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닥타닥’ 가슴 두드리는 탭 소리, 춤 세포를 깨우다

2023. 4. 5.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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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태 감독, 박용갑·박은성 등 4인
9일까지 국내 유일 ‘탭댄스 페스티벌’
콘서트·뮤지컬·콩쿠르까지 ‘모든 장르’
우먼파워·아마추어 아우른 소통의 장
‘탭댄스의 성지’ 마포에선 올해에도 탭댄스 페스티벌이 막을 올린다. 올해로 5년째 열리는 마포문화재단의 프로 탭댄서 축제인 서울 탭댄스 페스티벌을 이끄는 박용갑, 김길태 예술감독, 이미경, 박지혜, 박은성(왼쪽부터). 이상섭 기자

음악도 없이 춤을 춘다. 나무 바닥을 두드리는 경쾌한 소리. 천천히 한 발씩, ‘타닥타닥타닥탁’. 그러다 숨가쁘게 ‘타다다닥타다닥’. 산뜻한 몸짓에 경쾌한 발놀림, 입가에 번진 행복한 미소. 0.2~0.5㎝ 두께의 쇠붙이가 붙은 탭슈즈를 신으면, 표정이 돌변한다. ‘업계 전설’로 꼽히는 1~2세대 탭댄서 사이에 선 2개월차 초보 태퍼.

“전 탭의 소리가 좋아요. 이 소리가 저를 깨우는 소리로 들려요. 그래서 내 가슴에 노크를 하는 것 같아요.” (이미경)

탭댄스는 마법 같다. 탭 슈즈와 나무 바닥이 부딪히는 소리에 심장이 콩닥댄다. 이미경(60) 씨는 “잠자는 세포를 깨워주는 소리”라고 했다. 인생의 한 장을 보내고, 다시 맞은 새 삶에서 그는 ‘버킷리스트’를 꺼냈다. 영화 ‘싱잉 인 더 레인’를 본 뒤 키운 꿈이 2세대 탭댄서 박은성(35)을 만나 이뤄졌다. 20여년의 시간을 뛰어넘은 스승과 제자는 이제 한 무대에 선다. 국내 유일의 탭댄스 축제인 ‘서울 탭댄스 페스티벌’(5~9일까지, 마포아트센터)을 통해서다.

‘탭댄스의 성지’ 마포에선 올해에도 탭댄스 페스티벌이 막을 올린다. 페스티벌의 개막을 앞두고 5일간의 축제에 함께 하는 김길태(53) 예술감독과 2세대 탭댄서 박지혜(33) 박용갑(44) 박은성(35), 일반인 참가자 이미경 씨를 만났다.

▶우먼파워·아마추어 무대까지...국내 유일 탭댄스 페스티벌=콘서트, 뮤지컬, 콩쿠르까지.... 무엇 하나 빼놓지 않았다. 기나긴 ‘감염병과의 전투’에도 식지 않은 탭의 열정은 급기야 ‘모든 장르’를 섭렵해 돌아왔다.

5년째 축제를 진두지휘하고 있는 탭댄스 1세대 김길태 예술감독은 “탭댄스를 매개로 하나가 된다는 ‘탭 인 원’을 주제로 축제를 만들고 있다”고 했다. 5일간의 축제는 춤(‘더 셰이프 오브 심볼(The Shape of SYMBOL)’), 음악(밴드 파람의 ‘탭 콘서트’), 뮤지컬(‘카펜터스’), 경연(오버텐 탭댄스 콘서트), 콩쿠르(제2회 탭댄스 콩쿠르)로 알차게 구성했다.

개막공연인 여성 탭댄서 3인방(김경민 박지혜 손윤)의 ‘더 셰이프 오브 심볼’(4월 5일)은 “우먼파워를 보여주는 무대”(박지혜)다. 남성 탭댄서가 중심이 된 한국 탭신에서 저마다의 색깔과 개성을 갖고 성장한 여성 탭댄서의 현재를 만날 수 있다. 안무부터 연출, 기획까지 모두 여성들이 도맡았다.

박지혜는 “처음 탭댄스를 시작할 때만 해도 한 팀에서 남녀의 비율이 8대2 정도였다”며 “초창기엔 남자 선생님, 남자 선배를 보고 배우다 보니 여성 탭댄서들의 색깔이 통일된 경우가 많았다. 이제는 자기만의 방향성을 가지고 활약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연에선 재즈, 일렉트로닉, 국악, 뮤지컬 넘버, 클래식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에 맞춰 춤을 춘다.

