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세까지 노래한다고 했는데...전설의 디바 ‘천상의 무대로’
밤안개 등 ‘콤비’ 이봉조와 황금시대
시련에도 활동 지속, 여든에 신곡도
운명 전날도 공연...‘참가수’ 보여줘
“80년이든 90년이든 이가 확 빠질 때까지 노래할 거야. 은퇴는 목소리가 안 나오게 되면 할 겁니다. 멋지고 떳떳하게 사라지는 게 (가수의) 참모습이죠”
진한 눈 화장과 옆 머리를 딱 붙인 짧은 곱슬, 그리고 반짝이 드레스.... 화려한 외모는 물론, 폭발적인 가창력을 자랑했던 ‘다이내믹 싱어’ 현미(사진)가 세상을 떠났다. 그는 평소 호언장담하던 대로 운명하기 직전까지 대중들 앞에서 공연을 해 가수로서 참모습을 보여줬다.
원로 가수 현미(본명 김명선)가 지난 4일 별세했다. 향년 85세.
경찰과 가요계에 따르면, 이날 오전 9시 37분께 서울 이촌동 자택에서 쓰러진 현미를 팬클럽 회장 김모(73)씨가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현미는 발견 즉시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사망했다.
고인은 화려한 비주얼과 허스키 보이스, 풍부한 가창력 등으로 1960년대 ‘가수의 시대’를 열었던 인기 가수다. 그의 대표 곡인 ‘밤안개’ 뿐 아니라 ‘보고 싶은 얼굴’, ‘떠날 때는 말 없이’, ‘몽땅 내 사랑’, ‘무작정 좋았어요’ 등 수많은 히트곡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이와 함께 사람을 좋아하는 외향적이고 긍정적인 성격 덕에 주변에 사람이 많았다.
1938년 평양에서 태어난 고인은 어린 시절부터 김일성 앞에서 노래할 정도로 유명했다. 평양에서 거주하다가 한국전쟁 1·4 후퇴 때엔 평안남도 강동에 있는 외가로 피난을 갔다. 이 과정에서 어린 두 동생과 헤어졌다가 60여년이 지난 1998년 동생들과 평양에서 재회하기도 했다.
그의 데뷔 무대는 노래가 아니라 춤이었다. 덕성여대에서 고전무용을 전공했던 고인은 아르바이트 삼아 미8군 무대에서 칼춤 무용수로 공연을 했다. 그러다 지난 1957년 공연 펑크를 낸 여가수의 대타로 노래를 부른 것이 계기가 돼 가수로 첫 발을 디뎠다. 당시 김정애·현주와 함께 여성 3인조 그룹 ‘현 시스터즈’를 결성했다.
그의 실제 데뷔는 지난 1962년으로 본다. 현 시스터즈 시절부터 고인을 눈여겨 본 작곡가이자 색소폰 연주자 고(故) 이봉조(1931∼87)에게 발탁, 가수의 길을 걸었다. 당시 이봉조와 함께 작업한 1집 수록곡 ‘밤안개’가 큰 사랑을 받았다.
이후 김기덕 감독이 연출한 엄앵란·신성일 주연의 영화 ‘떠날 때는 말 없이’의 주제곡을 비롯해 ‘보고 싶은 얼굴’ ‘몽땅 내 사랑’ ‘무작정 좋았어요’ 등의 히트곡을 내놓으며 1960년대 풍미한 대표적인 여가수로 이름을 올렸다. 당시 한명숙·패티킴·이미자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한 디바였고, 손석우·길옥윤과 같은 대중 음악계의 굵직한 작곡가들의 곡을 받았다.
고인은 해외에서도 이름이 난 가수였다. 1971년 이봉조가 작곡한 ‘별’로 제4회 그리스 국제가요제 ‘송 오브 올림피아드’에 입상했다. 1981년엔 미국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취임식에 초청돼 축가를 불렀다. 한국에선 흔치 않은 독보적인 재즈풍 보컬을 선보인 고인의 가창력은 한국을 넘어 일찌감치 해외에서도 인정받았다.
승승장구하던 그에게도 시련은 있었다. 최고의 콤비였던 작곡가 이봉조와 ‘세기의 결혼’을 하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것도 잠시. 이봉조의 중혼 사실이 밝혀지면서 세간의 비난을 받았다. 이에 두 아들 이영곤·영준 씨를 낳은 후 지난 1976년 완전히 헤어졌다.
그에게 시련을 준 사람이지만, 현미는 ‘음악적 스승’이자 한때 사랑했던 남자였던 그 사람에게 한 번도 원망의 소리를 한 적이 없다는 게 주변 사람들의 전언이다. 실제로 고인은 지난 2014년 한 강연에서 “두 아이의 아버지이자 내 스승이었기 때문에 이봉조 추모음악회와 이봉조 묘 등을 관리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가수로서의 활동에 누구보다 열정적이었다. 이혼 후 스타 가수로서는 드물게 노래교실을 열어 활동을 지속했고, 방송 활동도 활발하게 했다.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K2’를 비롯해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최근까지 TV를 통해 시청자와 만났다. 특히 2020년 방영된 웹예능 ‘영리한 문제아들’에선 트로트랩을 구사하고자 하는 후배 래퍼를 위해 트로트 선생님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같은 해 엔 이산가족 고향체험 VR(가상현실) 콘텐츠 제작에도 참여, 두 친동생과 60여 년간 이산가족으로 이별했던 가정사를 공개하기도 했다.
특히 데뷔 50주년이었던 지난 2007년 기자회견에서는 “목소리가 안 나오면 모를까 은퇴는 없다. 나이가 80이든 90이든 이빨이 확 빠져 늙을 때까지 ‘밤안개’를 부를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지난 2017년엔 60주년 기념곡 ‘내 걱정은 하지 마’를 발표하기도 했다.
실제로 고인은 사망하기 전날까지 대중들 앞에서 공연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망 전날은 지난 3일 고인은 아침부터 KTX를 타고 대구에 가 노래교실 공연을 마친 후 서울 이촌동 자택으로 귀가했다.
고인에게는 이봉조 작곡가와의 사이에 낳은 두 아들 이영곤(61), 영준(58)씨가 있다. 1980년대 ‘사랑은 유리 같은 것’으로 유명한 가수 원준희가 둘째 며느리다. 가수 노사연과 배우 한상진은 그의 조카다. 고인의 장례 절차는 미국 LA에 거주 중인 아들들이 귀국하는 오는 6일에야 결정될 예정이다. 빈소는 서울중앙대학병원 장례식장 특실에 마련됐지만, 아직 일반 조문을 받지 않는다. 고승희 기자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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