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항준 “악당과 일하지 않고도 성공하고 싶다”[인터뷰]
배우들의 ‘진짜 농구’ 모습 촬영
“나이들수록 점점 작품이 소중하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일이 현실에서도 종종 일어난다. 2012년 전국농구협회장기 전국중·고농구대회 고교부에 5명 엔트리로 출전해 연승 행진을 한 부산중앙고의 사연도 그렇다. 영화 <리바운드>(5일 개봉)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은 최약체팀과 25세 신임코치가 누구도 기대하지 않은 결과를 일궈내기까지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장항준 감독의 6년 만의 신작이다. 드라마 <수리남>의 권성휘 작가, 장 감독 부인인 <킹덤>의 김은희 작가도 참여했다.
고교농구대회 최우수선수(MVP) 출신인 강양현(안재홍)이 모교인 중앙고에 공익근무요원으로 돌아오며 영화는 시작된다. 그는 존폐 기로에 놓인 농구부 코치가 된다. 길거리농구를 하는 학생들까지 영입한 그는 겨우 6명의 선수단을 꾸린다. 예선에서 1명이 부상을 입으면서 5명 전부가 처음부터 끝까지 경기를 뛰어야 하는 상황. 중앙고 팀은 기적을 쓴다. 11년의 기다림 끝에 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 장 감독을 지난달 31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스태프를 꾸리고 500여명의 배우를 오디션까지 봤는데 투자가 물거품이 돼 스태프를 모두 해산했어요. 2012년 말 기획했으니 영화가 만들어지기까지 11년이 걸린 셈입니다. 기적같이 투자자를 만나 제작한 과정 자체가 ‘리바운드’ 같은 느낌이죠.”
국내에서 농구 영화는 잘 시도되지 않은 낯선 장르였고 출연진 중에 소위 ‘스타 배우’가 없었기 때문에 투자받기가 쉽지 않았다고 장 감독은 회상했다. 그는 “대본을 받은 순간부터 연출 콘셉트 등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이 실화가 제 피를 끓게 만들었다”며 “아무도 가지 않은 ‘한국 농구 영화’의 길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겁이 나기보다는 설렜다”고 했다. 넥슨이라는 투자사가 나타난 덕분에 그는 처음에 떠올린 방향으로 진정성을 잃지 않고 영화를 완성할 수 있었다.
영화는 선수로서는 주목받지 못한 지도자가 오합지졸 학생들을 데리고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성과를 내는, 스포츠 영화의 전형이다. 인물 하나하나의 사연과 활약상을 찬찬히 비추는데, 이것이 단점이자 강점이다. 결말이 정해져 있는 만큼 전체적인 서사의 쫄깃함은 떨어지지만 한 경기 한 경기가 감동적이다. 인물들을 향한 장 감독의 각별한 애정이 돋보인다. 유쾌하고 사랑스러운 영화다. 장 감독은 “장르를 떠나서 연출하는 사람의 삶의 태도가 영화 속 인물들에 영향을 주는 것 같다. 같은 사람도 묘사하는 화자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며 “저는 ‘나쁜 사람’ ‘착한 사람’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구분하기보다는 뭘 하고 싶은 사람인가, 어떤 점이 부족한가, 어떨 때 기뻐하고 가슴 아파하나 생각한다. 악인도 24시간 나쁜 마음을 갖는 건 아니잖나”라고 말했다.
경기 장면의 핍진성도 <리바운드>의 차별점이다. 경기 장면이 어느 스포츠 영화보다도 생생하다. 경기 도중엔 스쳐가는 독백도, 아련한 회상 장면도 없다. 배우들은 ‘진짜 농구’를 했다. 모든 액션이 정해진 분량의 녹화가 끝나고 나서도 장 감독은 ‘컷’을 외치지 않았다. 배우들은 합을 맞추지 않은 농구를 계속했고, 결과적으로 영화 속 경기 장면 중 30% 정도는 이 촬영분에서 만들어졌다. 장 감독은 “경기 장면에 신경을 많이 썼다. 다른 스포츠 영화보다 경기 장면 분량이 많은 편”이라며 “품이 많이 들더라도 실제 코트에 들어가 눈높이에서 촬영을 했다. 서로 앵글에 걸리지만 않게 여러 대의 카메라가 공을 따라 움직였다”고 했다. 영화 <카터> 등에 참여한 문용군 촬영감독은 롱테이크 촬영, 고속 촬영 등의 방식으로 경기 장면을 생동감 있게 담아냈다. 연출진은 농구선수들이 봐도 어설프지 않은 장면들을 담아내는 데 성공했다.
배우 캐스팅에서도 ‘리얼리티’를 높이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배우들은 연기 오디션보다 농구 오디션을 먼저 치렀다. 배우 김택은 휘문고와 중앙대를 거친 실제 선수 출신이기도 하다. 실제 인물들과 비슷한 신장을 가진 배우들을 최종 캐스팅했다. 안재홍은 강양현 코치의 체중까지 재연하기 위해 10㎏가량을 증량했다. 강 코치와 여러 차례 만나며 배운 특유의 느릿한 말투를 따라 했는데, 영화 예고편이 공개됐을 때 오히려 “부산 사투리가 너무 어색하다”는 지적을 받는 일도 있었다. 안재홍은 부산에서 나고 자랐다. 다른 배우들도 실제 인물의 걷는 자세, 말투, 사소한 손버릇까지 공부했다. 장 감독은 “허재윤 선수 아버지가 시사회 때 오셔서 처음 뵀는데 영화 속 허 선수 아버지 역의 배우와 너무 닮아서 놀랐다”며 “실제 선수와 닮은 배우를 캐스팅하고, 그 배우와 닮은 배우를 아버지 역할로 캐스팅했더니 실제 아버지랑도 닮았더라”고 했다.
‘신이 내린 꿀팔자’ ‘윤종신이 임보하고 김은희가 입양한 눈물 자국 없는 몰티즈’ 등 우스갯소리로 자신을 소개하는 장 감독은 영화를 말할 땐 누구보다 진지하다. 그는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작품이 소중해진다. 영화감독이 그렇게 오래 할 수 있는 직업이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영화를 ‘청춘 예술’이라고 하지 않나. 같이 시작했던 동료들 중 지금까지 영화를 하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며 “언제 은퇴할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작품을 만든다”고 말했다. 연출가로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과 목표를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왜 이 시기에 이 영화가 만들어져서 세상에 나와야 하나, 왜 다른 감독이 아니고 내가 해야 하나, 세상에 어떤 의미와 가치를 줄 수 있나…이런 질문들을 꾸준히 합니다. 현장에서는 악당들과 한 지붕 아래서 같은 공기를 마시지 않고 싶다, 아무리 재능이 출중해도 ‘나쁜 놈’이랑은 일하기 싫다, 그렇지 않아도 성공할 수 있고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리라 하는 마음으로 일합니다. 제 목표는 60대에도 영화 현장에 있는 겁니다.”
오경민 기자 5k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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