축제의 백미는 ‘경연쇼’다. 프로 탭댄서들이 주축이 됐던 페스티벌은 올해부터 ‘참여형’으로 확장했다. 아마추어 댄서와 함께 즐기는 오버텐 탭댄스 콘서트(4월 8일)다.

연출을 맡은 박용갑은 “관객과 함께 무대를 즐기며 세대간의 소통을 할 수 있는 참여형 축제로 만들고자 기획된 무대”라고 말했다. 콘서트에는 최연소 5세부터 최고령 79세에 이르는 다양한 연령대의 프로와 아마추어 듀오 13팀이 참가한다. 평균 나이차는 27세. 박 연출가는 “대부분 한 세대 정도 차이가 난다”며 “서로 소통하며 이해하고 화합할 수 있는 장으로 만들고자 한다”고 말했다.

박지혜는 최연장자인 79세 제자와 함께 한다. 탭댄스 수업을 시작한 2013년 만난 첫 제자다. 이젠 사제를 넘어 부녀 같은 사이가 됐다. 두 사람은 최백호의 ‘낭만의 대하여’에 맞춰 “화려하진 않지만, 낭만이 넘치는 탭댄스를 보여줄 것”이라고 했다.

탭댄스 수강 2개월 차인 이미경 씨는 스승 박은성의 권유로 경연쇼에 지원서를 냈다. 박은성은 “올해는 시험 삼아 도전했고, 사실은 내년을 겨냥 중”이라며 웃었다. 무대에선 뮤지컬적 요소를 가미했다. 연기와 춤이 어우러지는 공연이다. 이미경 씨는 “2개월 동안 배운 전재산이 나오게 될 것”이라고 했다. 제자의 말에 스승의 칭찬이 이어진다. “워낙 습득력이 뛰어난 제자”라는 것이다. “선생님은 항상 절 영재라고 하세요.(웃음)” (이미경)

▶‘예술가의 시대’로 접어든 탭댄스...=이 춤엔 거대한 ‘비밀’이 숨겨져 있다. 탭댄스는 노력을 배신하지 않는 춤이다. “처음엔 너무 어려워 재미없던”(박지혜, 박용갑) 춤은 한 번 빠지면 헤어나기 어렵다. 정교한 발재간에 현란한 소리가 담기고, 그 위로 탭꾼들의 이야기가 새겨진다. 탭을 추다 보면 ‘인생의 진리’도 만나게 된다. “힘을 빼야만 예쁜 탭 소리가 나는 것처럼, 삶에서도 힘을 빼야 자연스러운 상태가 되더라고요.”(이미경) 스스로의 장벽을 건너 뛰면 “춤에선 더 깊은 세계를 경험”(박용갑)하게 된다.

“어느 날 무대에 섰을 때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가 탭댄스라는 걸 깨달았어요. 탭댄스가 제겐 사람들의 마음을 두드리고 소통하는 도구였다는 것을 알게 된 거죠.” (박은성)

가슴 한 켠에 ‘탭’의 로망을 품은 사람들도 많다. 버킷리스트를 실현 중인 이미경 씨가 증거다. 그는 “탭을 출 때면 몸이 간질간질하다”고 했다. “탭댄스를 통한 정서적 교감”이 삶을 다시 깨운다.

“이 나이엔 새로 시작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데, 뭔가를 한다는 것에 지금도 간질거려요. 당연히 잘 할 순 없죠. 하지만 하나의 음악을 포기하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가는 것이 중요하더라고요. 사람들은 탭댄스 배우다 무릎 상한다, 관절 다친다며 염려해요. 그런데 전, 리듬에 마음을 실어 전하고, 몸 안에 잠들어있는 세포들을 깨워 회춘하고 있어요.” (이미경)

탭댄서들은 지금과는 또 다른 ‘탭댄스 신’의 미래를 꿈꾼다. 심장박동 소리와 함께 차오르는 ‘발의 노크’ 안엔 온기가 담긴다. 누군가는 “사람들에게 꿈꾸게 하는 탭댄서”(박지혜)를 그리고, 누군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여는 소통의 춤”(박은성)을 꿈꾼다. “보지 않아도 보이고, 듣지 않아도 들리는 탭”(박용갑)을 추는 것은 탭꾼들의 이상이다. 지금의 ‘탭신’을 일군 김길태 감독은 “한국 탭댄서들은 기술자에서 아티스트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탭댄스를 통해 자신의 감정과 정서를 전달하고, 탭댄스가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이 되는 예술가의 시대를 맞고 있어요. 예술의 영역에 접어든 이 춤이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탭댄스는 쇼예요. 이제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쇼를 만들고, 더 많은 쇼쟁이들을 만들고 싶어요.” (김길태)

고승희 기자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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