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항준의 멋진 '리바운드' 인생
아이즈 ize 윤준호(칼럼니스트)
지난 4일 가수 겸 방송인 윤종신이 자신의 SNS에 대화창을 캡처한 사진 한 장을 게재했다. 대화 상대는 "이제 나도 사람 구실 하련다. 말티즈 그만"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 주인공은 '김은희 작가의 남편'으로 오랜 기간 더 유명했던 장항준 감독이다. 닮은꼴 외모 때문에 '말티즈'라는 별명을 갖고 있던 장항준은 실로 오랜만에 '감독'으로 기지개를 켜고 있다.
5일 개봉하는 장 감독의 신작 '리바운드'는 2012년 부산중앙고 농구부의 실화를 스크린으로 옮긴 작품이다. 고작 6명의 선수로 출전한 전국대회에서 놀라운 성적을 거둔 거짓말 같은 이야기는 장 감독을 통해 다시 생명력을 얻었다. 여드레 동안 다섯 경기를 치열하게 치른 그들의 '짠함'은 왜인지 장 감독의 모습과도 겹친다.
농구를 가리키는 대명사는 많다. 그 옛날 배우 장동건·손지창 주연 드라마는 '마지막 승부'라는 제목을 통해 백척간두에 선 두 사람의 피할 수 없는 경쟁에 방점을 찍었고, 가수 이승환은 '덩크슛'에서 "덩크슛 한번 할 수 있다면, 내 평생 단 한 번만이라도"라면서 간절함을 드러냈다. 최근 극장가에서 각광받은 '더 퍼스트 슬램덩크' 역시 덩크슛을 전면에 내세웠다.
그런데 왜 이 영화의 제목은 '리바운드'일까? 덩크슛은 큰 키와 엄청난 점프력이 수반되지 않으면 평생을 살며 한 번도 이루기 힘든 꿈이다. 하지만 리바운드는 다르다. 점수를 얻기 위해 림을 향해 공을 던지지만 번번이 엉뚱한 곳에 맞고 튀어 나온다. 이렇게 튄 공을 다시 잡는 행위가 리바운드다. 결국 리바운드는 '실패'를 기반으로 한다. 실패하지 않으면 리바운드를 잡을 기회조차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리바운드는 또 다시 골대를 노릴 수 있는 찬스이기도 하다. 이는 재도전을 뜻한다. 한 번의 실패에 주저앉지 않고 다시 일어날 용기, 리바운드가 가진 진짜 의미다. 그리고 이는 장 감독의 삶과도 맞닿아 있다.
장 감독의 연출 역사는 2002년 데뷔작인 '라이터를 켜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2 한일 월드컵 열기가 뜨겁던 그 해 7월, 장 감독은 월드컵과 '맞장'을 떴다. 배우 김승우, 차승원이 주연을 맡은 이 재기발랄한 영화는 흥행을 떠나 장항준이라는 이름 석 자를 알리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 후 다시 메가폰을 잡기까지는 험난했다. 눈에 띄는 작품을 내놓지 못했고 2017년 영화 '기억의 밤' 이후 6년 만에 다시 튄 공을 잡고 '리바운드'라는 영화로 흥행이라는 이름의 골대를 주시하고 있다.
장 감독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장가 잘 간 남성' 중 한 명으로 손꼽힌다. 그의 아내는 넷플릭스 '킹덤' 시리즈를 비롯해, '시그널'·'싸인' 등을 통해 한국형 장르물의 대가라 불리는 김은희 작가다. 오죽하면 "김은희가 장항준을 입양했다"는 농담까지 오간다.
그렇기에, 장 감독이 김 작가를 '선택했다'는 주장은 지금도 파격적이다. 장 감독은 2011년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아내인 김은희 작가는 SBS 예능작가 시절 후배로 들어왔다. 당시 나는 결혼을 전제로 사귀어 줄 것 같은 사람들의 명단을 작성했다. 내 기준으로 철저하게 7명을 뽑았다. 15개 항목으로 외모, 수입, 건강 등 심사기준도 철저했다"면서 "사실 결론은 정해져 있던 게임이었다. 당시 집계를 한 뒤 아내를 만나서 '사귀어보고 결혼하자'라고 말했는데 뜻밖에도 '그럴까?'라고 답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이 때부터 장 감독의 입담은 남달랐다. 특히 아내를 안주 삼은 사연이 잘 통했다. 어찌보면 김 작가가 장 감독은 먹여살린 것은 그가 작가로서 각광받을 때부터가 아니다. 그 이전부터 장 감독의 이야깃거리가 되어주며 그가 '감독'보다 '예능인'으로 밥벌이하는데 크게 일조했다.
아내에 기대 사는 것처럼 보여도, '인간 장항준'은 밉지 않다. 이건 그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이다. 그는 감독 이전에 작가였다. 아내 못지않은 이야기꾼이다. 그가 김 작가보다 더 뛰어난 것은 입담이다. 같은 이야기도 더 귀를 솔깃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그래서 예능 프로그램에서 두각을 보였다.
또한 장 감독은 수비수다. 공격하는 개그는 지양한다. 자신을 낮추면서 상대방을 기분좋게 한다. 아내 이야기를 꺼낼 때도 항상 그를 높인다. 이달 초 방송된 SBS 예능 '미운우리새끼'에서 장 감독은 김 작가가 받은 500만 원 상품권으로 명품을 구매하게 됐다는 이야기를 풀면서 이렇게 엿붙였다. "아내가 '혹시 안 그러는 거 알지만, 너무 조바심 내고 아등바등하지마. 오빠는 가만히 살면 행복한 사람이야. 나는 벌 줄만 알지 쓸 줄은 모르는 사람이야. 내 건 다 오빠 거니까. 조바심 내지 마라'고 하더라." 이를 들은 패널들은 "결혼 잘 했다"고 부러워했고, 장항준은 "정말 복덩어리"라고 뿌듯해했다. 이처럼 장 감독은 세 치 혀로 500만 원 상품권을 아깝지 않게 만드는 재주를 지녔다.
그는 '리바운드' 시사회에 그룹 방탄소년단의 리더 RM을 초대했다. tvN 예능 '알쓸인잡'을 함께 하며 쌓은 인맥이다. 이를 두고 장 감독은 "저는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할 때 분명하게 얘기한다. 이 말을 하는 목적과 저의를 숨기지 않는다"면서 "'(김)남준아, 나는 너로 인해 이득을 보고 싶어'라고 말했었다"고 밝혔다. 누구든 방탄소년단을 곁에 두고 싶어하고, 활용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했다. 장 감독은 올바른 접근 방식을 안다. 얻고자 하는 상대방의 가치를 충분히 빛나게 하는 동시에 그에 대한 고마움을 담뿍 담는다. 그러니 대중은 들으면 기분 좋아지는 장 감독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장 감독과 김 작가는 그동안 부부 관계를 넘어 동료로서도 협업해왔다. '리바운드'도 그 연장선상이다. 김 작가가 공동 각본가로 참여해 작품에 윤을 냈다. 장 감독에 따르면 김 작가는 '리바운드'의 편집본을 본 후 "이 영화가 오빠의 대표작이 될 거야"라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그런 아내를 두고 장 감독은 "김은희라는 존재가 많은 정신적 도움이 된다"고 화답했다.
게다가 요즘 분위기도 좋다. '더 라스트 슬램덩크'를 비롯해 같은 날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의 상징인 나이키 '에어' 시리즈의 탄생을 담은 영화 '에어'로 공개되며 농구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다. 온 우주의 기운이 장항준을 향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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