 중”이라고 했다.
화물연대 부산본부는 시민 안전과 화물노동자 생존권을 위해 부산항뿐만 아니라 전체 화물차 주차난 해소에 대한 근본적 대책이 필요하다고 요구한다. 지난달 기준 부산시에 등록된 화물차는 4만4524대인데, 부산시의 공영차고지·휴게소 10곳에 가능한 주차면은 2055면에 불과하다. 부산본부는 공영차고지·휴게소, 사설 주차장, 운송업체 주차장 등을 이용하지 못해 도로에 무단 주차한 화물차가 하루 평균 1000여대를 훌쩍 뛰어넘는 것으로 추산한다.
부산시 물류정책과 관계자는 “(부산항 북항 쪽은 빈 곳이 없어) 현실적으로 시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지난해 용역을 통해 강서구 봉림동 부산항 신항 쪽에 화물차고지 후보지(230여면 규모)를 확보하고 올해부터 관련 절차를 밟아 조성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경락 화물연대 부산본부 조직국장은 “밤에 노상 무단 주차된 화물차는 시민 안전에 큰 위협이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주차할 곳을 찾아다녀야 하는 화물노동자 건강도 악화한다. 부산시, 각 지자체, 부산항만공사 등 관계기관이 머리를 맞대 화물차 주차 문제 해소를 위한 협의의 장을 마련해달라”고 요구했다.
김영동 기자 yd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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